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불화,탱화

대조사 大鳥寺

문성식 2014. 11. 13. 16:53
소재지 : 부여군 임천면 
원문참조 및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전통사찰종합정보 
사진출처 : 20100803 촬영 

IMG_0032.JPG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 성흥산(聖興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부여읍지 扶餘邑誌≫에 의하면 이 절은 인도에 가서 범본(梵本) 율장(律藏)을 가지고 돌아와서 백제 불교의 방향을 달리한 겸익(謙益)이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다.

 

또, 사적기를 참작하여 기록한 현판에 의하면 이 절은 527년 담혜(曇慧)가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다. 창건주에 대한 설은 다소 다르지만 이들이 모두 6세기 초에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뒤 이 절은 고려 원종 때 진전장로(陳田長老)가 중창하였고, 그 뒤 1989년에는 명부전, 1993년에는 종각, 1994년에는 미륵전을 각각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보전과 용화보전·명부전·산신각·범종각·요사채 등이 있으며, 대웅전 뒤에 있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이 보물 제217호로 지정되어 있다.

 

IMG_0031.jpg전설에 의하면 한 노승이 이 바위 밑에서 수도하다가 어느날 한 마리의 큰 새가 바위 위에 앉는 것을 보고 깜박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어느새 바위가 미륵보살상으로 변하여 있었으므로 이 절을 대조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절에는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90호인 삼층석탑 1기가 있다. 이전에는 옥개석(屋蓋石)만 있었으나, 1975년 옥신(屋身)이 발견되어 복원하였다.

 

12.gif 지정문화재 목록 및 해설

대조사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217]

대조사석탑[충남 문화재자료 90]

 

12.gif 창건설화

대조사의 창건은 백제 때의 고승 겸익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대조사미륵실기>에 의하면 겸익이 인도국의 상가나대진사에서 5년간 수학하고 법문에 통달해서 아운장 5부 진문을 가져다가 72권의 역본을 만들어 흥륜사에 두었더니 어느 날 밤 꿈에 관세음보살께서 손에 광명주를 들고 나타나시어 불경 번역이 잘 되었다고 찬탄하시고, 갑자기 대조로 화하여 날아가 임천 가림성에 앉는 듯하더니 사라진 순간 꿈을 깨신 겸익대사는 대조가 날아간 곳을 따라 가림성위에 도착하여보니 대조는 간 곳이 없고 꿈에서 친견하신 관세음보살이 앉아 계시더니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앗!’ 하고 놀란 겸익대사는 꿈속에서 지른 자기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이 깨었다.

 

‘꿈은 꿈이로되 신기한 꿈도 다 꾸었구나?’ 겸익대사는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모든 것은 꿈에 돌리고 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노승은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같은 시각에 같은 꿈을 꾸는 것이었다. 겸익대사는 그제 서야 일이 예사가 아니요. 하늘이 뭔가를 계시하는 현몽임을 깨달았다. 겸익대사는 이 사실을 임천골의 성주에게 알렸다. 성주는 반신반의하면 산에 올라와 그 바위 앞에 다가서 봤다. 그러자 그 순간이었다. 큼직한 바위전체가 마치 황금덩어리인양 휘황찬란하게 빛나며 관세음보살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소스라치게 놀란 성주는 그만 그 자리에 엎드려 합장기도를 했다.

 

이 사실을 당시 백제 서울이었던 웅진에서 전해들은 성왕은 적지 않게 감동했다. 그렇지 않아도 성왕은 장차 서울을 협소한 웅진으로부터 광활하고 산수의 미를 곁들인 소부리(지금의 부여)로 옮길 마음을 가졌던 터라, 그렇게 되면 성흥산성은 수도의 서남방 즉 중국대륙으로부터 침공하는 외적을 막는 가장 중요한 곳이 될 것이었다. 성왕은 이때부터 그 자리에 불력으로 국가안태와 소호를 비는 큰 절을 짓기로 마음 먹었다. 성왕은 많은 사공을 동원하여 드디어 성왕 5년 4월 초파일 석가여래의 탄신일을 기하여 공사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 절의 창건불사는 국영으로 규모가 큰 공사였으므로 애당초 십 년의 세월이 소요될 듯하였으나 성왕은 사공을 주야로 투입하여 공사 진척을 서둘게 하였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공사현장은 대낮처럼 새가 날아와 울러 주위가 밝아지는 것이 아닌가. 이리하여 사공들은 밤일을 낮일과 아무 차이 없이 그리고 피로를 씻어주는 새소리를 들으며 열심히 일할 수가 있었으니 공사는 성왕 10년의 4월 초파일 석가탄신일에 준공을 볼 수가 있었다. 실로 공사 기간이 애당초 예측했던 10년의 절반 5년으로 단축되었던 것이다.

이날의 준공법회에는 성왕도 멀리 웅진에서 찾아와 참석하였다. 성대한 법회가 끝날 무렵이었다. 처음 황금빛의 큰새가 내려앉아 울었던 그 자리에 세워진 탑에서 한 마리의 큰새가 나래 치며 나타나더니 서쪽을 향하여 날아가는 것이었다.

 

이 신비스러운 일로 대조사란 이름을 짓게 된 이 절은 그로부터 백 수십 년간, 웅진으로부터 소부리로 천도한 백제수도를 지키는 성흥산성의 영장으로서 존속하였으며, 백제의 그 많은 성들이 18만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함락되었을 때도 끝끝내 적병을 접근시키지 아니하였던 신술을 발휘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미륵보살이 비치던 거암은 후세 고려시대에 이르러 기어이 웅대한 미륵보살 입불로 조각되었으니, 그 키가 자그마치 55척이요 둘레는 16척이나 되는 것이다. 논산의 은진 미륵이 약간 키가 크기는 하나, 둘, 셋을 조각하여 합친 것이요, 대조사의 미륵은 하나의 대암으로 이룩된 것이 특징이다. 백제 망국의 설움은 여기에도 반영되어 대조사의 미륵은 오로지 묵묵부동으로 동녘을 바라보며 그 옛날 사라진 황금새가 다시 찾아오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12.gif 교통안내

대조사를 찾으려면 서울이나 부산 등지에서 부여를 찾아 오면 비교적 쉽게 찾아올 수 있다. 대전에서 부여를 거쳐 국도 29번을 따라 강경방향으로 가다보면 이정표에 임천면사무소를 찾아들어가다 대조사를 찾으면 된다.

 

천안논산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연무 IC에서 국가지원지방도록 68번을 타고 국도 29번을 들어서서 찾아갈 수도 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바닷가를 갔다가 해미 IC에서 내려서 덕산•예산 방면으로 직진한다. 직진하다 보면 한서대학교를 지나고 그 길을 따라 계속 가다가 보면 45번 예산•아산 방면으로 또 직진한다. 직진하다가 우회전 32번 도로 공주•유구 방면으로 계속 가다가 645분기점에서 청양방면으로 직진한다. 645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25번 청양•부여 방면으로 직진하다가 29번 도로로 계속 직진한다. 36번 분기점에서 36번 보령•청양방면으로 우회전 직진하다가 1km쯤 가다가 29번 부여 방면으로 좌회전해서 계속 직진하다가 606번 분기점에서 29번 부여•규암방면으로 직진한다. 금강다리를 건너 가기 전에 금강하구언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5km 쯤 지나면 대조사 푯말이 나오고 거기서 다시 6km쯤 가다가 보면 다리에서 우회전해서 다시 좌회전해서 직진하다가 3km쯤 마을에서 좌회전한다.

 

서울에서 부여까지는 남부터미널에서 경부와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직행버스가 상오 7시부터 하오 6시까지 1일 6회, 천안과 공주를 경유하는 직행버스가 상오 6시 30분부터 하오 7시까지 1일 20회가 운행된다.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30분 간격으로 고속버스가 운행 중에 있다. 이외 대도시에서는 부여로 가는 시외ㆍ고속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으며, 철도는 서울에서 장항선을 이용하면 10분에 1대씩 철도가 운행 중이다. 부여에서 대조사 ․ 성흥산성을 경유하는 임천행 버스가 오전 7시 20분부터 오후 8시 30분까지 20분 간격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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