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알아야 할 청소년의 심리 - 1
나는 누구인가(정체감 혼란)
흥미와 적성의 발견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무엇을 하면 나의 삶이 가치있고 만족스러울까,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점점 더 많은 현대인들의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양한 역할이 요구되며, 여러 가지 모순되는 가치관이 충돌하는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근원적인 고민과 관련된 심리적인 문제가 점점 증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라고 하겠다.
특히 청소년들 가운데 자신의 적성이 무엇인지, 자신이 무엇에 흥미를 느끼고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면 잘할 수 있는지, 앞으로 뭐가 되고 싶은지 잘 몰라 갈팡질팡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어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고,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평생을 바칠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소질이 없거나, 소질과 열망은 있는데 주변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거나, 아니면 내가 정말 무엇을 원하고 좋아하는지 잘 모른 채 그저 주어지는 대로, 썩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그리 나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우연한 기회에 발견될 수도 있다. 다양한 것을 아무런 조건이나 강요 없이 경험해 볼 기회가 주어지고, 어떤 것에 흥미를 느껴서 계속해 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면 우리는 자신의 적성과 흥미에 맞는 일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흥미검사나 적성검사도 많이 개발되어 있기는 하지만 검사결과만을 가지고 개인의 적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려우며, 우리나라 교육 실정에서 진로를 결정하는데 체계적으로 활용되지는 못하고 있다.
적성이나 소질은 상당 부분 타고나지만, 이를 어떻게 일찍 발견하고 개발할 수 있는가에서는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부모들은 당연히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자식에게 강요하고 전수하고 싶어 한다. 그것이 어떤 면에서는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자식을 위하는 방법일 것이다. 물론 부모가 가진 바른 가치관과 사회적 규범을 내면화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자녀가 건전한 도덕성과 안정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 자신의 가치관이 확고해야 하고, 자녀가 부모의 생각을 내면화하려는 자연스러운 동기가 생기도록 부모 자녀 관계가 원만하고 부모가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부모의 눈높이에서 부모가 옳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자녀에게 강요하지 말고, 자녀가 다양한 활동을 경험해 보고 자기 나름대로 독립적으로 인생관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렇게 하기란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자기만의 가치관을 발전시켜 나가고, 독특하고 고유한 자기감(sense of self), 즉 자아정체감(identity)을 형성하게 된다.
요즈음 부모들은 어린 시절부터 자녀들에게 피아노, 바이올린, 발레, 그림, 수영, 태권도 등을 가르치기 위해 하루에도 몇 군데의 학원에 아이들을 보낸다. 그중 잘하고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확실하게 밀어주겠다는 것이 요즘 신세대 부모들의 사고방식이다. 뿐만 아니라 영어, 수학, 과학 과외나 학습지 등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서 거기서 즐거움을 얻기보다는 대개 자신들의 의사와는 별개로 부모들이 계획한 대로 시간에 쫓기듯이 따라가다 보니 하루하루가 힘겹고 지치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장기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현재 느끼는 어려움을 감내하고 극복할 만한 능력이 아직 발달되어 있지 못하다. 당장 하고 싶고 얻고 싶은 욕구를 지연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 발달되지 않은 아동들은 어려운 고비가 닥치면 무조건 하기 싫다고 떼쓰거나 짜증을 내고 울기도 한다. 이것이 아이들이 힘든 상황을 회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이때 자녀가 끈기를 가지고 지속해볼 수 있도록 격려하고 그 고비를 넘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기도 하다. 부모가 아이를 위하여 아이 의견을 존중하며 뭘 배우도록 하고, 어떤 활동을 하도록 강요하는 것인지, 아니면 혹시 부모가 못 이룬 꿈을 대신 이루게 하기 위해 아이의 능력 밖의 일을 지나치게 강요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즉, 부모들은 스스로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자기애적 욕구의 확장(narcissistic extension)으로 자녀에게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강요할 수도 있다.
물론 부모가 아이들에게 모든 가능한 기회를 다 접하게 해줄 수는 없다. 아이의 흥미와 적성을 완벽하게 파악해 내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지금 현재 상황에서 아이가 접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능한한 최대로 넓혀 주고, 그 안에서 아이가 흥미를 느끼는 것에 대해 격려와 지지를 보내 주는 것이 가장 최선일 것이다. 아이가 흥미를 느끼는 영역이 부모가 보기에 별로 가치 없어 보이고 때로 쓸데없어 보인다 하더라도 일단 존중하고 믿어주며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리 봐도 이런 활동에 몰두하는 것이 오히려 아이에게 해가 될 것 같다고 판단되는 경우라면 이를 납득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득하고 대화를 나누어서 아이가 수용할 수 있게 해야한다. 그래도 듣지 않을 경우에는 부모의 권위를 이용하여 통제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아동이 자동차에만 집착하여 식구들이나 또래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하루 종일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자동차 그림만 그리고, 자동차 모형을 수집하느라 한 달에 수만 원에서 수십만 원을 낭비한다면, 이는 발달적으로 건강한 의미에서 자동차 디자인에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으며 이러한 행동은 사회적 능력의 발달을 더욱 저해할 뿐이다.
부모들은 아이가 사달라는 대로 자동차 모형을 사주거나 아이가 그린 자동차 그림을 매번 잘 그렸다고 칭찬해 줌으로써 그런 행동을 강화하기보다는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면 처음에는 떼를 쓰고 울고불고하겠지만, 이런 행동은 일관성 있게 무시해야 한다.
부모가 알아야 할 청소년의 심리 - 2
나는 누구인가(정체감 혼란)
권위적인 부모와 권위주의적인 부모
권위적인 것과 권위주의적인 것은 엄연히 다르다. 부모는 윗사람이고, 아랫사람이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판단할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그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한 권위적 대상이다. 아랫사람이 당연한 것으로 수용하고 이를 기꺼이 따르고자 할 때 윗사람이 권위가 있다, 혹은 권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가 권위가 있어야 자녀가 안정적으로 부모나 어른들의 가치관과 안정감을 내면화하고 예의를 갖출 수 있게 된다.
권위주의적인 것은 자신이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이용하여 권위를 휘두르고, 그 권위만으로 그럴 이유가 없는 영역까지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고 따르기를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권위주의적인 부모는 자녀의 자율성과 주도성, 자발성, 창의성의 발달과 발휘를 저해할 뿐아니라 이를 좌절시키는 과정에서 자녀들의 우울감과 분노감을 유발시킬 수 있다. 또한 권위적 대상에 대한 저항감과 거부감을 유발하여, 권위주의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후 윗사람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중요한 사항은, 판단 능력과 통제 능력이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아이에게, 아이를 존중하고 자율성과 주도성을 발휘하게 한다는 명분하에 중요한 판단과 결정을 하도록 전적으로 맡기는 것은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인가 판단하고 결정을 하는 주체가 되면 그 일의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아이를 존중해 준다고 했다가 오히려 아이에게 무거운 책임을 지워주는 셈이 될 수 있다.
그 결과가 부정적일 때 아이는 수치심과 우울감, 특히 부모가 자신의 결정 때문에 어떤 희생을 치렀을 때에는 심한 죄책감에 빠질 수가 있다. 아이가 결정할 능력이 없는 사항을 결정하게 하는 것은 아이와의 갈등과 실랑이를 피하려는 부모의 편의주의적 발상일 수 있거나, 나는 아이를 존중하는 민주적인 부모라고 생각하려는 자기만족적 행동일 수도 있다. 당장은 아이에게 원망을 들을 수 있겠지만, 정말 아이에게 득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판단하고, 일단 판단을 내리면 소신 있게 밀고 나갈 수 있는 확신과 자신감이 부모에게 필요하다.
또한 적절한 제재와 좌절, 포기 경험이 너무 없다면 청소년이 되어도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얻고, 이루어져야 한다는 유아적인 자기중심적 태도가 유지될 수 있다. 어린 유아들은 자기가 이 세상의 중심인 것처럼 누구나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는 것처럼 행동하는데, 이는 그 연령대에서는 정상적인 현상이다. 특히 부모들은 2세까지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즉각적으로 다 만족시켜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2세 무렵에는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거나 고려할 수 있는 인지적 능력과 욕구 만족을 지연하는 능력이 아직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상적인 자기중심성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모의 훈육, 친구나 동생에 대한 양보, 포기 경험 등을 통해서 점차 옅어지고, 타인과 주변 상황을 고려할 수 있는 공감능력이 발달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좌절 경험이 너무 없는 아이는 유아적인 자기도취를 벗어나서 성장하지 못하고 자기애적 성격(narcissistic personality)은 불가피하다. 자라오면서 적절한 좌절을 경험하고 이를 극복하는 경험도 필요하다.
부모가 알아야 할 청소년의 심리 - 3
나는 누구인가(정체감 혼란)
부모와 아이 사이의 적절한 경계 유지
아이의 적성과 능력을 찾아내서 격려하고 무언가를 이루어 내도록 도와줄 때 이를 부모의 대리만족으로 여겨서는 곤란할 것이다. 물론 부모가 이루지 못한 자신의 꿈을 아이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성취하고자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아이를 진정으로 위한다면, "내가 너에게 이렇게 많은 것을 해주었다"라고 말하거나 "내가 너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는지 아느냐"와 같은 공치사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좋은 대학에 가야만 네가 자랑스러운 자식이라는 메시지도 전달해서는 안된다. 이는 자녀에게 심적 부담을 주고 부모에 대한 부담감과 원망, 양가감정과 죄책감을 유발하는 등 여러 가지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일부 어른들 중에는 아들이 높은 자리에 있으면 "우리 아들이 누군지 아느냐?"라며 다른 사람들에게 호통을 치며 당연히 대접받기를 바라거나, 반대로 부모가 부자이거나 높은 자리에 있으면 자신도 그런 지위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신분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미숙하고 몰지각한 어른이나 청소년들이 있다. 부모와 자녀 간에 독립적인 개체로서 경계가 확립되어 있지 못할 때 이런 씁쓸한 일이 발생한다.
하루 종일 아이에게만 매달려 자신을 전적으로 희생하며 "아이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다 하겠다"는 어머니들이 특히 요즘 많이 있다. 자녀를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특히 어머니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아이들에게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헌신은 참으로 숭고하고 고마운 사랑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누군가는 '신은 어디에나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드셨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여기에서 '무조건적'이라는 단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중에 내 노후를 책임지라고, 부모의 노고를 인정하라고, 나를 사랑해 달라고, 나 대신 성공해 달라고 아이에게 돈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아이를 기르면서 의식적으로 이런 주장을 하는 부모는 없겠지만, 무의식 속에서 아이를 자기의 연장으로 여기고 있다면 위와 같은 메시지는 암묵적으로 자녀에게 전달될 수 있다. 부모와 자식은 일촌의 가까운 관계이지만, 각자가 고유한 인격과 욕구를 가진 독립적인 존재이다. 각자가 자신의 경계를 잘 지키고 상대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을 때 진정으로 건강한 부모 자녀 관계가 될 수 있다.
부모의 역할을 다 하되, 부모로서 자신의 영역과 아이의 독립적인 영역을 존중하고, 자식에게 모든 것을 걸기보다는 부모 자신의 자기-가치감을 높이는 일에도 힘쓴다면 이를 지켜보는 아이 또한 자신과 타인을 균형 있게 사랑하고 존중하는 성인으로 자랄 수 있다. 부모 스스로 자기에게 만족하고 편안해야 아이에게도 더 좋은 부모 역할을 할 수 있다.
마지못해서 한다거나, 힘들고 버거우면서도 남에게 보이기 위해 아이에게 헌신해야 한다는 내적, 외적 압박감으로 인해 아이를 위해서만 자신의 인생을 모두 쏟아 붓는다면, 그것은 부모 자신에게뿐 아니라 아이에게도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다. 부모가 자기 삶에서, 그리고 부모로서의 자기 역할에 대해서 주인의식을 가질 때, 자녀도 자기 삶에 대해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부모가 알아야 할 청소년의 심리 - 4
나는 누구인가(정체감 혼란)
자녀의 자아정체감 확립과 부모의 역할
내가 누구인가? 내가 정말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건 무엇일까?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으며, 내 종교관, 인생관, 이성관은 무엇인가? 소위 '자아정체감'이라고 언급되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고민과 혼란감은 자의식이 급증하고 사춘기 변화에 따라 이차성징이 나타나고 호르몬 변화가 오면서 감정이 불안정해지는 청소년기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마셔(J.E.Marcia)라는 심리학자는 자기 자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본 후에 자아정체감을 확립한 청소년들이 가장 건강하고 안정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정체감 위기를 거치지 않고 부모의 사고방식과 직업, 가치관을 아무런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는 정체감을 확립한 것이 아니라 유예된 것일 뿐이며, 차후에 큰 스트레스가 닥치거나 권위적 대상의 도움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면 정체감이 흔들리고, 심리적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예를 들어서, 가업을 잇는다거나 부모님의 권유로 의대나 법대 등에 진학했다가 나중에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게 다른 것이라고 깨닫게 되어 늦었지만 다시 시작하여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걸 찾게 된 경우는 다행이지만,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고 절망에 빠지게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표현하듯, 청소년기는 앞날에 대해서 아직 분명히 결정된 것 없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탐색해 가는 불안정한 시기이다. 그러한 불안정감을 견디면서 세상을 경험해 보고,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는 탐색과정을 청소년기에 거쳐야만 확고한 자아정체감이 확립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중, 고등학교 시기에 자신의 인생 여정에서 직면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탐색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모든 활동이 대학 입시 위주로 계획되어 있어서, 교육 제도에서 내신을 중시한다고 하면 내신 공부에, 수능에 중점을 두겠다고 하면 수능에 치중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수도권에 사는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자기 삶의 주인이 아니라 부모가 짜준 스케줄에 따라 바쁘게 움직이는 꼭두각시 같은 모습일 뿐이다.
이러한 와중에서 내가 정말 무엇을 좋아하고 또 잘하는가를 깊이 탐색해 본다는 것은 어쩌면 생각조차 못할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생이 되면 이미 확고하게 다져진 목표의식과 주인의식을 가지고 앞으로 매진하는 외국의 대학생들과 달리, 우리나라 학생들은 너무나 분명하게 나에게 주어졌던 대학입학이라는 목표가 사라지고 나면, 무엇을 향해 달려야 할지, 무엇에 가치를 두어야 할지 몰라 혼란에 빠지게 된다. 요즘은 조금 달라져서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대학생들이 학창시절 여러 가지 인턴 경험이나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추세라고 한다. 그러나 이 역시 더 나은 직업과 안정된 수입을 얻기 위한 욕구에서 나온 것일 뿐, 자기 삶에서 진정한 충족감과 의미에 대해 깊이 고민하여 정한 목표의식의 발로라고 볼 수 있는 경우는 아마 드물 것이다.
역으로 이러한 탐색과정이 지나쳐서 완벽한 선택을 해야겠다는 조바심에 오히려 우유부단해지고, 꾸물거리게 되고, 현실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고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게 될 수도 있다.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무궁무진한 세상의 기회들 중에서 자신에게 딱 맞는 것을 완벽하게 찾아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해 보고, 능동적이면서도 유연한 자세로 삶의 여러 가능성에 접하여 융통성 있고 현실적인 안목으로 자신의 길을 택하는 것이다.
이제는 부모들도 전통적으로 부와 명예, 안정된 수입을 보장하는 직업이 최고라는 낡은 가치관을 버려야 한다. 지금은 21세기이고 초고속으로 변화하는 모바일 시대인 것이다. 필자는 구세대 부모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고, 컴퓨터, 비디오카메라와 MP3 플레이어, 핸드폰 등의 전자기기들을 장난감처럼 자유자재로 다루는 신세대 자녀를 키우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우리 같은 세대를 구세대와 신세대에 끼어있는 '낀세대'라고 표현했던게 기억난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한번 잡은 직장은 평생직장이라는 생각이 남아 있지만, 우리 아이들 세대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계속 움직이는 모바일 세대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가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로 함께 할때 소중함을 (0) | 2014.01.22 |
---|---|
가족이란 (0) | 2014.01.22 |
부모 이혼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 (0) | 2014.01.22 |
독백적인 사랑과 대화적인 사랑 (0) | 2014.01.22 |
노년에 혼자 사는 방법 (0) | 2014.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