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23.jpg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영동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당간지주. 높이 3.63m.

 

장의사 옛터에 있는 이 당간지주는 불(佛) 보살(菩薩)의 공덕을 기리며 불기(佛旗)를 꽂아 두던 시설로 높이 3.63m 이다. 양쪽 지주는 동서로 마주 서 있는데 당간이나 그 기단부(基壇部)는 모두 훼손되어 원형을 추정할 수 없다.

장의사(莊義寺)는 백제(百濟)와의 싸움으로 황산(黃山) (지금의 논산(論山)으로 추정) 에서 전사한 신라의 장수(將帥) 장춘랑(長春郞)과 파랑(罷郞)의 명복(冥福)을 빌기 위하여 신라 무열왕(武烈王) 6년(659)에 세웠다고 전한다.

고려의 예종(睿宗), 인종(仁宗), 의종(毅宗) 등이 남경(南京) (지금의 서울) 에 왔던 길에 다녀간 일이 있고, 조선 태조비(太祖妃)인 신의왕후(新懿王后)의 기신제가 이 곳에서 있은 이후 왕실의 특별한 비호(庇護)를 받았으나 연산군(燕山君)은 이 일대를 풍류를 즐기던 장소로 삼다가 동왕(同王) 12년(1506)에 절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꽃밭을 만들고 꽃을 심게 하였다.

 

세검정초등학교가 설립된 이후 학교마당 안에 보존되어 있다.

양 지주는 동·서로 마주 서 있는데 간주를 받던 간대(竿臺)나 기단부가 남아 있지 않아 원형을 추정할 수 없다. 마주보는 내측면에는 아무런 조각이 없고 외면이나 전면·후면에도 아무런 조식(彫飾)이 없으며, 외면의 각 변에서 모를 죽여 약간의 장식의장을 보이고 있다.

양 지주의 정상부는 내면 위 끝부분에서 16㎝ 정도의 윗면이 평평한데 윗면은 외면으로 내려오면서 활모양을 그리며 깎여졌다. 그러므로 외측면에서는 특별한 구조가 보이지 않으나 앞뒷면에서 보면 상단부(上端部)는 한변이 원호(圓弧)인 사다리꼴로 보인다.

당간을 고정시키는 간은 상부 한 곳에만 장치하였는데 내측면 상단 가까이에 둥근 구멍으로 간구(杆溝)를 마련하여 간을 끼우도록 하였다.

대개의 경우 위쪽 한 곳에만 간을 시설하더라도 내측면 꼭대기에 장방구(長方溝)를 뚫는 것이 보통인데 그 유례를 따르지 않았다. 이 당간지주는 높이에 비하여 중후한 편으로, 간구 이외에는 별다른 공작이 가하여지지 않은 매우 소박한 형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