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70.jpg 근사록(近思錄)은 송(宋)의 유학자(儒學者)인 엽채(葉采)가 성리학(性理學)의 기본이 되는 주돈이(周敦이)의 태극도설(太極圖說), 장재(長載)의 서명(西銘), 정몽(正蒙) 등 중요한 문헌을 골라서 편찬한 일종의 성리학의 독본(讀本)이다.

이 책은 그 판식(板式)이나 자체(子體)로 보아 원판(元板)을 복각(覆刻)한 듯하다.

제14권 제15장 끝에 「성산이씨간우진양(星山李氏刊于晉陽)」이라고 전문(篆文)으로 새겼고 또 그 다음에 동형인(鐘形印) 안에 「홍무삼년(洪武三年)」, 정형인(鼎形印) 안에 이노숙(李魯叔)을 각각 인문(印文)모양으로 새겨서 「연대·간행자(年代刊行者)와 간행처(刊行處)를 밝혔고 또 책 끝에 「경술 기축삭성산노숙근지(庚戌己丑朔星山魯叔謹識)」라고 자서(自署)한 발문(跋文)이 있다. 이에 의하면 당시 진주목사 이인민(晉州牧使 李仁敏)이 경술년(庚戌年)(1370) 봄에 진주(晉州)로 부임할 때 사예 박상충(司藝 朴尙衷)이 기념으로 이 책을 인민(仁敏)에게 선사하였다.

인민(仁敏)은 평소부터 이 책을 구하려 했는데 쉽사리 얻었으므로 기뻐서 진주(晉州)에 와서 곧 이를 곧 행하였다.

박상충(朴尙衷)은 고려말기(高麗末期)의 이름 높은 성리학자(性理學者)다.

고려본(高麗本)이 극히 희귀한 오늘날 비록 중국판의 복각이라 할지라도 매우 귀중함은 물론이려니와 또한 이 책이 중종(中宗) 때의 유신(儒臣)인권벌(權벌)의 수택본(手澤本)이라는 점과 이에 정조(正祖)가 친히 서문(序文)을 지어서 붙였다는 데에서 이 책의 가치는 더욱 높다.

이책은 권발(權발)이 애독하던 것으로 늘 소매에 넣어 다니며 중종(中宗)때에 경연(經筵)에서 진강(進講)까지 하던 것이다. 이 유래를 안 영조(英祖)는 그의 22년에 권벌(權벌)의 후손인 권만(權萬)에게 명하여 궁중으로 이 책을 들여와서 보았고 또 정조(正祖)는 정조(正祖) 18년 1월에 「어제충정공권벌수진근사록서(御製忠定公權벌袖珍近思錄序)」를 지어서 승정원좌부승지(承政院左副承旨)인 서영보(徐榮輔)에게 명하여 글씨를 써서 다시 돌려보냈던 것이 지금까지 전래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