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59.jpg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월남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비. 전체높이 3.58m, 장방형 대석(臺石) 높이 2.6m, 너비 2.3m.

월남사지는 월출산을 배경으로 월남마을 중앙에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월남사재월출산남고려승진각소창유이규보비(月南寺在月出山南高麗僧眞覺所創有李奎報碑:월남사는 월출산 남쪽에 있는데 고려시대 진각국사가 창건하였고 이규보가 찬한 비가 있다)’라는 기록이 있어 고려 후기에 창건된 듯하나 언제 폐찰되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동국여지지》에 ‘진각소창유이규보찬비금폐(眞覺所創有李奎報撰碑今廢)’라고 한 점으로 미루어 《동국여지지》를 쓸 당시(1649∼1659) 이미 월남사는 폐찰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인근에 있는 무위사의 사적기에 임진왜란 때 주변의 절이 모두 불타 사라졌다는 내용이 있어 월남사도 이때 폐찰된 것으로 추정된다.

진각국사의 성은 최씨이고 이름은 혜심(慧諶)으로 24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어머니의 죽음으로 출가를 하게 되었다. 출가 후 보조선사 밑에서 수도를 하였고 고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대선사(大禪師)가 되었으며, 고종 21년(1234)에 57세로 입적하였다. 월남사 터에 서 있는 이 비는 절을 창건한 진각국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 비석은 전라남도(全羅南道) 강진군(康津郡) 월출산(月出山) 기슭에 위치한 월남사(月南寺)의 창건주(創建主)로 송광사(松廣寺) 16국사(國師) 중 제2조인 진각국사(眞覺國師)(1178∼1234)를 추모하기 위하여 고려(高麗) 고종(高宗) 때 건립된 것이다.

진각국사의 속성(俗姓)은 최씨(崔氏)이고 이름은 식(寔), 호(號)는 무의자(無衣子)이고 법명(法名)은 혜심(慧諶)으로 화순현(和順縣) 사람이다. 고려 신종(神宗) 4년(1201)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으나 그후 모친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출가(出家)하였다. 출가한 후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의 문하에서 선학(禪學)을 닦아 그 뒤를 이어 수선사(修禪社)의 제2세가 되었다. 그후 고종(高宗)이 왕위에 오르자 대선사(大禪師)가 되었으며, 고종 21년(1234)에 57세로 입적하였다..

7960.jpg 월남사 터에 서 있는 이 비는 절을 창건한 진각국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비는 전체적으로 매우 거대한 석비로서 장방형(長方形) 대석(臺石)에 귀부(龜跌)가 있다.

대석과 귀부는 한돌이다. 비석을 지고 있는 돌거북은 입에 구슬을 물고 긴 목을 빼어들고 네 발을 단단히 짚고 있는 모습이 매우 사실적이다. 비신(碑身)은 편마암(片麻岩)으로 되었으며 윗부분은 개어져 나가고 아랫부분만이 남아 있으나 마멸(磨滅) 때문에 비문(碑文)을 읽을 수는 없다. 비문은 고려(高麗)의 문인(文人) 이규보(李奎報)가 찬(撰)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명칭변경(2002.03.12) : 월남사지석비→월남사지진각국사비

-사유:월남사지석비는 월나사의 창건주인 진각국사(1178∼1234)의 비로 이규보(1168∼1241)가 비문을 지었고,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등의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이 되고 1973년 음기의 판독을 통해 진각국사비임이 확인되어 「월남사지진각국사비」로 명명하고자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