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jpg 원래 인제군(麟蹄郡) 남면(南面) 신남리(新南里)의 암자(庵子)에 있던 것을 소양댐 건설로 인하여 백련정사(白蓮精寺)로 옮겨왔다. 삼층석탑(三層石塔)은 하층기단(下層基壇)의 지대석(址臺石)과 면석(面石)등 없어진 부재(部材)가 많아 원래의 모습은 정확히 알 수 없으며, 현재 면석처럼 보이는 것은 다른 석재를 이용하여 받쳐 놓은 것이다. 하층기단(下層基壇)의 갑석(甲石)은 경사가 완만하며, 상면에는 면석 받침을 각출(刻出)하고 있으며, 상층기단(上層基壇)의 면석(面石)은 4면(四面)에 우주(隅柱)와 탱주(撑柱)를 각출하고 있다. 1층탑신(塔身)은 탑신받침보다 너무 작아 아마 2층의 탑신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4면에는 양우주가 각출되어 있다. 옥개석(屋蓋石)은 3단의 받침이 있으며 상면의 낙수면은 경사가 급하나 끝에서 반전하고 있고 1단의 탑신받침이 있는 둔중한 모양이다. 2층탑신(塔身)은 옥개(屋蓋)와 크기가 맞지 않아 이보다 상층의 탑신을 올려놓은 것으로 생각되며, 상륜부(相輪部)에 놓여 있는 둥근 석재는 다른 부도의 상륜부(相輪部)를 올려놓은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보아 원래 삼층이상의 고려시대(高麗時代) 석탑으로 추정된다. 석불좌상(石佛座像)은 불상(佛像)의 어깨 윗부분이 잘려 나가 현재는 시멘트로 두부(頭部)를 만들어 놓았으며, 전체적으로 마모가 심하여 자세한 형상을 알 수 없으며, 연화좌(蓮華座) 위에 놓여 있다. 불상 어깨의 곡선(曲線)은 부드러우며, 수인(手印)은 좌수와 우수가 가슴 부분에서 합쳐지는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어 비로사나불(毘盧舍那佛)좌상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