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봉암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탑비. 높이 273㎝, 너비 164㎝, 두께 23㎝.

 

최치원(崔致遠)의 사산비명(四山碑銘)의 하나로 유명하다. 비신은 청석(靑石)으로 귀부(龜趺)·이수(螭首) 및 비좌(碑座)의 조각이 뛰어나다.

지증대사는 17세에 부석사에서 구족계를 받았으며, 뒤에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파(曦陽山派)의 창시자로 봉암사를 창건하였다.

882년(헌강왕 8) 봉암사에서 입적하자 왕은 ‘지증(智證)’의 시호와 ‘적조(寂照)’라는 탑명을 내리고 당에서 귀국한 최치원에게 비문을 짓게 하였다.

비문에 적힌 최치원의 관직명으로 보아 893년(진성왕 7)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 뒤 30년이 지난 924년(경애왕 1)에 분황사 중 혜강(慧江)이 비문을 쓰고 이를 새겨 건립하였다. 글씨는 자경 2㎝ 크기의 행서로 왕희지(王羲之) 글씨의 영향을 받고 있으나 꾸밈없는 필획은 일가를 이룬 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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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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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