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9.jpg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인 사인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다.

사인비구는 신라(新羅) 이래 사원 세습으로 내려오던 승장(僧匠)의 맥을 이은 마지막 거장(巨匠)이며, 전통수법의 재현과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構築)하면서 창조적인 시각으로 자연을 조명하고 사실적인 표현으로 불교(佛敎) 공예미(工藝美)를 표출시킨 명장(名匠)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朝鮮) 현종(顯宗)·숙종대(肅宗代)의 뛰어난 주종장(鑄鍾匠)이었던 사인비구가 주성한 동종은 총 8구가 알려져 왔는데, 그중 "강화동종(江華銅鍾)"이 1963년 보물 제11호로 지정된 바 있다.

1999년 문화재청에서는 나머지 7구를 일괄 조사하였고, 각 동종의 문화재적 가치가 인정되어 모두 보물로 지정하였다.

크기는 작지만 그의 초기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포항 보경사의 서운암동종’은 종 몸통에 보살상이나 명문이 아닌 부처님 말씀을 새겨 둔 것이 특징이며, ‘양산 통도사동종’은 8괘를 문양으로 새기고 유곽 안에 보통 9개씩의 유두를 새기나 단 한 개만을 중앙에 새겨 넣었다. 또한 가장 전통적인 신라 범종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안성 청룡사동종’과 조선의 종 모습을 보여주는 ‘강화동종’이 있다. 종을 매다는 용뉴 부분에 두마리용을 조각해 둔 ‘서울 화계사동종’과 ‘의왕 청계산동종’이 있고,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를 그만의 독특한 모습으로 선보이고 있는 ‘문경 김룡사동종’과 ‘홍천 수타산동종’이 있다.

그의 작품들은 우수성을 인정받아 8구 모두가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각기 독창성이 엿보이는 작품들로 종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포항 보경사 서운암 동종은 지금까지 알려진 사인비구(思印比丘)의 주성 종 가운데 조성년대(造成年代)가 가장 앞선 것으로, 비록 종의 규모는 작지만 사인비구의 초기 종 연구에 사료적 가치가 있다.

둥근 고리모양의 종뉴(鍾뉴)를 갖추었으며, 입상대(立上帶)에 이어 마련된 상대(上帶)를 비롯 네모꼴 유곽(乳廓)과 하대(下帶)가 잘 남아있다.

상대는 연화보상화문을 정교하게 돋을새김하였으며, 하대는 다소 간략한 형태의 당초문(唐草文)을 장식하였다.

입상대는 모두 40개의 세운 연꽃잎 모양으로 각 잎마다 인물상(人物像)을 안치하였으며, 유곽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9개의 유두 대신 5개의 유두를 설치하였다. 유곽 사이의 각 여백에도 보살상이나 위패(位牌) 모양이 아닌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을 배치함으로써 다른 종들과는 달리 '진언'을 문양화하고 있음이 특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