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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교계곡길 - 너무나 한가해서 행복한

문성식 2012. 8. 13. 14:58

“옛날에는 둔전계곡에서도 설악산을 많이 올라갔어요. 지금은 사람 발걸음이 끊어지다시피 했지만요. 하지만 사람 없는 계곡이 한적하고 좋을 때도 있어요.” 석교계곡에서 둔전계곡까지 걸어갔다올 계획이라는 말에 택시 기사님은 옛날이야기로 대답해주셨다. 우리를 내려주고 돌아 나가시면서 기사님은 좋은 여행하시라는 말을 남긴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푸근해진다.

 

 

마을 유원지를 닮은 석교계곡 

 

석교계곡에서 간곡계곡을 거쳐 둔전계곡(둔전저수지 아래)까지 편도 3.2km를 왕복으로 걷는 이번 걷기여행 코스는 계곡의 아름다움과 함께 옛 시골마을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는 길이다. 걷기여행의 출발지점인 석교계곡은 계곡의 하류에 해당되는데 마을에서 물길을 정비해서 물놀이하기에 좋게 만들었다. 석교교 아래부터 위까지 돌을 정리해서 깔끔하게 만들었다. 물은 어른 무릎 정도 깊이부터 배꼽 정도까지 차는 곳도 있다. 주변에 식당과 가게 등도 있어 작은 유원지 분위기다.

 

석교리에서 간곡리로 가는 길. 설악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물가 나무그늘에 앉아 호젓한 시골 냇가 풍경을 즐겨도 되고 주변에 있는 ‘인천 메밀국수집’ 또는 ‘영광정 메밀국수집’에서 메밀국수도 맛 볼 수 있다. 걷기여행의 사실상 출발지점은 ‘영광정 메밀국수집’ 앞이다. 석교계곡 석교교 부근에서 ‘영광정 메밀국수집’으로 나온다. 길은 삼거리로 갈라지는데 계곡물을 따라 나란히 걷는 좁은 길을 따라 간곡리, 둔전리 방향으로 걷는다. 계곡과 약간 떨어져 걷는 길이지만 주변에 논이 있는 풍경이 넉넉하고 풍요로운 마음을 들게 한다.

 

간곡계곡, 숲은 깊어지고

 

길을 걷다 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 내리막길을 선택해서 걷는다. 조금만 내려가면 다리 하나가 나온다. 간곡교다. 그 주변 마을이 간곡리이고 간곡계곡이다. 꾸미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이 시작된다. 물길 옆으로 숲이 우거졌다. 깊고 푸른 숲은 물빛마저 푸르게 물들인 것 같다. 물도 푸르고 숲도 푸른 길, 그 길에 오래된 시골 마을 풍경이 남아 있다.

 

다리를 건너 조금 가다 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 길을 선택해서 걷는다. 길에서 계곡이 멀어지기도 하지만 이내 다시 여행자의 눈길에 푸른 숲과 계곡이 나타난다. 바위 절벽 위로 숲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 아래 푸른 물빛이 발길을 유혹하고 콸콸 거리며 흐르는 물소리만으로도 속이 시원하다. 소리로 듣고 소리로 보는 계곡길이다. 경치 좋은 곳은 사람이 다니는 길과 멀어져 멀리서만 바라봐야 했다. 계곡으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을 만나면 어김없이 그 길로 접어들어 물에 발을 담그고 얼굴을 씻고 한 숨 돌리며 쉬었다 간다. 숲이 깊어 물은 맑고 그 안에 앉은 여행자라면 누구라도 한가해서 행복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처럼

 

시간은 오후의 햇살처럼 느리게 흘렀다. 게으른 걸음으로 걷는 길, 대중없는 여행길에 시골풍경이 하나둘 씩 눈에 들어온다. 길가 옥수수밭은 옛 마을 그대로였다. 담 없는 집 헛간 벽 아래 ‘골드스타’ 마크가 박혀 있는 텔레비전이 놓여 있다. 슬레이트 지붕 처마 아래는 겨우내 땔 장작이 쌓여 있다. 부서진 문틀 그대로 내버려둔 마당 앞에는 햇볕에 반짝이는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흙먼지 쌓인 길가 텃밭의 고춧잎이 간혹 불어가는 바람에 흔들린다.

 

이제 길은 둔전리로 이어진다. 고압선 송전탑이 어울리지 않게 서 있는 길을 지나다 보니 길 오른쪽에 ‘진전사지삼층석탑’이 보인다. 진전사는 원래 자리에서 더 올라간 곳에 새로 지었으며 옛날 절터만 남아 있었다. 몇 년 전 발굴작업을 하면서 진전사의 규모가 어느 정도 드러났다는데 마을 사람 말로는 엄청나게 넓었다고 한다.

 

둔전계곡. 어떤 곳은 어른 키 두 배도 넘는 깊은 곳도 있다.

 

옛 절터를 말해주는 진전사지삼층석탑(국보 제122호) 앞에 섰다. 석탑의 유래와 규모 양식 등을 알리는 안내판을 읽는데 낯익은 이름이 나온다. 역사책에서 들었던 보조국사 지눌도 진전사에서 머물며 도를 얻었고,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스님 또한 이곳에서 머리를 깎고 도를 얻어 대각이 됐다는 설명이다. 지금도 길만 나 있을 뿐 사람의 발걸음이 뜸한 이곳인데 그 옛날이라면 첩첩산중 기암괴석의 계곡 위 땅이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그 유명한 스님들이 정진수행을 했다는 생각만으로도 발걸음이 긴장된다.

 

귓가를 울리는 계곡의 폭포소리 물소리,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바위 웅덩이의 푸르름, 가슴을 뚫는 숲의 청정한 공기, 계곡 숲 위를 덮은 휘발성 파란 하늘. 나는 오래된 계곡 거대한 바위 위에 서서 처음처럼 신선한 자연이 열리는 것을 오감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의 길에 내 발길을 포개본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걸었던 계곡길에서 나는 무엇이었을까!

 

그날 밤 나는 모닥불을 피우고 폭죽을 터뜨리며 노는 아이들 사이에 앉았다. 깔깔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계곡 어둠 속으로 퍼진다.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춤추는 불꽃을 응시하고 있었다. 서서히 아이들 목소리가 멀게 느껴지면서 ‘웅웅’ 거리며 아득해지는 순간 나는 한계령에서 보았던 불꽃으로 타오르는 바위능선을 보았다.
아! 가을인가. 

 

가는 길
*자가용
영동고속도로 - 동해고속도로 - 현남IC 또는 하조대IC - 7번국도 - 낙산해수욕장 - 설악해수욕장 - 강현면사무소 앞 삼거리(옛날 속초공항 입구)에서 좌회전 - 석교리 - 석교교(석교계곡)
*대중교통
서울강남고속버스터미널이나 동서울터미널에서 양양 가는 버스 이용. 석교계곡까지 가는 버스가 드물다. 양양 읍내에서 택시 이용(양양 읍내에서 약 13km 안팎 떨어져 있음)

 

  

숙박
둔전리 계곡(저수지 아래) : 011-361-5260(이용 가능 전화 문의 필수)
간곡리 계곡 계곡펜션 : 033-672-6880.(한시적 운영. 이용 전 운영 여부 전화 확인 필수)
낙산사, 낙산해수욕장 주변 민박 및 모텔 등 많음.

  

먹을거리
꾹저구탕
꾹저구라는 물고기를 푹 고아 살을 으깬 다음 집에서 담근 3년 묵은 고추장을 풀어 요리한다. 수제비와 팽이버섯 깻잎 대파 등을 넣고 끓인다. 휴대용가스렌지 위에 가마솥을 올리고 조금 더 끓여가며 먹는다. 이때 손님의 기호에 따라 마늘 으깬 것과 고추 다진 것을 넣어 먹는다. 산초가루와 후추가루도 준비돼 있다. 양양에서 7번 국도 타고 강릉방향으로 가다가 주문진 지나 연곡리 소금강 쪽으로 우회전하는 6번 도로를 이용. 우회전해서 조금 가다가 길 오른쪽을 보면 ‘연곡꾹저구탕’이라는 커다란 간판이 보인다.

  

주변 여행지

낙산사
671년 의상대사가 낙산사를 세울 때 기도를 올렸던 곳에 세워진 정자, 의상대를 비롯해 바닷가 기암절벽 위에 세원진 암자, 홍련암. 원통보전, 해수관음상 등으로 유명한 낙산사는 꼭 들려볼만 하다.  

 


여행하기 좋은 시기 : 계곡 물놀이하기 좋은 여름. 벼 익는 가을

주소 :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석교리 (지도보기)

경로 : 네이버 테마지도 보기
총 소요시간 : 2시간

총거리 : 6.4km(왕복)

준비물 : 편안한 운동화. 물 한 병. 햇볕 가릴 모자.

 

3.2km의 물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세 개의 시골마을길을 걷는다. 계곡 바로 옆길을 걷기도 하고 계곡을 멀리서 바라보고 걷는 코스도 있다. 숲이 우거지고 바위가 많은 계곡이라서 곳곳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만난다. 

 

그런 경치와 함께 옛 시골마을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어 푸근한 마음을 들게 한다. 경치 좋은 곳에는 펜션이나 민박 등이 있다. 여름에는 물놀이, 선선한 바람 부는 계절에는 계곡미 감상과 함께 몸과 마음을 편하게 쉴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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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장태동
여행기자를 거쳐 2003년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살고 있다. 전국을 걸어 다니며 글 쓰고 사진 찍는다. [서울문학기행], [아름다운 자연과 다양한 문화가 살아 있는 서울·경기], [맛 골목 기행], [서울 사람들], [대한민국 산책길] 등의 책을 썼다. 이름 없는 들길에서 한 번쯤 만났을 것 같은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