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과 역사

진흥왕

문성식 2010. 10. 4. 17:13

 

북한산·창녕·황초령·마운령에서 발견된 순수비는 진흥왕의 업적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한반도 동남부에 있는 약소국 신라를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강원도, 함경도에 이르는 큰 나라로 성장시킨 것은 이십 대의 이 패기만만한 왕이었다. 고구려와 백제라는 강대국 틈에서 눈치를 보던 신라는 진흥왕 이후로 삼국통일을 꿈꾸기 시작했다.

 

 

신라, 한강 유역을 차지하다

551년 신라의 진흥왕은 백제의 성왕과 힘을 합쳐 고구려 정벌에 나섰다. 4~5세기 광개토대왕장수왕대에 전성기를 지낸 고구려는 이 무렵 내부의 권력투쟁과 북방 돌궐의 침입 등으로 내우외환을 겪고 있었다. 백제는 고구려의 도읍인 평양성을 공격하여 승리함으로써 장수왕에게 빼앗겼던 한강 유역의 6군을 회복했고, 신라는 한강 상류의 10군을 점령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고구려에 맞서기 위한 백제와 신라의 동맹, 나제동맹이 성공적으로 유지되는 듯 보였다. 그런데 2년 뒤 진흥왕은 가야의 왕자 출신인 김무력을 시켜 백제군을 급습했다. 백제가 차지했던 한강 하류를 빼앗은 진흥왕은 여기에 새로운 주를 설치했다. 100여 년이 넘도록 유지된 나제동맹을 깨트리고 공격적으로 한강 유역을 차지한 진흥왕의 나이는 당시 스무 살에 불과했다.

 

성왕은 귀족들의 반대에도 신라 공격을 결정하고 총사령관으로 태자 여창을 임명했다. 여창은 백제·가야·왜의 연합군을 이끌고 관산성으로 쳐들어갔다. 관산성은 신라 땅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며, 또 한강 하류 지역에 머무는 신라군의 보급로를 차단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554년 신라와 백제의 운명을 건 관산성 전투는 우리나라 고대 국가 간의 전쟁에서 가장 처절한 싸움으로 기억된다. 치열한 전투 결과 관산성은 백제군에게 함락되었고, 여창은 구천이라는 곳에 본진을 설치하고 전열을 정비하고 있었다. 관산성 전투의 승리를 보고받은 성왕은 태자를 격려하기 위해 구천으로 향했다.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 진흥왕은 넓어진 신라의 영토를 기념하기 위해 이런 비석을 곳곳에 세웠다.
<출처 : 두더지님 at ko.wikipedia.com>

 

그런데 너무 방심했던 것일까. 성왕은 친위군대 50명만 이끌고 적진으로 달려가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정보를 입수한 진흥왕은 성왕을 급습해 목을 베고, 그 여세를 몰아 관산성을 되찾았다. 이 전투에서 백제는 왕을 비롯해 좌평 4인과 2만 9,600명에 이르는 군사가 모조리 죽음을 당했다. [삼국사기]에 “한 필의 말도 돌아간 것이 없다.”고 기록했을 만큼 비참한 최후였다.

 

 

일곱 살에 왕위를 이어 받았다

관산성 전투로 한반도의 중부를 차지하며 삼국통일의 초석을 놓기 시작한 진흥왕의 이름은 삼맥종, 또는 심맥부라고 한다. 법흥왕의 동생 입종 갈문왕의 아들로 534년 태어났다. 어머니는 법흥왕의 딸인 지소부인이다. 갈문왕이 자신의 조카딸과 결혼했다는 것인데, 같은 신분끼리 결혼해야 후손이 그 신분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당시에는 그다지 특별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540년 법흥왕이 정비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한 채 죽자, 일곱 살의 삼맥종이 왕위에 올랐다. 아마 아버지인 갈문왕도 이미 사망했던 듯하다. 대신 왕태후가 섭정을 맡았다. 이때 왕태후는 삼맥종의 어머니인 지소부인을 말한다. 그러니까 법흥왕은 자신의 외손자에게 왕위를 넘기고 딸에게 실질적인 정치를 맡긴 것이다.

 

지소부인이 완공한 흥륜사 터에서 나온 기와조각


따라서 진흥왕 초기 10여 년간 신라를 다스린 것은 왕태후, 곧 지소부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왕태후는 진흥왕 즉위 첫해 죄수들을 사면하고 관리들의 벼슬을 한 등급씩 올려주었다. 그리고 이듬해 이사부를 병부령, 지금의 국방장관으로 임명하여 국가의 모든 군사적인 일을 맡겼다. 귀족들의 협의체인 화백 제도를 통해 정책을 결정해왔던 신라에서 병권을 전담하는 벼슬이 생기고, 왕이 이 벼슬을 임명했다는 것은, 왕에게 권력이 그만큼 집중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한편, 이사부는 지증왕 대에 우산국을 점령한 바 있는 장군으로 어린 왕과 군사적 식견이 부족한 왕태후를 도와 진흥왕 초기 군사와 정치를 이끌었다. 신라 최고의 역사서인 [국사]를 편찬하자고 건의한 사람도 이사부이다. 왕태후는 이 의견을 받아들여 거칠부에게 [국사]를 편찬하게 했다. 또한 왕태후는 국가적 차원에서 지은 최초의 절 흥륜사를 완성하고, 일반 백성이 출가하여 승려가 되는 것을 허락하는 등 불교를 장려했으며, 이후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되는 화랑제도를 만들었다.   

 

 

개국, 태창 그리고 홍제, 세 가지 연호가 가지는 의미

551년 열여덟 살이 된 진흥왕은 연호를 개국으로 고쳤다. 친정이 시작됐음을 알린 것이다. 이해에 진흥왕은 지방을 시찰하며 영토에 대한 관심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영토는 진흥왕 최대의 관심사였다. 젊고 패기만만한 이 왕은 신라가 더는 변방의 작은 나라에 머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친정을 시작한 그 해, 거칠부 등에게 명하여 고구려의 변경을 침략, 지금의 충주와 단양 등 남한강변에 있는 10개 군을 차지했다. 그리고 3년 뒤 관산성 전투를 통해 한반도 중부를 점령한 것이다. 젊은 왕의 걸음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555년에는 가야연맹에 속해 있던 지금의 경상남도 창녕에 하주를 설치했고, 이듬해에는 함경남도까지 영역을 넓혀 안변에 비열홀주를 설치했다. 그리고 6년 뒤에는 고령의 대가야를 멸망시키고 가야의 영토를 완전히 신라에 편입시켰다. 그 결과 신라의 영토는 한반도 땅의 절반 이상을 장악했다. 신라 역사상 최대의 영토였다. 이러한 영토 확장은 삼국통일을 위한 물적, 인적 토대가 되었다.

 

568년 진흥왕은 연호를 ‘크게 번창하다’는 의미인 ‘태창’으로 다시 바꾸었다. 그동안 이룬 영토 확장과 신라의 번영을 자축하는 의미로 읽힌다. 이해 진흥왕은 서울을 거쳐 함경남도 함흥의 황초령, 이원군에까지 자신이 개척한 영토를 직접 순수하면서 백성을 위로하고 포상했다. 또한 이를 기념하고 왕의 위엄을 드러내고자 비들을 세웠다. 북한산 순수비·황초령 순수비·마운령 순수비 등이 이때 세워졌다.

 

1961년에 촬영한 북한산의 신라 진흥왕 순수비, 진흥왕은 당시 한강유역까지 영토를 넓힌 기념으로 이 순수비를 세웠다.

 

 

572년 진흥왕은 또 한 번 연호를 바꾸는데, 새로운 연호는 ‘홍제’이다. ‘크게 구제한다’라는 뜻이다. 백성을 크게 구제한다는 연호에서 마흔 살이 된 진흥왕이 한층 깊어졌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해 진흥왕은 큰 아픔을 겪는다. 태자 동륜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아들을 잃은 슬픔은 진흥왕을 불교로 더 깊게 이끌었다. 진흥왕은 크기가 5m에 이르는 황룡사 장륙존상을 조성하고, 말년에는 머리를 깎은 뒤 승복을 입고 살았다고 전한다.

 

마지막으로 진흥왕이 보인 음악적 관심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지방을 시찰하던 중에 가야 출신인 우륵에 대한 소문을 들은 진흥왕은 우륵을 불러 가야금을 연주하게 했고, 552년 계고·법지·만덕 세 사람을 시켜 우륵에게 음악을 배우게 했다. 우륵은 계고에게는 가야금을, 법지에게는 노래를, 만덕에게는 춤을 가르치고 나서 왕 앞에서 연주하게 하니, 왕이 기뻐하며 크게 포상했다고 전한다. 문화적인 안목까지 갖추었던 영웅은 아들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한 탓인지 576년 마흔세 살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주제로 인물 엮어보기영토 확장에 큰 업적을 남긴 정복군주들

진흥왕 진흥왕
신라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개척하다
칭기즈칸 칭기즈칸
몽골제국을 건설한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자 대왕
알렉산드로스 대왕 알렉산드로스 대왕
오리엔트를 정복하여 대제국을 이룩한 군주

 

 

 

 

윤희진/역사저술가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역사 인물을 찾아내고, 왜곡된 인물들의 참모습을 찾아내는 일에 관심이 많다. [한국사 인물이야기] [제왕의 책] [고추장 담그는 아버지] 등의 책을 썼다.

그림 장선환 / 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서울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학과와 동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화가와 그림책 작가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 경희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http://www.fartzzang.com
 
이미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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