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보물 제13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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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63 월정사 |
소재지 | |
지정일 | 1963.01.21 |
수량/면적 | 1구 |
시대 | 고려시대 |
소유자 | 월정사 |
관리자 | 월정사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월정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보살상. 높이 180㎝.
이 불상은 월정사 경내의 팔각구층탑을 향하여 공양을 올리는 모습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탑에 공양하는 약왕보살의 이야기는 원래 ≪법화경≫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법화경≫ 제6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에 팔과 몸을 태워 팔만사천탑(八萬四千塔)에 공양하였던 일체중생희견보살(一切衆生喜見菩薩)이 공덕을 쌓아 약왕보살이 된 내용에 따라 탑 앞에서 공양을 올리는 이 보살상이 약왕보살로 전하여 내려온 것 같다.
그러나 이 밖에 ≪신증동국여지승람≫ 강릉일불우조(江陵一佛宇條)에는 자장의 옛 절에 문수보살이 있어 탑 위로 천년 동안 새가 날지 못한다는 내용의, 정추(鄭樞)의 시가 전한다. 그러므로 월정사 보살상의 명칭 문제는 확연히 단정지을 수 없는 것이다.
월정사보살상은 강원도 강릉 출토 한송사석조보살좌상(寒松寺石造菩薩坐像, 국보 제124호)이나 신복사지석불좌상(神福寺址石佛坐像, 보물 제84호)처럼 원통형의 높은 관을 쓰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체구가 비교적 가늘고 긴 편이다. 가슴도 양감을 잃어 평판적으로 처리되었으며 빈약한데, 상체에 걸친 천의(天衣)의 띠 매듭이 왼편 가슴 위에 보인다.
보살상의 세부를 살펴보면, 뺨과 턱이 유난히 살찐 직사각형의 얼굴에는 미소를 나타내려 하였다. 그러나 두드러진 입술의 둔한 표현 때문에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전체적으로 얼굴의 길이에 비하여 짧은 인중과 코, 좁은 이마는 균형이 맞지 않고 있다. 눈은 반쯤 떴으며 눈 주위는 부은 듯하고 코는 위 콧날이 좁고 콧등은 편평하다.
이러한 코의 표현은 전라남도 장흥의 보림사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나 강원도 철원의 도피안사철조비로자나불좌상 등과 같은 9세기의 통일신라 말기의 불상에 연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굵고 둔하게 표현된 삼도(三道)는 목 전체를 가득 채우고 양어깨 위에는 나무뿌리처럼 꼬부라진 뒷머리가 흘러내린다. 양팔과 손목에는 팔찌가 조각되었다.
오른팔은 동자상이 받치고 있으며, 동자상은 왼손에 금강저(金剛杵 : 악마를 깨뜨리는 무기) 같은 지물(持物)을 들었다. 조각이 거칠고 둔한 점으로 보아 뒤에 보수한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손에 들었던 지물은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모은 두 손에 지물을 꽂았던 구멍이 뚫려 있고 손 밑의 가슴에도 구멍이 뚫렸다.
전반적으로 이 보살상은 두부(頭部)만 강조되고 하체가 빈약한 점이 드러난다. 이러한 경향을 고려시대에 명주(溟州)라고 통칭되던 강릉의 한송사나 신복사지 보살상들과 비교하면 신체의 비례가 맞지 않고 경직된 감이 있다. 화려하고 섬세한 장식적인 표현에서는 중국 송나라 조각품이 느껴진다. 대략 11세기 초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월정사보살상은 연산 개태사(開泰寺)의 석조공양보살좌상(두부 결손)과 신복사지석조보살좌상처럼 고려 초에 유행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탑 앞의 공양보살좌상이다. 또한 이 보살상은 한송사와 신복사지의 보살좌상과 함께 강원도 명주 지방에 독특한 불상 조각의 유파가 있었던 것을 시사하여 준다. 그래서 조각사적으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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