5241.jpg 조선 중기의 문신 정탁(鄭琢)을 그린 초상화. 1604년 작. 축(軸).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67㎝, 가로 87㎝. 정완진(鄭完鎭) 소장.

 

정탁의 자는 자정(子精), 호는 약포(藥圃)이며, 예천 출신이다.

1526년(중종 21년)에 출생하여 1558년 문과에 급제, 5조판서와 좌·우의정을 모두 역임한 인물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좌찬성으로 왕을 의주까지 호종하였으며, 정유재란 때는 동궁을 호종하였고, 옥중의 이순신이 죄가 없음을 아뢰어 구원하는 등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1603년에는 영중추부사에 오르고, 이듬해 1604년에는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에 녹훈되었으며,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에 봉해졌다.

현재 정완진 소장의 이 정탁상은 바로 호성공신책록을 기념하여 선조(宣祖)의 왕명에 의해 그려진 공신상(功臣像)이다. 초상 형식은 좌안7분면(左顔七分面)에 오사모(烏紗帽), 단령(團領)의 관복(官服)을 입고 의자에 앉은 전신좌상(全身坐像)이다.

공수(拱手) 자세와 족좌대(足座臺) 위에 한껏 벌린 양발의 놓임새, 바닥에 깔린 화려한 색감과 문양의 채전(彩氈)은 조선 중기 공신상의 한 전형을 보여 준다.

단령에는 쌍공작문양의 흉배(胸背)가 부착되어 있으며, 서대(犀帶)를 둘렀는데, 이것은 초상화가 그려질 당시 정탁의 품계가 정1품이었음을 말해 준다.

얼굴 표현은 갈색선으로 이목구비 및 주름 선을 묘사한 뒤, 음영을 약간 삽입하였다. 경사(經史)는 물론 천문, 지리, 상수, 병가(兵家)에 이르기까지 정통했던 노대신(老大臣)의 면모가 매서운 눈매와 굳게 다문 입의 표현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