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2.jpg 이 석탑은 석불좌상(石佛坐像)과 함께 상평초등학교 현서분교 교정(校庭)에 함께 보존되어 있는데, 원래 이곳에서 동쪽으로 약 200m 떨어진 논에 있던 것을 1965년 최정규(崔正圭) 교장이 주민들과 함께 현재의 위치로 이전(移轉)하였다. 이 탑은 단층기단(單層基壇)위에 세운 3층석탑으로, 옥신석(屋身石)의 폭이 좁고, 옥개석(屋蓋石)의 낙수면(落水面)이 급경사로 둔중(鈍重)하여 전체적으로 세장(細長)한 느낌을 주고 있다. 기단부는 4매(枚)의 장대석(長大石)으로 지대석(地臺石)을 구축하였으며, 그 위에 1매석(枚石)으로 된 하대석(下臺石)을 두었고, 상면(上面)에 1단의 받침을 각출(刻出)하였다. 1석으로 된 중석(中石)은 각 면에 양 우주(兩 隅柱)를 모각(模刻)하였으며, 1매석으로 된 갑석(甲石)은 하면(下面)에 사형부연(斜形副緣)이 있고, 상면의 사우(四隅)마다 합각(合角)진 곳에 우동을 표시하였으며, 1단의 받침이 있다. 탑신부는 초층옥신(初層屋身)과 옥개(屋蓋), 2층옥신을 각 1석으로 만들었으나, 2층옥개와 3층옥신, 3층옥개와 노반(露盤)을 동일석(同一石)으로 만들었다. 옥신은 각 면에 우주를 모각하였으나, 3층옥신은 우주를 확인할 수 없다. 옥개석은 낙수면(落水面)의 경사가 급하여 전체적으로는 둔중(鈍重)한 모습이나 전각(轉角)에서 반전(反轉)을 두어 경쾌한 면도 있다. 옥개하면의 옥개받침은 초층과 2층이 4단이나, 3층은 3단으로 줄어 들었다. 3층옥개에 붙은 노반(露盤)의 상면중앙(上面中央)에는 방형 찰주공(方形 擦柱孔)이 있고, 별도의 석재로 만들어진 노반의 상부에는 원형(圓形)의 찰주공이 남아 있다. 이 석탑은 단층기단, 갑석의 사형부연(斜形副緣)과 합각에서의 우동, 옥개석의 낙수면과 옥개받침의 변화 등 전반적인 모습에서 고려시대 후기(高麗時代 後期)에 속하는 석탑으로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