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20_0004.jpg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 서정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높이 6m.

 

공주에서 청양쪽으로 23㎞ 떨어진 서정리의 넓은 논 가운데 있는 것으로 부근의 절터는 흔적도 없이 농경지로 변하여 옛 자취를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으며, 가끔 기와조각이 눈에 띌 뿐이다. 고려시대 초기의 균형이 잡힌 거대한 석탑들 중 하나로서 그 층급이 9층이라는 점에서 더욱 희귀하다고 할 것이다.

 

이 석탑의 구성은 2층의 기단 위에 탑신부를 형성하는 일반적인 양식을 따른 것으로서, 상하 방형(方形)을 기조(基調)로 지면의 지대석(地臺石) 위에 하대석(下臺石)이 놓이고 그 4면 면석(面石)에는 1면 2구씩의 안상(眼象)이 있는데, 하층기단 면석이 낮고 넓은 면적이어서 안상도 옆으로 넓어졌고 지선(地線) 중앙에서 화형(花形)이 솟아올라 고려시대 안상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갑석은 별석으로 마련하지 않았고 면석과 같은 돌로 이루어졌다. 하층기단 갑석 상면에는 별다른 특별한 시설 없이 상층기단을 올려놓았는데, 높직한 상층기단 면석은 각 면 1매로 짜고 양쪽에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를, 그리고 중앙에는 1주의 탱주(撑柱 : 받침기둥)를 두고 1매 갑석을 덮어 매우 안정된 기단구조를 보이고 있다.

 

상층기단 갑석은 1매의 판석으로 이루어졌는데, 하면에는 안쪽으로 얕은 부연(副椽)이 있고 상면에 낮은 굄대를 마련하여 탑신부를 받고 있다. 탑신부는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이 각각 1석으로 초층옥신은 상당히 크고 각 면에 양 우주가 표시되었으며, 2층부터는 높이가 급격히 줄었으나 넓이는 우아하게 감축되어 있다.

 

옥개석도 옥신에 따라 아름다운 체감비율을 보이고 있으며, 옥개석 하면의 받침은 초층이 5단이나 2층 이상은 3단으로 줄었다. 각 층 옥개석의 추녀는 전각(轉角)에 이르기까지 수평을 이루어 신라석탑의 여운을 남기고 있으며, 네 귀퉁이의 반전도 많은 편으로 둔중한 느낌은 없고 오히려 경쾌한 기분마저 주고 있다.

 

상륜부(相輪部)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전부 없어졌다. 전체적으로 보아 신라시대로부터 이어온 전형형식을 따르고 있는 탑으로 상하의 비례가 아름다운 우수한 작품이다.

 

다만, 탑신에 비하여 옥개석이 평박(平薄)한 감을 주며, 9층이라는 많은 층급에서 연유하는 바도 있겠으나 매우 고준(高峻)한 형태가 되어 안정감이 없어진 감이 없지 않다. 이 탑이 속하여 있던 절의 이름은 알 길이 없으나, 각 부의 양식 수법이나 기단의 안상 수법으로 보아 그 건립연대는 고려 초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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