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08.jpg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 송림사松林寺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전탑. 높이 16.13m, 기단 폭 7.3m.

 

송림사 대웅전 앞에 서있는 5층 전탑(塼塔)으로, 흙으로 구운 벽돌을 이용해 쌓아 올렸다.

탑을 받치는 기단(基壇)은 벽돌이 아닌 화강암을 이용하여 1단으로 마련하였는데, 기단의 4면에는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탑신(塔身)은 모두 벽돌로 쌓아올렸다. 2층 이상의 몸돌은 높이가 거의 줄어들지 않아 전체적으로 높아 보이나, 각 몸돌을 덮고 있는 지붕돌이 넓은 편이어서 안정되고 온화하다.

지붕은 벽돌로 쌓은 점을 고려한 듯 밑면의 받침부분 외에 위의 경사면까지 층급을 두어 쌓았다. 꼭대기에는 금동으로 만든 머리장식이 남아있는데, 이는 1959년에 해체하여 복원작업을 하면서 원형대로 모조한 것이다. 비록 모조품이긴 하나, 통일신라시대 금동 상륜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된다.

 

지대석(地臺石) 위에 장판석(長板石)과 얇은 갑석(甲石)으로 윤곽을 잡은 토축의 낮은 기단(基壇)을 마련하였는데, 각 면에는 두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탱주(撑柱 : 받침기둥) 5개씩을 모각(模刻)하였고, 기단 상면 중앙에는 화강석으로 1단의 탑신(塔身)받침을 만들었다.

탑신부는 옥신(屋身)과 옥개(屋蓋)를 모두 전(塼:벽돌)으로 축조하였는데, 1변 27㎝, 높이 6.2㎝의 방형전과 이것을 절반으로 자른 장방형전의 두 가지를 사용하였다.

2층옥신은 높지만 2층 이상의 옥신의 체감률은 그다지 심하지 않아, 전체의 형태가 약간 고준해 보이나 다른 전탑에 비하여 옥개가 넓어서 높이에 대한 시각적인 안정감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옥개는 벽돌 한 장 두께로 처마를 삼고 밑의 받침수는 1층부터 9단·7단·7단·6단·4단이며, 낙수면의 층단수는 1층부터 11단·9단·8단·7단·5단이다.

이 전탑에는 금동제 상륜부(相輪部)가 남아 있는데, 5층옥개 위에 벽돌로 노반(露盤)의 신부(身部)를 쌓고 그 위의 네 귀에 풍령(風鈴 : 처마 끝에 다는 경쇠)이 달린 동판을 얹어 갑석을 대신하였으며, 그 위의 각 부분은 금동제이다.

찰주(擦柱 : 탑의 중심기둥)는 목재이고 그 위에 동판을 씌운 다음 복발(覆鉢)·앙화(仰花)·보륜(寶輪)·용차(龍車 : 탑의 상륜부 꼭대기에 있는 보주)·보주(寶珠)의 순으로 되어 있으나 보륜의 일부와 수연(水煙)은 없어진 듯 공간이 있다.

상륜부의 높이는 4.51m로, 경상북도 안동 법흥사(法興寺) 탑에 ‘金銅上飾(금동상식)’이 있었다는 ≪영가지 永嘉誌≫의 기록이 있으나 이미 훼손되어 볼 수 없게 된, 신라시대 금동 상륜부의 형태가 이 전탑에 남아 있어 주목된다. 다만, 현재의 상륜부는 1959년 보수 당시 원형대로 모조한 것이다.

이 때의 해체 보수에서 현재보다 훨씬 좁았던 1변 4.5m 정도의 원래의 기단석축이 발견되었고, 1층옥신부·2층옥개부·3층옥개부·복발 등에서 각각 유물이 발견되었다. 1층옥신 남면에는 감실(龕室)이 개설되었던 것을 후세에 벽돌로 막은 사실이 밝혀졌고, 감실 안에는 조선시대의 목불과 파손된 석불·동불 2구씩이 있었다.

2층옥개에서는 채색이 있는 구형(龜形)의 석함 속에서 사리구(舍利具)가 발견되었는데, 금동방형 사리기 안에 안치된 녹색유리제 사리병을 비롯하여 유리제 잔, 수목형(樹木形) 금제품 및 옥류(玉類) 등이 있었고, 3층옥개에는 나무뚜껑을 덮었던 돌궤가 있었으나 속에는 부식된 종이만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상륜부의 복발 안에는 상감청자합(象嵌靑磁盒)이 있었고, 합 속에는 향목(香木)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상의 유물로 보아 고려·조선시대에 보수가 있었고 이러한 보수를 거치는 동안 많이 변형되었으리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