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연이 [삼국유사]에 거둬들인 이 이야기만으로 우리는 김대성의 존재를 전달받는다. 그러나 이야기는 다분히 설화적이다. 좀 더 사실적으로 접근해, 역사학자 이기백(李基白)은 [삼국사기] 경덕왕 4년 5월조의 “중시 유정(惟正)이 물러나고 이찬 대정(大正)이 중시가 되었다”는 기록에 근거하여 대정을 대성이라 하였다. 그러나 대정이 누구인지 자세하지 않고, 글자가 비슷하다 하여 대정을 대성으로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런가 하면 모량(牟梁), 밀양(密陽), 대성(大城)이라는 마을 이름을 가지고, 이들은 상당 부분 서로 겹치고 있으니, 김대성의 대성은 실제 이름이라기보다는 대성 출신의 김 씨라는 뜻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김대성의 집안이 가난했고, 이 무렵 모량리 사람들이 사회적 불이익을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연관시켜, 본디 모량리 출신인 대성이 김문량의 집에서 다시 태어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대성의 재탄생은 입양의 설화적 표현으로 보았다.
어느 쪽이 되더라도 [삼국유사]의 대성 이상의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는 없다. 김대정이 어떤 사람이며, 그가 과연 불국사와 석굴암을 지었는지 알 수 없다. 대성이란 마을에 살던 김 씨라고 하면 더욱 그렇다. 그가 김문량의 집에 양자로 가서, 낳아준 어머니와 양부모를 잘 모셨다는 이야기 전개에 무리는 없으나, 그것으로 대성의 정체가 속 시원히 밝혀지지는 않는다. 입양의 증거 또한 없다.
대성의 재탄생 같은 설화적인 구조를 가진 이야기는 다른 예에서도 나온다. 신라 통일기에 활약한 죽지랑(竹旨郞)이 그렇다. 술종공이 삭주도독사로 나가는데, 죽령을 넘어가다 헌칠한 거사 한 사람을 만난다. 두 사람은 호감을 가진 채 헤어지는데, 삭주에 부임한 다음 어느 날 밤 거사가 방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그의 부인 또한 같은 꿈을 꾸었다. 이로 인해 아이를 가졌거니와, 사람을 시켜 거사의 안부를 물은 결과, 꿈을 꾼 같은 시간에 죽었다는 것이다. 술종공은 거사가 자신의 집에 태어날 징조라 여겼다. 이 아이가 바로 죽지랑이다. 죽령에서 만난 거사가 다시 태어났다 하여 지은 이름이었다.
대성이 김문량의 집에서, 거사가 술종공의 집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구조는 같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필요에 따라 만들어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다만 김대성의 경우, 금빛 간자에 이름이 쓰여 있어서 확실한 증거로 삼은 점은 다르다. 대성을 입양하면서도 친자임을 강조하려 생겨난 보강책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