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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단풍능선 르포 | 거제 남북종단]

문성식 2013. 11. 29. 13:07
[명단풍능선 르포 | 거제 남북종단] 가을빛과 저녁 노을빛에 물든 남해 명산을 잇다
망산~가라산~노자산~선자산~계룡산 50km 대종주

경남 거제도는 어딜 가나 아름답다. 포물선을 그리며 부드럽게 휜 포구, 그 앞에 펼쳐진 넓고 푸른 바다, 그 남해 바다 위에 꿈 실은 고래처럼 둥둥 떠 있는 수많은 섬들…. 이러한 파라다이스 같은 풍광은 같은 높이에서는 제 맛을 느낄 수 없으리라.


▲ 산과 바다와 섬의 매혹적인 풍광이 샘났는지 하늘은 덧칠하려는 듯 내려앉고 있다. 취재팀이 망산을 지나 소사나무 울창한 바위능선을 따라 내봉산으로 향하고 있다.

거제의 산들은 바다에서 보면 뭍의 산봉과 다름없이 불뚝 솟구친 산봉이요 뚝 떨어진 산릉이지만 올라보면 다르다. 놀라울 만큼 울창한 숲이 산을 덮고 있고, 부드러우면서도 기운찬 산릉이 이어진다. 산릉은 그냥 뻗지 않는다. 곳곳에 불쑥불쑥 솟구치거나 간간이 기암을 얹고 있어 또한 변화롭고 기운차다. 그 산봉과 기암이 멋진 조망대인 것이다.


이러한 거제의 산봉은 한려해상의 풍광을 맘껏 조망할 기회를 준다. 어떤 산봉은 영혼을 빨아들일 듯 맑고 푸른빛을 띤 바다가 발아래 펼쳐지는가 하면, 어떤 산허리는 부드러운 해안선이 눈에 들어와 마음 편케 하고, 또 어떤 산꼭대기는 고래 등처럼 떠오른 많은 섬들로 가득 찬 다도해가 펼쳐지면서 그림 속에 들어앉아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거제는 산과 바다, 그리고 섬들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곳이다.


▲ 1 망산은 조망뿐만 아니라 숲이 좋은 산이다. 소사나무와 참나무가 숲을 이룬 호젓한 능선 길. 2 북릉 상의 바위지대에서 바라본 망산 정상 일원.

거제 남북종단은 이렇듯 아름답고 기운차고 변화무쌍한 거제의 명산 명봉 다섯 봉우리를 잇는 산행이다. 남으로 망산(望山·397m)에서 시작해 북으로 거제 최고봉인 가라산(加羅山·585m)을 거쳐 노자산(老子山·565m)으로 이어진 뒤, 해발 30m 높이의 동부저수지로 뚝 떨어졌다가 다시 북으로 선자산(扇子山·507m)을 거쳐 계룡산(鷄龍山·566m)에 올라선다. 이 산줄기는 산행의 즐거움과 조망의 멋스러움도 느끼게 하지만 여기에 내륙의 대간이나 정맥을 걷는 듯한 장쾌함도 느끼게 한다.


바다 쪽은 철옹성 같은 산세, 뭍 쪽은 아늑한 분지
“거제도는 한반도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이에요. 산도 많아요. 그중 10대 명산으로 꼽히는 산 4개가 남북종단 코스에 속해 있어요.”


▲ 3 망산 정상. 한려해상의 아름다운 풍광뿐만 아니라 거제 내륙의 산봉도 잘 보이는 곳이다.

약 15년 전 거제 남북종단 코스를 개척한 진선석(거제산악회 고문)씨의 자랑이 아니더라도 남북종단에 속한 산봉은 좋은 산들이다. 숲의 맑은 기운은 몸에 새로운 정기를 심어주고, 하늘의 밝은 빛은 마음을 환하게 해주었다.


명사해수욕장에서 능선을 올라붙을 때에는 숲만 울창하려니 했다. 하지만 한발 한발 올라서면서 망산은 변화무쌍한 산세와 일망무제의 조망으로 가슴 벅차게 했다. 능선길을 20분쯤 오르자 숲이 벗겨지고 망대가 나타나더니 오늘 주파해야 할 가라산~노자산 산줄기가 눈에 들어오고, 대포에서 금포와 명사를 거쳐 저구 포구로 이어지는 해안선이 아름답게 바라보인다. 날이 너무도 맑았다. 먼 바다의 섬도 손을 뻗으면 잡힐 듯 가깝게 다가왔다.


▲ 4 망산과 내봉산 사이의 소나무쉼터.

“이순신 장군이 여기서 작전 명령을 내렸을 것 같은데. 저게 한산도잖아. 그런데 오늘 저 노자산까지 가야 한단 말이야? 끔찍하다 끔찍해-.” 


“봄철 진달래꽃이 피면 소나무와 어우러져 정말 멋있다”는 진선석씨 말에 감탄스런 표정을 짓던 황원선씨는“내년 봄 꼭 다시 와야겠다”고 맞장구를 치더니 오늘 노자산까지 가야 한다는 말에 표정이 어두워진다.


두 번째 조망대를 지나자 바위 구간이 나온다. 진선석씨는 스릴 넘치는 바윗길이었으나 간간이 실족사고가 일어나자 데크를 설치하게 되었다고 알려준다. 바윗길을 지나고 소사나무숲을 벗어나자 말 그대로 망대나 다름없는 망산 정상이다. 쌍봉을 이룬 정상부 북봉이 더 높아 보이지만 북봉에는 산불감시초소가 터줏대감인 양 자리를 지키고 있고 남봉에 정상 표석이 서 있다.


“고려나 조선 때에는 왜구들의 배를 감시하던 곳이었는데, 광복 이후에는 물고기떼를 살피기 위해 주민들이 올라왔던 곳이래요. 바닷물이 워낙 맑아 여기서도 숭어 떼가 움직이는 게 잘 보인답니다.”


남쪽 발아래 ‘무지개마을’ 홍포(虹浦) 해안은 정말 맑았다. 379m 높이의 망산 정상에서도 바닥이 보일 정도다. 그 맑은 바다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많이 떠올라 있었다. 섬은 바다에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는 듯하다. 어떤 섬은 작은 꿈을 싣고 먼 바다로 향하는 새끼 고래요 또 어떤 섬은 희망 실은 엄마 고래였다.


홍포 갈림목(홍포 0.6km, 명사 1.9km, 저구삼거리 3.9km)을 지나자 망산은 묘한 산세를 보여준다. 바다 쪽으로는 철옹성처럼 벌떡 솟구쳐 있고, 반대쪽으로는 산줄기가 원형을 이루며 아늑한 분지를 조성해 놓았다. 이어 내봉산(315m)에 다가서는 사이 대포 앞바다의 장사도(長蛇島)는 모습을 감추고 대신 옛날 왜적의 침입을 알리는 봉수대가 서 있던 천장산(279.5m)이 보이고 그 좌측 뒤편으로 해금강 해안단애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런 풍광을 좇아온 것인지 북에서 불어대던 바람은 한풀 꺾이고 대신 동풍이 불어댄다.


내봉산 산정에서 조망을 즐기다가 여차 갈림목(여차 0.5km, 저구삼거리 2.2km)으로 내려서는 사이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다. 계절은 이미 늦가을로 접어드는 분위기다. 오르내리막을 반복하면서 산길은 한층 넓어지고 부드러워진다. 길바닥에 노란색 낙엽이 두터이 깔려 오색 융단을 밟는 기분이고 그러다 오르막에 접어들자 소나무 갈비 푹신한 산길이 대신한다.


각지미 바위지대에 닿자 다대포가 그림처럼 나타난다. 진선석씨는 날씨가 맑을 때에는 대마도까지도 바라보이는 조망대라 일러준다.


“오전 내내 걸었는데 이제 망산 하나 넘었단 말이야! 아무래도 안 되겠지? 다대포구에 가서 회나 한 접시 하지?”


오전 7시40분 명사해수욕장을 출발해 2시간 반이면 끝내리라 예상했던 망산~내봉산 종주산행이 4시간 가까이 걸리는 바람에 도로가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저구삼거리 작은다대재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20분. 평소 같으면 이미 하루 산행을 마친 셈인데 거제 최고봉 가라산을 오르고 또 노자산까지 가야 한다는 게 너무도 아득하다 싶었는지 배병달씨는 다대포 생선회로 일행을 유혹한다. 그러자 황원선씨는 길가 옹벽에 붙어 있는 ‘족발 배달’ 안내판을 가리키며 “족발에 소주 한 잔이 더 낫지 않겠느냐”고 부추긴다.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기 전에 ‘Go!’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