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존재란 가까이 있고, 늘 있으면 그 소중함을 모른 채 지내기 일쑤다. 2013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 계획으로 가까이 있어 아름다움을 잊고 지낸 우리 국토의 소중함을 느낄 기회인 여행하기를 넣어 보는 건 어떨까? 유례없이 춥다는 올 겨울, 그럴수록 눈과 입이 즐거운 곳을 찾아 추위를 잊는 것이 겨울을 잘 보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일 것이다. 여기, 국내여행 마니아들이 혹한도 잊을 만큼 멋진 명소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해운대삼포길’은 부산의 대표적인 명소인 해운대와 송정을 잇는 바닷길이다. 부산의 해안을 이은 ‘갈맷길(239.8km)’의 일부 구간이기도 하다. 삼포는 해운대구에 있는 미포와 청사포와 구덕포를 이른다. 미포와 청사포 사이의 달맞이언덕에는 아름다운 해안 솔숲길인 ‘문텐로드’가 조성돼 있다. 해운대삼포길을 걷다보면 번화한 해운대 신도시와 미포, 청사포, 구덕포의 소박한 어촌 풍경을 두루 볼 수 있다.
빨강등대와 하얀등대가 마주 선 청사포의 풍경. |
동백섬을 지나 해운대 끄트머리 미포로 가는 길
해운대삼포길의 출발점은 해운대 남쪽 끝에 있는 동백섬. 동백섬 주차장에서 순환도로를 따라 누리마루APEC하우스로 향한다. 동백섬이란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순환도로 양옆으로 동백나무가 늘어서 있다. 엄동설한인 1월에도 애기동백이 검붉은 꽃망울을 터뜨렸다.
광안대교가 바라보이는 해안가에 누리마루APEC하우스가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은 2005년 11월에 열린 APEC 정상회담 회의장으로 사용되었다가 지금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관광명소가 되었다. APEC하우스 옆에 있는 동백섬등대 광장은 APEC하우스와 광안대교를 사진 한 장에 담을 수 있는 촬영 포인트이다.
동백섬등대에서 바라본 APEC하우스와 광안대교. |
동백섬은 신라말의 학자였던 최치원과 관련이 깊다. 최치원이 이곳에 들렀다가 경관에 감탄하여 지금의 등대 아래에 있는 석각에 자신의 호를 따서 ‘海雲臺’를 새긴 것으로 전해진다. 해운대란 명칭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황옥공주의 슬픈 전설을 품은 인어상. |
등대광장에서 동백공원으로 올라가면 최치원의 동상과 비문을 볼 수 있다. 호젓한 동백공원 산책로는 순환도로와 이어진다.
순환도로에서 바닷가로 내려가 출렁다리를 건너 동백섬 옆구리를 타고 걷는다. 갯바위에 황옥공주의 슬픈 전설을 품은 인어상이 세워져 있다.
황옥공주는 인어 나라의 공주로서 은혜왕에게 시집을 왔는데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황옥에 비치는 고향을 바라보며 향수병을 달랬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인어상을 지나면 곧 해운대해수욕장에 당도한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부산갈매기들이 모래밭에서 종종걸음 치며 먹이를 찾거나 사람들 머리위로 떼를 지어 날아다닌다. 갈매기가 사람들을 피해 달아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갈매기떼를 피하는, 우스꽝스러운 광경도 목격된다.
추운 겨울에도 해운대를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이 많다. 해운대의 인기를 실감한다. 해변에 식당과 커피숍이 즐비하다. 따뜻한 커피 한잔을 들고 갈매기를 벗 삼아 바닷가를 걷다보면 어느덧 해운대해수욕장의 끄트머리인 미포에 이른다.
번화한 신도시, 해운대의 풍경. |
달빛 쐬며 명상하기 좋은 길, 문텐로드
미포는 달맞이언덕 아래에 있는 작은 포구이다. 달맞이언덕은 소를 닮아서 와우산(臥牛山)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미포가 소의 맨 아랫부분에 해당한다고 하여 꼬리 ‘미(尾)’를 써서 미포라 부른다고 한다.
미포는 번성한 해운대해수욕장과 붙어 있지만 분위기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 소박한 느낌이 드는 포구로서 대흥행한 영화 <해운대>의 촬영장소이기도 하다. 유람선 선착장에선 동백섬과 광안대교, 오륙도를 해상관광을 할 수 있는 유람선이 약 한 시간 간격으로 오간다.
동해남부선 열차가 지나가고 있는 미포건널목. |
바다를 등지고 오르막길을 오르면 동해남부선 기찻길이 나온다. 아날로그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기차건널목이다. 건널목을 건너려는 순간 ‘땡땡땡’ 기차가 들어오는 것을 알리는 경고음이 울린다. 곧 부전역에서 출발한 무궁화호 열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길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지나간다.
미포를 지나 달맞이언덕에 오르자 반달모양의 해운대 백사장과 동백섬, 광안대교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곳이 문텐로드의 출발점이다. 문텐로드는 달맞이언덕 아래에 있는 해안 솔숲길을 따라 송정쪽으로 가다가 다시 달맞이언덕 정상에 있는 해월정으로 올라오는 약 2.2km의 산책로이다.
문텐(moontan)은 사전에는 없는 말로서 선텐(suntan)에 대칭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문텐로드를 의역하면 달빛을 쐬며 걷는 길이란 의미쯤 되겠다. 문텐로드에는 수 십 년 된 소나무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다. 오른쪽으로는 바다가 보인다. 은은한 솔향이 감도는 흙길이 잔잔한 율동을 하듯 오르내린다. 노약자가 걷기에도 좋은 길이다.
문텐로드의 울창한 솔숲산책로. |
곳곳에 문텐로드에 얽힌 전설과 생태에 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문텐로드에 정월 대보름날, 달맞이언덕에 올라 소원을 빌면 애틋한 사랑이 이뤄진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낮에 걸어도 좋지만 연인사이라면 보름달빛을 받으며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조명시설이 잘 돼 있으니 걱정은 붙들어 매시라.
길의 특색을 살려 구간마다 달빛꽃잠길, 달빛가온길, 달빛바투길, 달빛함께길 등 한글이름을 붙여 놓았다. 산책로 중간에는 광활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바다전망대와 체육공원을 조성하여 잠시 쉬어갈 수 있게 배려했다.
달빛바투길을 지나면 어울마당을 지나 해월정으로 가는 길과 청사포와 구덕포(송정)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해월정으로 가는 길은 문텐로드이고, 송정으로 가는 길은 삼포길이다. 체력에 맞게 길을 선택하면 된다.
기차소리 들으며 청사포와 구덕포로 가는 길
해월정과 청사포로 갈라지는 지점에서 청사포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곧 숲길이 끝나고 어촌마을인 청사포에 당도한다. 청사포의 명물인 빨강등대와 하얀등대가 ( )모양으로 길게 뻗은 방파제 끝에 나란히 마주서 있다. 두 등대와 푸른 바다가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광을 그려낸다. 포구에는 횟집이 즐비한데 특히 조개구이와 붕장어구이가 유명하다.
바다와 인접한 동해남부선 철길. |
삼포길 일부 구간에서는 바닷가 갯바위 옆으로 동해남부선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1918년에 운행을 시작한 동해남부선 기차는 부산과 포항을 연결하는 해안철도이다. 현재 부산진구와 경북 포항 사이를 잇는 복선전철화 사업이 진행 중이어서 머지않아 사라질 예정이다.
바다와 철길이 인접해 있는 우일-해운대-송정구간은 해안절경이 뛰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얼마 뒤엔 이 구간을 통과하는 열차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해산물을 채취하고 있는 구덕포 주민들. |
청사포에서 구덕포로 넘어가는 해안길은 정비가 덜 된 듯하다. 기찻길 바로 옆을 지나거나 갯바위를 타넘어야 하는 구간도 있다. 구덕포에 이르면 주민들이 바닷가에서 성게나 따개비를 채취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구덕포 표지석앞에서 바라보이는 해변이 송정해수욕장이다. 되돌아갈 때는 송정역에서 동해남부선기차를 타고 바다를 감상하며 해운대까지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여행정보
○해운대삼포길 트레킹 코스: 동백섬 주차장-누리마루APEC하우스-최치원동상-인어상-해운대해수욕장-미포-문텐로드-청사포-구덕포-송정해수욕장(약 3시간 소요)
○APEC하우스 관람시간: 09:00~18:00 051-744-3140
○미포유람선 운행정보: 해운대-오륙도 왕복(약 50분소요) 하절기: 09:00~일몰전까지/동절기: 10:00~일몰전까지/ 약 1시간 간격 출항 051-742-2525
○문텐로드 조명 켜지는 시간: 일몰~23:00, 00:05~일출까지. 문의: 달맞이길 관광안내소 051-749-5710
○맛집: 해운대는 돼지국밥, 미포는 복국과 활어회가 인기 메뉴이고, 달맞이언덕에는 양식, 한식, 분식 등 다양한 식당들이 즐비하다. 청사포는 조개구이와 붕장어구이, 송정은 짚불곰장어가 유명하다.
글·사진/김혜영 여행작가
(사)한국여행작가협회 정회원. 기업체 사외보에 여행칼럼을 기고하며, 라디오와 TV를 통해 여행지를 소개하고 있다. 저서로 <5천만이 검색한 대한민국 제철여행지>가 있고, 4권의 공저가 있다. 3년 연속 파워블로그인 토토로의 여행공작소(http://blog.naver.com/babtol2000)를 운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