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보물 제45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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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충북 제천시 장락동 65-2 |
소재지 | 장락동 |
지정일 | 1967.06.23 |
수량 | 1기 |
시대 | 통일신라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제천시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충청북도 제천시 장락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높이 9.1m.
제천시내에서 동쪽으로 강원도 영월행 도로를 따라 약 2㎞ 되는 곳에 낮은 구릉을 등지고 넓은 대지가 있어, 이곳을 속칭 창락사지(蒼樂寺址)라고 부르고 있다.
옛 사역(寺域)은 현재 전답 또는 과수원 등의 경작으로 인하여 규모를 알 수 없으나, 거대한 7층 모전석탑 1기가 남아 있어 지금은 이곳을 탑내동이라 부른다. 석재는 회흑색(灰黑色)의 점판암(粘板岩)을 썼으며, 이 석재는 이곳에서 약 8㎞ 거리에 있는 용두산(龍頭山)에서 캐어온 듯하다.
기단은 단층으로 여러 개의 자연석으로 짜고 탑신부(塔身部)를 올렸는데 초층 네 귀퉁이에는 높이 1.37m, 너비 0.21m의 화강암 석주를 세웠다. 이러한 수법은 다른 전탑(塼塔)이나 모전석탑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수법이다.
초층옥신(屋身)의 높이는 네 귀퉁이의 화강암 방주(方柱)와 같고 너비는 2.8m인데, 동서 양면은 전체를 모전석재(模塼石材)로 쌓고 남북 양면은 방주와 방광의 사이에만 쌓았다. 석재는 크기가 같지 않으며 길이와 너비는 28∼52㎝이고 두께는 4∼7㎝이다. 초층옥신의 남면과 동면, 2층옥개석은 극심한 피해를 입어 탑재가 탈락되었다.
옥개는 상·하 모두 층단(層段)을 가진 전탑 특유의 형태를 하였고 추녀도 짧고 좁아졌다. 추녀는 수평으로 평박(平薄)하고, 각 귀퉁이에는 상·하로 풍령공(風鈴孔)이 뚫려 있어 일부에는 풍경을 달았던 철제 고리가 남아 있다. 옥개받침은 9단 내지 7단으로 되었고 상면의 층단도 이에 준하였으며, 옥개는 15단 내외로 구성되었다.
상륜부(相輪部)는 전부 결실되었으나 7층 옥개석 정상에 1변 70㎝의 낮은 노반(露盤 : 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 복발·앙화·상륜 등을 받치는 장식)만이 남아 있고, 그 중심에 직경 17㎝의 둥근 구멍이 있고 이를 중심으로 연판(蓮瓣)이 조각되었다. 이 구멍은 찰주공(擦柱孔)으로 해석되는바, 6층옥신에까지 미치고 있다.
또 주목되는 것으로 탑신 전면을 회(灰)로 덧칠하였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으니, 이는 경상북도 상주의 석심회피탑(石心灰皮塔)과 같은 수법에 속하는 탑이 아니었던가 추정된다.
이 석탑은 1967년말 전면 해체수리하였는데 이때 5층 옥신부에서 길이 50∼54㎝, 높이 31㎝의 부등변·방형의 화강암재가 발견되었고, 그 중심에 1변 13. 5㎝, 깊이 4.5∼5.5㎝의 네모난 사리공(舍利孔)이 있었으나 내용물은 없었다.
한편, 7층 옥개상면에서 꽃모양이 투각된 청동조각이 발견되어 원래는 정상에 청동제의 상륜이 있지 않았나 추측된다. 이 탑의 건조연대는 조탑형식(造塔形式)이나 전재가공(塼材加工)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統一新羅) 말기(末期)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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