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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동천과 청계동천 - 자연과 역사의 길

문성식 2012. 8. 13. 13:55

‘동천洞天’이란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으로 해석할 수 있다. 조선시대 한양에 유명한 ‘동천’이 두 곳 있었으니, 하나는 북악산 자락의 백사실계곡이 있는 ‘백석동천’이고, 다른 하나는 인왕산 자락 청계계곡이 있는 ‘청계동천’이다.

 

 

 

백사 이항복의 별장 터로 알려진 백사실계곡

 

 

백사실계곡으로 가는 길은 세월을 거슬러 오르는 시간여행 길이다. 도심에서 버스를 타고 세검정 전에 있는 ‘하림각’ 정류장에 내려 세검정 삼거리 쪽으로 걷는다. 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면 정자 하나가 보인다. 세검정이다. 그 아래로 냇물이 흐르는데 물이 맑다. 다리를 건너기 바로 전 오른쪽 길로 접어든다. 크고 작은 바위와 돌 사이로 ‘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풀들이 자라난 풍경만 보면 이곳은 서울이 아닌 한적한 시골마을 냇가다. 그 옆에 어깨를 맞댄 지붕 낮은 집은 각진 도심의 건축물에서 절대로 느낄 수 없는 푸근하고 수수한 정서를 머금고 있다. 그 또한 자연에 어우러진 옛 시골집을 생각나게 한다.

 

서울에서 이런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자하슈퍼를 지나 조금 더 가면 길 오른쪽 골목 입구에 ‘불암’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 ‘부처바위’ 쯤으로 여기며 바위를 지나 골목으로 올라가는데 집채보다 큰 바위 위로 졸졸 물이 흐른다. 더 오래 전 과거 산동네 골목의 느낌이다. 어느 집 바깥벽에 ‘백사실 가는 길’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누군가의 배려가 오래된 골목을 따듯하게 만든다. 친절한 안내를 따라 계단을 올라 걷는다. 골목을 벗어나면서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당황했다. 커다란 바위 위로 물이 미끄러지듯 흐르고 그 위에는 작은 폭포가 있다. 폭포 뒤로는 ‘현통사’라는 작은 절이 있다. 자동차 굉음으로 가득 찬 도로에서 벗어나 20분도 채 걷지 않았는데 시골 한적한 산속에나 있을 것 같은 풍경이 나타난 것이다.

 

녹색 숲 아래 흙길을 걷는 기분이 좋다. 호젓하게 산책하듯 걸을 수 있어 더 좋다.

 

절 옆 바위계곡을 건너 숲길로 들어간다. 하늘을 가린 푸른 숲 속으로 이어지는 흙길은 여행자의 발길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다. 오솔길 옆으로 졸졸 거리며 물이 흐른다. 백사실계곡이다. 계곡이 있는 숲길을 걸어 도착한 곳은 조선시대 사람 백사 이항복의 별장 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인공적으로 꾸며 놓은 연못이 있고 그 옆으로 기둥을 받쳤을 것 같은 주춧돌이 땅에 박혀 있다. 주춧돌 사이를 가상의 선으로 이어보니 아담한 한옥 한 채가 그려진다. 이곳이 ‘백석동천’으로 불리는 곳인데 ‘백석’은 ‘백악’ 즉 ‘북악산’을 말한다. 그러니 ‘백석동천’은 ‘북악산에 있는 경치 좋은 곳’이 되겠다. 예로부터 이곳은 ‘백사실’로 불렸다. 산 아랫마을 사람들이 조선시대에 이곳에 거처했던 백사 이항복의 호를 따서 그런 이름을 붙였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안평대군의 별장 터와 빙허 현진건의 집터

 

 

비가 오지 않아 계곡물이 ‘졸졸’거리며 흐른다. 계곡 옆에 ‘이곳에 도롱뇽이 산다’는 내용의 팻말이 있다. 연못 주변 숲 그늘에 앉아 자연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연못을 지나 계곡 위로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물 옆 바위에 돗자리를 펴고 책을 읽는 젊은 연인들이 눈에 띈다. 아빠와 함께 온 아이들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고개를 숙여 무엇인가 바라보고 있다. 책에서 본 생명체를 이 계곡에서 직접 본 모양이다. 한 아이 손에 작은 채집망이 들려있다. 머리를 맞대고 눈길을 떼지 못하며 사뭇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에게 이 계곡은 살아 있는 학교다.

 

계곡 물은 발목까지밖에 차지 않지만 서울의 도심으로부터 가까운 곳에서 이런 자연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행운이다. 계곡이 끝나는 곳에서 흙길도 끝난다. 이어지는 시멘트길을 따라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자하문 쪽에서 올라오는 아스팔트길을 만난다. ‘산모퉁이 카페’를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가다보면 갑자기 눈앞에 북악산과 산에 세워진 서울성곽이 나타난다. 그 풍경 또한 이 길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풍경이다. 산모퉁이 카페에서 시원한 차 한 잔 하며 걸어온 길 이야기를 할까 했는데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아 앉을 자리가 없다. 여기서 드라마를 찍었다고 해서 더 유명해진 것 같다. 그렇게 길을 따라 걸어 내려오면 창의문이 나온다.

 

자하문이라고 더 널리 알려진 창의문은 서울성곽을 쌓을 때 세운 4대문과 4소문 중 서대문과 북대문 사이에 있는 북소문이었다. 원래 이름인 창의문보다 자하문이 더 유명한 것은 예로부터 사람들이 이곳 주변에 있던 계곡 이름을 따 ‘자하문’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자하문에서 부암동사무소 방향으로 걷는다. 부암동사무소를 왼쪽 옆에 끼고 돌아 골목길로 오른다. 이곳은 이제 인왕산 자락이다. 골목길로 올라가다 보면 ‘무계정사길’이라는 이정표가 보이는데 ‘무계정사1길 14-1’에 ‘무계정사 터’가 있다. ‘무계정사’란 조선시대 세종의 아들인 안평대군의 별장이었다. 1447년 봄 어느 날 안평대군은 꿈을 꾼다. 그는 꿈 속에서 무릉도원을 보았고, 꿈을 깨고 난 후에도 그 풍광이 선명하게 기억났다. 그는 당시 최고의 화가 안견에게 꿈을 그리게 했다. 그게 ‘몽유도원도’다.

 

공식 이름은 ‘창의문’이지만 ‘자하문’으로 더 잘 알려졌다.
서울성곽에는 4대문과 4소문이 있었는데 창의문은 서대문과 북대문 사이의 ‘북소문’이었다.

   

지난 일에 가정이 있을 수 없지만, 혹시라도 안평대군은 꿈속에서 본 그 풍경을 찾아 길을 나섰고 그 길에서 찾은 풍경이 현재 ‘무계정사 터’로 알려진 이곳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지금이야 주변이 모두 다 집으로 들어찼지만, 그 옛날에는 ‘인왕산 호랑이’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울창한 숲을 이루었고 그런 자연은 ‘청계동천’이라는 풍경을 만들고 있었으니, 안평대군이 이곳에서 무릉도원을 찾고 집을 짓고 지냈을 수도 있는 일 아닌가. 문이 닫혀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 안 바위에 ‘무계동’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그 글씨가 안평대군의 필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무계정사 바로 앞 빈 터는 [빈처] [운수 좋은 날] 등 소설을 쓴 일제강점기 때 소설가 빙허 현진건의 집이 있었던 곳이다. 현진건은 이곳에 살면서 닭을 키웠다. 문단의 친구들이 찾아오면 달걀이나 닭을 잡아 음식을 대접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보도각백불’ 앞에서 한양 천도를 기원한 태조 이성계

 

 

다시 돌아 나와 세검정 삼거리 방향으로 걷는다. 찻길 옆 인도를 걷는 길이지만 백사실계곡과 무계정사 터 등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길을 걸어온 터라 그렇게 팍팍하지는 않다. 세검정 삼거리 바로 전 길 왼쪽에 ‘석파랑’이라는 식당이 있는데 그 식당 마당 위 산 기슭에 흥선대원군의 별장 ‘석파정’의 사랑채가 남아 있다. 석파정은 다른 곳에 있는데 그 사랑채만 이곳에 옮겨 지은 것이다. 건물은 한 채이며 대원군이 사용한 큰 방과, 손님 접대공간인 작은 방, 난초를 그릴 때만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대청방 등으로 이루어졌다. 대원군이 이곳에 있을 때는 권력이 있었던 때였다. 대원군은 권력을 놓치고 현재 마포구 공덕동 일대 ‘아소정’이라는 별장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대원군 별장의 사랑채 구경을 마치고 다시 세검정 삼거리 앞에 선다. 거기서 도로를 건너 홍제천 물길을 따라 좌회전해서 걷는다. 홍지문을 지나서 더 걸으면 옥천암 보도각백불이 나온다. 옥천암의 보도각백불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지로 정할 때 기도를 올렸던 곳으로 알려졌다. 또 고종의 어머니이자 대원군의 부인이 아들 고종을 위해 이곳에서 기도를 올렸다고 하니 한 왕조의 처음과 끝을 살았던 왕실 사람들의 기원이 모인 곳이기도 하다. 약 5m 높이의 하얀 불상이 범상치 않다. 다시 홍제천 물길을 거슬러 홍지문을 지나 세검정을 향해 걷는다. 이번 걷기 여행의 마지막 길이다. 바위와 풀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이 정겹다. 그렇게 걸어 도착한 세검정. 정자 아래 물가로 내려가 바위에 앉는다.

 

조선 후기 사람 다산 정약용은 1791년 여름 어느 날 세검정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먹구름이 몰려들고 당장이라도 소나기가 한 줄금 내릴 기세였기 때문이었다. 소나기 내려 불어난 물이 바위 계곡을 뒤흔들며 흐르는 그 광경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약용은 친구들과 함께 세검정을 찾았고 소나기 내리는 계곡의 풍경을 보고야 말았다. 그날처럼 소나기는 내리지 않았지만 바위에 앉아 흐르는 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계곡의 풍경을 즐기며 친구들과 잔을 나누던 정약용을 생각하면서….    

 

가는 길
녹색 시내버스 0212, 1020, 1711, 7016, 7018, 7022 번을 타고 ‘하림각 정류장’에 내린다. 세검정 삼거리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다가 삼거리에서 우회전. 조금 가다보면 냇물이 나오고 다리를 건너면 세검정 정자다. 다리 건너기 바로 전 오른쪽 길을 따라가면 된다. 

 

주변 여행지
세검정 쪽에서 출발해서 백사실계곡길을 걷다보면 계곡이 끝나면서 시멘트 길이 나온다. 시멘트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거기서 좌회전 하면 북악스카이웨이로 가는 길이 나온다.(우회전 하면 이번 걷기 코스인 자하문 쪽으로 가는 길이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길 왼쪽에 북악산 산책로 입구가 나온다. 그곳에서부터 정릉까지 약 4.2km 정도 거리다. 중간에 북악팔각정도 나온다.

 


여행하기 좋은 시기 : 신록의 봄. 단풍의 가을

주소 : 백사실 계곡 -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115 (지도보기

경로 : 네이버 테마지도 보기
총 소요시간 : 2시간

총 거리 : 6km

준비물 : 생수 한 병. 편안한 운동화. 숲길을 걷는 구간은 약 1.6km 정도다.

 

북악산 자락의 ‘백석동천’과 인왕산 자락의 ‘청계동천’을 잇는 6km 코스다. 북악산 자락의 ‘백석동천’은 ‘백사실계곡’으로 알려진 곳이고 인왕산 자락의 ‘청계동천’은 옛 ‘청계계곡’을 일컫다.

 

 

출발점과 도착점은 세검정이다. 세검정에서 백사실계곡이 끝나는 지점까지 숲과 계곡길을 걷는다. 여름에도 시원하게 걸을 수 있는 코스다. 계곡이 끝나면서 길은 시멘트 길로 이어지고 자하문 쪽으로 내려가는 아스팔트길과 만난다. 무계정사는 인왕산 ‘청계동천’ 자락에 자리 잡았다. 세검정 삼거리 바로 전 흥선 대원군 별장 사랑채를 돌아보고 세검정 삼거리에서 좌회전 한 뒤 태조가 한양 천도를 기원했던 옥천암 보도각백불까지 갔다가 출발지점인 세검정으로 돌아온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기자를 거쳐 2003년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살고 있다. 전국을 걸어 다니며 글 쓰고 사진 찍는다. [서울문학기행], [아름다운 자연과 다양한 문화가 살아 있는 서울·경기], [맛 골목 기행], [서울 사람들], [대한민국 산책길] 등의 책을 썼다. 이름 없는 들길에서 한 번쯤 만났을 것 같은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