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존재란 가까이 있고, 늘 있으면 그 소중함을 모른 채 지내기 일쑤다. 2013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 계획으로 가까이 있어 아름다움을 잊고 지낸 우리 국토의 소중함을 느낄 기회인 여행하기를 넣어 보는 건 어떨까? 유례없이 춥다는 올 겨울, 그럴수록 눈과 입이 즐거운 곳을 찾아 추위를 잊는 것이 겨울을 잘 보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일 것이다. 여기, 국내여행 마니아들이 혹한도 잊을 만큼 멋진 명소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겨울은 추워야 제격이다. 또한 발목까지 푹푹 빠질 정도로 눈도 많이 와야 진정한 겨울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바람은 일상의 생활터전이 아닌 야생을 즐기고 싶은 곳에 한정하고 싶다. 너무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겨울여행을 앞둔 여행자의 속내는 누구나 이렇지 않을까. 화려한 눈꽃과 백두대간의 용트림, 덕유평전의 광활함을 모두 체험할 수 있는 무주 덕유산에서 제대로 된 겨울을 맛보자.
환상의 눈꽃터널을 지나고 있는 등산객. |
스키어와 스노보더의 지상천국 무주리조트
중부지방에 우뚝 솟아 지붕역할을 담당하는 덕유산. 그 높은 고지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악형 리조트 덕유산 무주리조트가 자리하고 있다. 겨울스포츠의 중심축인 스키와 스노보드의 메카와 같은 곳으로 충청도는 물론 경상도와 전라도 마니아까지 흡수하고 있다.
겨울철 눈 내린 덕유산과 이국적인 리조트 건물이 조화를 이뤄 스위스의 어느 산간마을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꿈에 그리던 알프스의 풍광을 빼닮은 호텔티롤은 낭만적인 분위기 속에서 고급스러운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설원을 질주한 뒤 몸을 녹여주는 따끈한 차를 이곳에서 즐긴다면 겨울여행의 진수를 맛보는 선택받은 사람이 될 것이다. 이처럼 주변 풍광이 아름다워 800만 명 이상을 극장으로 끌어들인 영화 <국가대표>의 촬영지로도 선정되기도 했었다.
눈 내리는 스키장 풍경. |
덕유산 무주리조트는 개인의 스키 실력에 따라 슬로프를 선택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코스는 덕유산 설천봉에서 내려오는 코스로 길이 6.1km, 표고차 810m에 이르는 국내 최장거리다. 코스 난이도는 초중급자에게 적합하다. 무엇보다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는 덕유산 높은 고지에서 눈보라를 일으키며 질주하는 짜릿한 쾌감은 맛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
가장 난이도가 높은 곳은 상단평균 경사도가 70%로써 국내 최고 경사도인 레이더스 슬로프다. 직벽으로 느껴질 만큼 아찔한 코스이기 때문에 리조트측은 탑승에 앞서 보험가입을 권한다. 그 외에 초중급자 슬로프로는 루키힐 슬로프와 서역기행 슬로프 등이 있고, 중급이상코스는 커넥션 슬로프가 있다.
곤도라가 있어 별천지를 쉽게 오르다
향적봉으로 올라가는 데크. |
국립공원 덕유산의 최고봉 향적봉은 1614m로 남한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이다. 단순히 산의 높이로만 본다면 눈앞이 까마득해질 정도다. 도전하기도 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관광곤도라’가 운영되면서 이런 걱정은 눈 속에 파묻어도 좋다. 남친앞에서 약한 척 내숭을 떨어야 하는 연약한 여친도 곤도라가 있어 더 이상 힘든 내숭은 금지다.
덕유산 설천봉은 선계의 모습을 닮았다. |
하지만 곤도라를 타고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짜증은 바닷물 빠지듯 순식간에 물러간다. 올라가는 길은 천국으로 가는 것 같다.
손대지 않고 코푼 사람처럼 계면쩍기도 하련만 곤도라에서 내리는 순간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 덕유산 설천봉의 풍광이 가히 압권이기 때문이다.
사방으로 그칠 것 없는 전망이 우선 감동으로 물결친다. 먼발치에 펼쳐진 겹겹 산중의 모습도 장관이다.
발아래에 스키어와 스노보더들이 활주로를 질주하듯 내달린다. 이 세상에는 흰색과 파란색만 있는 것 같다. 파란 하늘에 두둥실 떠있는 구름은 부드러운 아이스크림 같고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파르르 떨고 있는 눈꽃은 다이아몬드보다 영롱하고 아름답다.
인간의 솜씨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의 경이로운 걸작이다. 이 모습을 보기 위해 완전무장을 하고 추운 바람 맞으며 곤도라를 기다렸으리라. 실망시키지 않는 멋진 자연에 인증샷을 찍기에 정신이 없다. 파란하늘은 더욱 파랗게 흰눈은 더욱 희게 나온 사진을 보고 나도 사진작가가 된 듯 어깨가 으쓱해진다.
백두대간을 사진기에 담고 있는 등산객. |
환상의 눈꽃터널과 세상의 중심 향적봉
설천봉을 지나 향적봉으로 가는 길은 지금까지의 본 눈꽃이 하찮았음을 깨닫게 된다. 이름하여 ‘덕유산 환상눈꽃터널’에 들어서는 순간 묘한 흥분을 경험하게 된다. 마음속에 조금의 검은 티끌이라도 있다면 모두 내려놓고 이 터널을 지나야 할 것 같다. 저마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해 “우와”하고 고드름이 된 사람처럼 발걸음이 더디기만 하다.
보석보다 아름다운 눈꽃. |
고요했던 하늘에 바람이 몰아친다. 가냘픈 나뭇가지에 터를 잡았던 눈꽃이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꽃잎을 휘날린다. 작은 꽃잎은 빛을 받아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인다.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지만 시선만큼은 눈꽃에 고정되었다. 마음이 급해진다. 여기가 전부가 아님을 알기에 발걸음을 재촉한다. 향적봉에 오르면 더 멋진 풍광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아기자기한 눈꽃터널을 지나자 눈앞을 가로 막아선 봉우리가 보인다. 향적봉이다. 살을 베는 듯한 강한 바람을 막아줄 구조물 하나 없다. 오로지 몸으로 바람과 맞아야 하고 전진해야 한다. 그렇게 수십 계단을 올라 드디어 향적봉에 올라선다.
겹겹의 산맥들이 발아래에서 머리를 조아린다. 세상의 중심에 올라선 기분이다. 그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제아무리 무덤덤하고 무감각한 사람이라도 이 순간만큼은 탄성을 지를 것이다. 바람과 구름이 허락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덕유산의 진면목을 보는 순간이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이 파노라마 영화의 배경음악처럼 웅장하게 들린다. 눈꽃의 휘날림은 정상에 올라온 이에게 전하는 승전의 꽃가루 같다.
덕유산에 오르면 세상은 흰색과 파란색 뿐이다. |
대피소에서 먹는 컵라면은 수라상보다 귀한 맛이다
향적봉을 지나면 중봉이다. 중봉으로 향하는 길은 고산지대를 걷는 기분이다. 강한 바람에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스틱을 이용해 몸의 중심을 잡고 머리를 숙인 채 전진한다. 설천봉이 여성스러운 눈꽃터널이었다면 중봉을 향하는 길은 남성미가 물씬 풍긴다. 그것도 아주 거친 남성이다. 때문에 겨울 심설산행은 등산복과 장비가 중요하다.
향적봉 대피소는 중봉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바람을 피할 수 있고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라면과 커피로 몸을 녹이고 허기를 채우고 있다. 변변한 식탁도 없이 땅바닥에서 먹는 컵라면이지만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다. 뜨끈한 국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면 찌릿한 오르가슴을 느끼는 것처럼 몸을 비틀게 된다. 이 맛에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산을 찾았다.
중봉으로 향하는 등산객이 바람과 맞서고 있다. |
고독한 위엄이 넘치는 덕유평전을 지나 하산하다
당일치기 등산객들은 중봉을 넘어 오수자굴을 지나 구천동으로 하산한다. 약 10km의 구간을 5시간 정도 걷는 코스다. 중봉은 오르내리는 구간 없이 평전을 걷는다. 다리는 힘들지 않지만 평전바닥을 치고 오르는 면도칼 같이 날선 바람에 얼굴을 제대로 들 수 없다. 봄여름에는 광활한 대지 같은 느낌이지만 겨울은 툰드라처럼 고독한 위엄이 넘친다.
덕유평전을 지나 오수자굴로 들어선다. 오수자굴 안은 지금까지 봐온 덕유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수많은 얼음기둥이 위풍당당하게 키 자랑을 하고 있다. 한 방울씩 떨어진 물들이 모여 새로운 형상을 창조한 것이다.
강한 바람이 휘몰아치는 덕유평전. |
이후 백련사로 방향을 잡고 하산하면 당일치기 덕유산 산행이 마무리된다. 덕유산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화려한 눈꽃터널과 감격적인 백두대간의 용트림, 덕유평전의 광활하고 거친 숨결을 고스란히 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덕유산을 찾은 등산객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야기 한다. 덕유산은 겨울 심설산행의 메카라고.
●여행정보
*심설산행 등산복과 장비는 이렇게 챙기세요!
겨울 심설산행의 경우 등산복과 장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선적으로 등산복은 속옷, 중간옷, 겉옷으로 나눌 수 있다. 속옷은 보온성이 뛰어나고 땀을 빨리 흡수하는 동시에 빨리 마르는 것이 좋다. 특히 속옷을 면소재의 옷을 입을 경우 땀을 배출하지 못해 젖은 상태에서 체온이 급격히 떨어져 저체온증을 유발할 수 있다. 중간 옷은 보온력이 뛰어난 구스다운이나 덕다운 같은 소재가 좋다. 마지막으로 겉옷은 바람과 눈을 막아줄 방풍과 방습기능이 필수다.
등산복만큼 중요한 것이 모자, 장갑, 스패츠, 스틱 같은 겨울등산장비다. 모자는 체내온도가 머리로 빠져나가는 것을 차단하고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해준다. 더불어 버프(목 토시)를 함께 착용하면 귀와 목을 동시에 따뜻하게 해준다. 장갑은 얇은 속장갑과 두꺼운 겉장갑을 함께 챙겨야 한다. 스패츠는 눈이 발목 이상 쌓인 곳에서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한다. 아이젠은 미끄럼 방지를 위해, 스틱은 체중을 분산시키고 중심 잡기에 도움을 준다.
선글라스나 고글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장비이니 리스트에 올려놓자. 자외선차단제 역시 중요하다. 눈 내린 산에 피부가 그대로 노출될 경우 여름철 해변에서 받는 자외선의 3배에 달한다. 그뿐 아니라 화창한날 눈에 오랫동안 노출될 경우 시력장애가 올 수도 있다.
겨울 심설산행 복장을 갖춘 등산객. |
* 관광곤도라 이용요금은 왕복 어른기준 1만2000원이며 운행시간 주말기준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다. 리조트 행 셔틀버스는 무주에서 새벽 5시부터 수시로 운행한다. 하지만 전화(063-320-7113)문의를 통해 운행여부를 꼭 확인하자.
글·사진/임운석 여행작가
임운석은 현재 캠핑카를 타고 ‘주5일 여행제’를 시행중인 여행작가다. 기업체 홍보팀에서 글과 사진을 시작했다. 아내에게 평생 여행만 하자고 약속한 뒤 15년 직장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방송, 월간지, 기업체 사외보 등에 여행칼럼과 여행지를 소개하고 있으며, (사)여행작가협회 여행작가,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는 <여행의 로망, 캠핑카스토리> <경춘선 사계절여행(공저)> 등이며 “빛과 바람 그리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www.bitbara.com)를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