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보물

보물제311호 금계일기(錦溪日記)

문성식 2015. 7. 15. 00:09

보물제311호 금계일기(錦溪日記)

 

종 목 보물  제311호
명 칭 금계일기(錦溪日記)
분 류 기록유산 / 전적류/ 필사본/ 일기류
수량/면적 1책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광주 동구  (국립진주박물관 보관)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노준채
관 리 자 노준채

 

 

 

일반설명 | 전문설명

저자(著者) 노인(魯認)(1566∼1622)은 자(字)는 공식(公識), 금계(錦溪)는 그의 호다. 처음에 사수사별제(司需寺別提)로 있다가 고향인 나주(羅州)로 돌아가 있는 동안에 임진왜란을 만나서 권율(權慄)의 휘하에서 의병으로 활약하다가 선조(宣祖)30년(1597) 8월 남원(南原) 전투에서 일본군에 잡히어 일본으로 송치되었다가 그곳에서 중국사람인 임진혁(林震혁) ·진병산(陳屛山) ·이원징(李源澄) 등과 일본 탈출을 계획하여 마침내 성공· 배로 중국 복건지방(福建地方)의 항구에 닿아서 장주(장州), 흥화(興化)를 경유, 복건(福建)에 도착하여 본국에 보내 달라는 탄원서를 내고 관부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가 마침내 명(明)나라 중앙정부에서 귀국허가를 받아서 복건(福建)을 출발하여 북경(北京)에 들러 일본에 대한 복수책을 전술하고 호송되어 본국(本國)에 돌아왔다. 뒤에 수원부사(水原府使)를 지내고 인조(仁祖) 원년(元年)에 57세로 죽었다.

저자는 일본에서 포로생활 할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일본에서 탈출한 경위와 중국에서 오랫동안 머무르고 있는 중에 그곳의 학자들과 만나서 그들의 질문에 따라 한국의 교육 ·과거 ·재정 ·군사 ·문화 ·풍속 등 여러가지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해 준 것이 일기에 기술되었다.

이 책은 필사본인데 앞과 뒤가 떨어져 나가고 없어져서 완전하지 못하며 1599년(선조(宣祖)32년) 2월 22일부터 같은 해 6월 27일까지의 일기다. 그리고 그가 죽은 200여년 뒤에 후손들이 간행한「금계집(錦溪集)」에 그의 시문(詩文)과 함께 그의 일기가 앞뒤 모두 수록되어 있고 1970년에「조선학보(朝鮮學報)」제56집의 별쇄본(別刷本)으로 영인(影印)되어 유통되었다.

이 책은 필사본인데 앞과 뒤가 떨어져 나가고 없어져서 완전하지 못하며 1599년(선조(宣祖)32년) 2월 22일부터 저자(著者) 노인(魯認)(1566∼1622)은 자(字)는 공식(公識), 금계(錦溪)는 그의 호다.


처음에 사수사별제(司需寺別提)로 있다가 고향인 나주(羅州)로 돌아가 있는 동안에 임진왜란을 만나서 권율(權慄)의 휘하에서 의병으로 활약하다가 선조(宣祖)30년(1597) 8월 남원(南原) 전투에서 일본군에 잡히어 일본으로 송치되었다가 그곳에서 중국사람인 임진혁(林震혁) ·진병산(陳屛山) ·이원징(李源澄) 등과 일본 탈출을 계획하여 마침내 성공· 배로 중국 복건지방(福建地方)의 항구에 닿아서 장주(장州), 흥화(興化)를 경유, 복건(福建)에 도착하여 본국에 보내 달라는 탄원서를 내고 관부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가 마침내 명(明)나라 중앙정부에서 귀국허가를 받아서 복건(福建)을 출발하여 북경(北京)에 들러 일본에 대한 복수책을 전술하고 호송되어 본국(本國)에 돌아왔다. 뒤에 수원부사(水原府使)를 지내고 인조(仁祖) 원년(元年)에 57세로 죽었다.

저자는 일본에서 포로생활 할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일본에서 탈출한 경위와 중국에서 오랫동안 머무르고 있는 중에 그곳의 학자들과 만나서 그들의 질문에 따라 한국의 교육 ·과거 ·재정 ·군사 ·문화 ·풍속 등 여러가지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해 준 것이 일기에 기술되었다.

이 책은 필사본인데 앞과 뒤가 떨어져 나가고 없어져서 완전하지 못하며 1599년(선조(宣祖)32년) 2월 22일부터 같은 해 6월 27일까지의 일기다. 그리고 그가 죽은 200여년 뒤에 후손들이 간행한「금계집(錦溪集)」에 그의 시문(詩文)과 함께 그의 일기가 앞뒤 모두 수록되어 있고 1970년에「조선학보(朝鮮學報)」제56집의 별쇄본(別刷本)으로 영인(影印)되어 유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