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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직소폭포 - 창끝 같은 폭포 물살

문성식 2012. 8. 13. 14:12

직소폭포의 존재를 안 것은 햇수로 이십 년을 헤아린다. 하지만 지금껏 그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폭포가 그렇듯이 수량 탓이다. 비가 오지 않으면 폭포가 금방 말라버린다. 그 폭포를 보며 호방한 기운을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직소폭포가 그랬다. 갈 때마다 물줄기는 말라 있었다. 원암마을에서 재백이제를 넘어 적지 않게 다리품을 팔았는데, 쫄쫄 흘러내리는 물살을 보고나면 맥이 탁 풀린다. 다리의 힘이 쭉 빠진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대로 별렀다. 아침까지 비가 내린 날 오후에 행장을 꾸려 나섰다.

 

 

매창과 유희경, 그리고 직소폭포

 

 

빗줄기가 흩뿌린 뒤라 습한 기운이 묻어난다. 내변산탐방지원센터에서 직소폭포를 향해 걷는다. 널따란 숲길이 이어진다. 숲에 막혀 굽이지는 길 저 너머에서 누군가 있을 것만 같다. 누굴까. 대충 알 것도 같다. 매창 이계생(1573~1609)과 촌은 유희경(1545~1636)이다. 직소폭포와 함께 ‘부안삼절(扶安三絶)’로 불리는 두 사람. 매창은 시 잘 짓고, 거문고 잘 타던 기생, 촌은도 시라면 뒤지지 않는 대쪽 같은 선비다. 첫 눈에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은 깊은 사랑에 빠진다. 조선 중기의 일이다.

 

변산에서 흠뻑 사랑에 취했던 두 사람에게는 이별이 기다리고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것도 그 무렵이다. 촌은은 나라의 부름을 받고 한양으로 돌아간다. 기다림의 시간은 길다. 그 세월을 견디며 매창이 촌은에 대한 사무치는 사모의 정으로 지은 시구가 절창이다. 고등학교 시절, 매창의 시를 보며 한동안 그녀에 대한 연정을 품기도 했다. 내가 촌은이 되어 매창과 변산을 거닐며 사랑을 나누는 착각을 하곤 했다. 여기 매창이 돌아오지 않는 촌은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 전문을 옮긴다.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하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직소폭포에서 재백이재로 향해 가는 계곡은 온순하다. 시골 개울처럼 부드럽고 잔잔하게 흘러간다.
비에 젖어 옅은 물안개까지 피어나 은밀한 매력을 발산한다.

 

푸른 숲을 찢으며 쏟아지는 직소폭포의 시원한 물보라

 

실상사를 지나서도 길은 여전히 부드럽다. 첫 번째 다리를 건넌다. 이 다리 주변이 봉래구곡이다. 변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직소폭포에서 한번 춤을 춘 뒤 분옥담과 선녀탕, 봉래구곡을 거쳐 간다. 그러나 선녀탕 아래 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수량이 많이 줄었다. 아홉 구비를 이루며 흘러가는 계곡의 풍미는 빛이 많이 바랬다. 봉래구곡에서 조금 더 가면 자연보호헌장탑 삼거리다. 탐방안내소에서 1.3km 거리. 이곳에서 길이 나뉜다. 계곡을 따라 곧장 가면 직소폭포로 이어지고,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낙조대를 거쳐 월명암으로 간다.


자연보호헌장탑을 지나면서 제법 숲길다워진다. 간간이 작은 오르막도 나온다. 길의 폭도 혼자 걷기 적당하게 좁아졌다. 비가 내린 터라 숲은 한층 싱그럽다. 갈림길에서 200m쯤 가면 저수지다, 길은 저수지 오른쪽으로 감싸고 이어진다. 변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일단 이곳에 모였다가 부안호로 흘러들어간다. 고작해야 500m를 아우르는 산들이지만 몽긋몽긋 솟은 봉우리가 물에 비친 모습이 아름답다. 가파른 바위벼랑에는 샛노란 원추리가 만발해 여름의 정취를 말해준다. 저수지 곁으로 조성된 데크를 따라가 작은 고개를 넘으면 시원한 물소리가 들린다. 직소폭포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아직 아니다. 여기는 분옥담과 선녀탕이다. 바위를 에돌아가며 작은 폭포가 걸려 있다. 땀을 씻고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그러나 마음이 급하다. 직소폭포를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선녀탕에서 다시 야트막한 고개를 오르면 데크가 놓인 전망대가 마중을 나온다. 그 데크 위에 서면 웃자란 소나무 너머로 직소폭포가  풍경화처럼 걸려 있다. 흰 명주천이 숲의 바다에 사뿐히 날아가 떨어지는 것처럼 우아한 자태다. 데크는 분옥담 전망대까지 이어졌다. 데크는 전망대 구실만 할 뿐, 직소폭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직소폭포로 내려가는 길은 직소폭포 전망대에서 50m쯤 더 가야 있다.

 

물안개 자욱한 신비의 계곡은 재백이재로 이어지고

 

직소폭포를 바라보며 땀을 씻는다. 역시, 비 온 뒤라 물보라가 거세다. 속이 다 후련하다. 이 모습을 보려고 그렇게 별렀던 것이다. 어쩌면 매창과 촌은도 저 빼어난 폭포를 보며 사랑을 속삭였을 것이다. 직소폭포는 재백이재로 가면서 다시 한 번 사자후를 토한다. 바위벼랑에 설치한 난간을 잡고 가다보면 수직으로 낙하하는 직소폭포가 내려다보인다. 창끝 같은 물줄기가 푸른 숲을 찌른다.

 

매창 이계생, 촌은 유희경과 함께 부안삼절로 불리는 직소폭포의 단아한 자태.
푸른 숲을 진동하며 떨어지는 폭포물살이 장관이다.

  

직소폭포를 지나면 계곡은 편안해진다. 언제 폭포나 분옥담 같은 협곡이 있었나 싶다. 버드나무 웃자란 동네의 개울처럼 유순한 계곡이 펼쳐진다. 비가 온 탓이라 등산로 곁으로도 계곡물이 시원하게 흘러간다. 숲이 워낙 깊은 터라 자욱한 물안개도 피어난다. 물에 젖은 소나무 껍질은 더욱 검고, 숲 그늘에 드리운 나뭇잎은 더 푸르다. 이런 모습은 이전에 내변산을 찾았을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비 온 뒤에만 허락하는 내변산의 은밀한 매력이랄까. 직소폭포만 생각하다가 뜻하지 않은 횡재를 했다는 마음이 들 정도다.

 

직소폭포에서 1.5km 가면 재백이재에 선다. 오르막도 느끼지 않고 고갯마루에 선 것이다. 내변산 탐방안내소의 시작점은 해발 60m. 재백이재는 160m. 고작 100m를 오르내린 게 전부다. 재백이재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은 관음봉을 거쳐 내소사로 간다. 오른쪽은 능선을 따라 원암마을로 내려간다.

 

재백이재에서 원암마을까지는 1.2km. 곧게 뻗은 법 없이 뒤틀리며 자란 솔숲 사이로 길이 이어진다. 재백이재가 워낙 낮은 탓에 내리막길도 급한 법이 없다. 산길이 그냥 끝나면 서운할 것 같은 이들을 위해 변산이 마련한 에필로그 정도로 여기면 된다. 다만, 시원한 맥주 한 잔 생각이 간절할 뿐이다.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한다. 부안IC로 나온 뒤 변산읍과 새만금방조제 방면으로 가는 30번 국도를 따른다. 봉황교차로에서 23번 국도~상서 사거리~736번 지방도~도화 사거리를 거쳐 가면 내변산탐방지원센터 입구다. 서울서 3시간 30분 소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직소폭포에서 재백이재를 넘어 내소사까지 가는 즐거움이 있다.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부안읍까지는 50분 간격으로 고속버스가 운행된다. 부안읍~내변산탐방안내센터, 내소사~부안행 버스가 수시로 운행된다.  

 

숙박
내변산 입구에 민박집이 여럿 있다. 모항과 궁항, 격포에도 펜션이 많다. 격포에는 최근 대명리조트(www.daemyungresort.com)가 개장했다. 지중해풍의 건물로 지어진 이 리조트에는 파도풀을 비롯한 다양한 물놀이 시설이 있는 워터파크도 있다. 채석강과 이웃해 있다.

 


여행하기 좋은 시기 : 여름~가을 

주소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산 95-10 (지도보기

경로 : 네이버 테마지도 보기
총 소요시간 : 2시간30분

문의 : 변산반도국립공원 내변산탐방안내센터(063-584-7807)

 

오르막과 내리막이 거의 없어 초보자도 쉽게 갈 수 있다. 다만, 비 온 뒤 2~3일 이내에 찾아야 제대로 된 직소폭포를 볼 수 있다. 비가 내릴 때나 비 온 뒤에는 바위가 미끄러워 조심한다. 물 한 통은 가져가야 목마름을 달랠 수 있다. 대중교통은 재맥이재를 넘어가고, 자가운전은 출발지로 돌아온다.   

 

글∙사진 김산환
여행과 캠핑의 달인으로 통한다. 잡지사와 신문사에서 17년간 여행레저 전문기자로 근무하면서 ‘잘 노는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해왔다. 최근에는 도서출판 ‘꿈의 지도’를 설립, 여행과 캠핑을 테마로 한 여행서를 펴내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캠핑폐인], [캠핑여행의 첫걸음 Canadian Rocky], [오토캠핑 바이블], [걷는 것이 쉬는 것이다], [라틴홀릭], [나는 알래스카를 여행한다], [2박3일 주말이 즐겁다], [배낭 하나에 담아온 여행], [낯선 세상 속으로 행복한 여행 떠나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