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불화,탱화

보석사 寶石寺

문성식 2015. 5. 15. 14:04
소재지 : 금산군 남이면 
원문참조 및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전통사찰종합정보 
사진출처 : 20100729 촬영 

IMG_0111.JPG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 진악산 소재.

 

〔연 혁〕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 창건 당시 절 앞산에서 채굴한 금으로 불상을 주소하였기 때문에 보석사란 절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1918년 간행된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 의하면 보석사의 창건연대는 신라 헌강왕 12년 886년에 조구(祖丘)조사가 창건하였다 한다. 헌강왕은 886년에 죽었기 때문에 886년은 정강왕 1년이 되기도 하여 어떤 기록에는 보석사의 창건연대를 정강왕 1년(886)으로 보기도 하나 <<조선불교통사>>에 따라 헌강왕 12년(886)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 싶다.

 

그렇다고 하여 보석사가 886년 조구조사에 의하여 창건되었는지는 아직 미상이다. 조선시대 태조 때 국사를 역임한 조구(祖丘)국사가 있는데 신라의 조구대사는 아무래도 조선시대의 조구국사를 가탁(假託)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조구국사는 천태종 승려이고 보석사의 주전각도 대웅전이라 둘의 관련성도 높다. 천태종에서 받드는 부처는 석가모니불이고 대웅전의 본존불도 석가모니불이다.

보석사는 1530년대까지 존속하였고 이 절이 소장했던 1649년작 감로왕도(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나 1760년작 범종의 예에서 보듯이 18세기 중후반까지 사격을 유지한 것으로 보이나 18세기 말기에는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보석사가 다시 중창의 전기를 맞게 된 것은 1830년대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승병장 영규대사의 공적을 기렸던 것이 계기가 된 듯하다. 영규대사는 갑사와 보석사를 오가며 선과 무예를 닦았다고도 한다. 일설에는 명성황후가 중건했다고도 한다. 영규대사를 기린 <의병승장비>는 일제강점기 땅에 파묻히는 수난을 당하기도 하였다. <의병승장비>는 우의정 조인영이 지었고 전(前) 금산군수 조최영이 글씨를 썼다. 보석사는 1912년 30본산의 하나로 33개의 말사를 거느리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마곡사의 말사이다.

 

〔당우 및 문화재〕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진영각·심검당(尋劒堂)·산신각·응향각(凝香閣)·체실(體室)·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다포집 맞배지붕이며, 법당 내부에는 석가모니불·관세음보살·문수보살의 좌상(坐像)을 모셨는데, 조각수법이 정교하고 섬세하며, 상호가 원만하고 자비로워 조선시대 불상 중에서는 극치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진영각은 휴정(休靜)·유정(惟政)·영규(靈圭)의 영정을 모셨던 곳이나 최근에 영정을 도난당하였다. 또한 이 절의 의병승장비(義兵僧將碑)는 공주의 청련암(靑蓮庵)과 보석사에서 무예를 익힌 뒤 임진왜란 때 왜병과 싸우다가 전사한 승병장 영규의 순절비로서, 1839년 5월에 금산 군수가 절 입구에 세운 것이다.

 

영규가 순국한 내용을 적은 이 비는 민족항일기에 일본인에 의해서 자획이 뭉개지고 땅에 묻혔던 것을 1945년 정요신(鄭堯臣)이 찾아서 다시 세웠으며, 높이는 약 4m이다.

이 밖에도 절 입구에는 둘레 11m의 큰 은행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창건주 조구가 제자 5인과 더불어 육바라밀(六波羅蜜)을 상징하는 뜻에서 둥글게 여섯 그루를 심은 것이 하나로 합해졌다고 하며, 나라에 이변이 있을 때는 24시간을 운다고 한다.

 

〔설화〕

보석사와 관련된 설화는 세 가지가 전해져 오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보석사(寶石寺)라는 절 이름은 절의 앞산 바위에서 금을 채굴하여 불상을 조성한데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불상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으로 전해진다.

 

두 번째는 3년간의 가뭄으로 마을에 물이 귀해지자 보석사 스님이 백일기도를 드렸는데, 회향하던 날 암굴에서 물이 솟아나왔다. 물이 솟아나온 자리가 지금의 영천이다.

 

마지막 이야기로, 보석사를 창건한 조구대사가 다섯 제자와 함께 육바라밀을 상징하는 여섯 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었는데, 이 은행나무가 한그루로 성장하였고 6·25 등의 국난이 있을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교통 안내〕

 자가용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경우 : 대전비룡분기점 → 대전남부순환도로 → 대진고속국도 → 추부IC → 금산IC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경우 : 서대전분기점 → 대전남부순환국도 → 대진고속국도 → 추부IC → 금산IC
 

금산IC에서 795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우회전하여 725번 길로 들어서면 석동리다.


 

대중교통
서울에서 강남버스터미널에서 금산까지 2시간 40분정도 걸리는데 새벽6시부터 저녁6시30분까지 1시간30분 간격으로 하루 여섯 차례 운행된다.


대전에서 대전 동부터미널에서 새벽6시부터 저녁 10까지 5 ~ 1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버스가 있다. 금산까지는 50분 걸린다.
열차를 이용하는 경우 서울에서 대전까지 새마을호로 1시간35분정도 소요되며, 부산에서 대전까지는 새마을호로는 2시간 45분, 무궁화호로는 3시간15분 걸린다.

 

금산읍에서 남이 석동방면의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석동리에서 하차하면 된다. 1일 5회 운행되며 금산읍에서  석동리까지 15분에서 20분정도 걸린다. 아침7시10분에서 저녁6시10분까지 그 시간에만 버스를 운행하고 있어 이용시간이 제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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