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01.jpg 문묘는 문선왕(文宣王), 즉 공자(孔子)를 제사 지내는 묘우(廟宇)로서, 1397년(태조 6)에 착공하여 그 이듬해인 1398년에 준공된 것이 그 처음이었다. 이 때 창건된 문묘는 대성전을 비롯하여 그 일곽에 있는 동무·서무, 그리고 묘후(廟後)의 학사(學舍)인 명륜당과 협실(夾室), 명륜당 동쪽의 청랑(廳廊) 등 모두 96칸에 이르렀다.

그러나 문묘는 창건된 지 2년 뒤인 1400년(정종 2) 불타 없어졌다가 1407년(태종 7)에 재건되었으며, 임진왜란으로 다시 불타 버렸다. 그 뒤 1602년(선조 35)부터 재건되기 시작하여 1606년 옛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문묘의 배치는 크게 남쪽의 대성전 일곽과 그 후편의 명륜당 일곽으로 나누어졌는데, 대성전 일곽은 문묘시설의 건물군이 있고 명륜당 일곽은 교학시설(敎學施設)의 건물군들이 배치되어 있다.

대성전이 있는 구역은 남향한 신문(神門)을 들어서면 좌우에 동무·서무가 길게 남북방향으로 대칭을 이루면서 배치되고, 그 북쪽 중앙에 정면 5칸, 측면 4칸의 대성전이 있으며, 서무 북쪽으로 제기고(祭器庫)·잡사(雜舍) 등이 있고, 동무 북쪽으로는 동삼문(東三門)이 있어 외부로 통하게 되어 있다.

10600.jpg 명륜당 구역은 대성전 일곽과 담장으로 분리된 북쪽에 있는데, 명륜당은 대성전 정북쪽에 있고 그 당의 남쪽 좌우로 동재(東齋)·서재(西齋)가 장랑(長廊)을 이루면서 남북 방향으로 배치되었다.

또한, 동재의 동편에는 식당이 있으며 그 위쪽으로 창고·육일각(六一閣)·잡사 등이 있고, 명륜당 북동쪽으로는 존경각(尊經閣향관청(享官廳)이 있다. 명륜당의 서북쪽으로는 비천당(丕闡堂)이 있으며 그 뒤쪽에 계성사(啓聖祠)가 별도로 있었다.

대성전 동서에 있는 동무·서무에는 원래 공자의 70제자와 우리 나라 및 중국의 제현(諸賢) 112위를 종향(從享)하였으나, 광복 후 전국유림대회의 결의로 우리 나라 명현 18인의 위패는 대성전에 모시고 나머지 94인의 위패는 묻었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11칸, 측면 2칸의 크기로 조촐한 납도리 양식의 집이다. 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삼문, 홑처마의 익공집이며 맞배지붕이다. 건물은 높은 장대석(長臺石) 기단 위에 세워지고 중앙간 및 양협간에도 2짝의 판문(板門)을 달아 출입하게 되어 있다.

명륜당은 중당(中堂)과 좌우익실(左右翼室)로 구분되었는데, 중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이 좌우의 익실은 각각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날개처럼 중당에 붙어 모두 21칸으로 된 긴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