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에 걱정이 앞섰다. ‘과연 아이들이 해낼 수 있을까?’ 지금까지 아이들이 가장 많이 걸어 본 게 해변 도로 3km인데, 상당산성 성벽을 따라 오르내리며 걸어야 하는 4.3km 구간 그리고 이어지는 600m 마을길과 3.1km 도로 고갯길을 다 걷자면 8km 거리가 된다. | |
숲길에서 다시 태어난 아이들
드디어 걷기여행 출발지점인 충북 청주시 상당산성 남문 앞 잔디광장에 도착했다. 푸른 잔디밭에서 주말 오후의 평온한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돗자리를 펴고 잠자는 아이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젊은 부부, 다과를 즐기며 크게 웃는 아줌마들, 할아버지 모시고 삼대가 모인 자리도 있었고, 배드민턴을 치고 축구를 하며 넓은 들판을 뛰어 다니는 아이들도 보기 좋았다. 그런 잔디광장을 지나 우리는 남문을 향해 걸었다. 남문을 통과하자 왼쪽으로 성벽을 따라 길이 이어졌다. 그리고 바로 그 옆 숲에 오솔길도 보였다. 숲 그늘 좋은 오솔길과 전망 좋은 성벽길은 그렇게 나란히 이어진다. 성벽에서 내려다보는 잔디광장과 푸른 숲의 풍경에 마음도 싱그럽다. 약 500m 정도 걸었을까? 남암문이 나왔다. 그곳까지 계속 오르막이다. 오르막길을 다 올라 숨을 고르면서 올라온 길을 돌아봤다. 성벽길이 이어졌다 끊어지면서 저 멀리 푸른 숲 사이에 숨은 듯 자리한 성벽길이 빠끔 보인다. 남암문을 지나면서 성벽길은 경사 심한 오르막 없이 넓고 편하다. 성벽길 바로 옆 숲속 오솔길로도 사람들이 많이 다닌다. 아이들은 오솔길 숲속에 숨어서 성벽길로 걷는 나를 보고 “아빠” 하고 부른다. 숨은 아이들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는데 아이들이 “우리 여깄어!”라며 ‘깔깔깔’ 해맑게 웃는다. | |
상당산성 남문 앞에 있는 넓은 잔디밭. 걷기여행의 출발지점이다.
꽃피는 4월부터 한여름 전인 6월까지 주말과 공휴일이면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자연 속에서 아이들은 더 싱그럽다. 숲에서 나온 아이들이 저 멀리 뛰어갔다 도로 달려온다. 아이들 목소리가 들떠있다. 높고 맑은 목소리로 아이들은 쉬지 않고 재잘댄다. 웃음 그칠 줄 모르는 얼굴이 ‘햇님’ 같이 반짝인다. 그렇게 우리는 서문을 지나 북문이 있었던 자리에 도착했다. 북문은 남아 있지 않았지만 작은 쉼터가 있어 잠깐 쉬어 가기로 했다. 이제 반 정도 온 셈이다.
남암문부터 서문을 지나 북문이 있었던 곳까지 이어지는 성벽길은 전망이 좋을 뿐 더러 길 자체가 예뻐 걷고 싶은 마음이 드는 구간도 있다. 그 길에서 아이들이 갑자기 ‘쪼르륵’ 달려가더니 “아빠 다람쥐다! 다람쥐!!”라며 부른다. 얼른 달려가 카메라를 들이댔다. 줄무늬 다람쥐도 귀여웠지만 동그란 눈으로 다람쥐를 보며 웃는 아이들 모습이 더 귀여웠다. 다람쥐뿐만 아니었다. 왕개미, 나비, 사슴벌레, 거미, 작고 노란 꽃들, 숲 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등 숲에 사는 모든 생명을 대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고 마음을 다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느끼고 싶어 했다. 느린 걸음으로 자연을 온전하게 느끼는 이 길에서 아이들은 다시 태어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새롭게 보였다. 아이들은 언제나 앞서 걸었다. 처음보다 오히려 더 씩씩하게 걷는다. 아이들 뒷모습을 바라보며 걷는데 순간 행복하다는 감정이 마음에 그윽하게 들어찬다. 여유 있게 걸어 동문을 지나 상당산성 걷기여행의 종착점인 산성 마을 저수지에 도착했다. 아담하고 잔잔한 저수지 둘레를 걸은 뒤 마을도 한 바퀴 돌아봤다. 곳곳에 숨어 있는 옛집과 골목길이 운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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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사람이 길을 내고 조선시대에 돌로 성을 쌓다
산성 마을은 ‘닭백숙과 대추술’로 유명하다. 1990년대 전후로 이 마을의 집 중 70% 이상이 닭백숙과 대추술을 팔았다. 지금도 많은 집에서 닭과 오리를 재료로 백숙이나 볶음탕을 판다. 성벽길을 한 바퀴 돌고 나서 맛보는 백숙 맛은 남다를 것이다. 상당산성을 처음 쌓은 때는 백제시대다. 청주시 자료에 따르면 백제시대에 흙으로 성을 쌓았다. 그 이름도 백제시대 ‘상당현’에서 유래한다는 설이 있다. 백제 사람들이 성을 쌓고 길을 만든 곳에 조선시대에 돌로 성벽을 구축했다. 조선시대 숙종 임금 때인 1716년에 석축을 쌓아 개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런 역사를 품은 상당산성은 지난 1970년 10월 1일 사적 제212호로 지정됐다.
성벽길을 따라 걷다보면 성벽은 가파른 산비탈에 거의 수직으로 세워져 있으나 성벽 안에는 흙을 다져 평탄하게 길을 낸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성의 형태는 우리나라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그 중 상당산성 성벽을 따라 이어진 4.3km의 성벽길은 청주시내 곳곳을 내려다볼 수 있으며 성 안쪽 숲의 자연미를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길로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져 ‘휴식 같은 걸음으로 행복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 |
굴곡이 계속 이어진다. 오르막길을 올라 고갯마루에 설 때마다 색다른 풍경이 여행자를 반긴다.
푸른 숲으로 길이 숨어들고 있다.
구불거리는 산길 옛 도로를 걷다
차를 가져 온 사람은 남문 잔디광장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된다. 산성 성벽길을 다 돌고 산성 마을에서 백숙 요리를 맛본 뒤 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면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사람이라면 백숙 요리를 맛보며 충분히 쉰 다음에 산성마을에서 명암약수터 앞까지 이어지는 3.1km 옛 도로를 걸어볼 만하다. 상당산성 걷기여행의 출발점인 남문 앞 잔디광장을 지나 산성입구까지 걸어간다. 새로 난 도로(터널이 있는 도로) 옆 길이 옛 도로다. 그 길을 따라 가다 보면 구불거리며 산을 내려가는 도로가 나온다. 옛날 청주시내에서 산성을 오가던 고갯길이다. 지금도 구불거리는 고갯길 드라이브를 즐기려는 사람들은 이 길로 산성까지 오간다. 길 주변에 숲이 우거져 새로 난 도로 보다 훨씬 운치 있다.
산성 마을 저수지에서 청주 시내로 나가는 시내버스가 있기는 한데 차 시간이 안 맞으면 많이 기다려야 한다. 명암약수터 앞에서는 청주 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비교적 자주 있다. 산성에서 버스를 기다리기 싫다면 걸어서 명암약수터까지 간 뒤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겠다. 버스를 놓친 우리는 걷기로 했다. 아이들은 아직도 ‘쌩쌩’하다. 해 기운 저녁 길은 선선했다.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천천히 걷는다. 어둠이 서서히 길을 내기 시작했지만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밤 하늘에 별이 뜨면 또 어떻겠는가? 오늘 하루 행복하게 함께 걸은 가족이 여기 있는데…. | |
가는 길 청주에 도착한 뒤 체육관 앞에서 산성까지 운행하는 시내버스를 탄다. 종점 바로 전인 남문 잔디광장 앞에서 내려서 잔디광장을 가로 질러 남문으로 들어간다. 남문에서 서문 쪽으로 걷기 시작한다. 처음 300미터 정도는 약간 가파른 오르막이다. 4.3km 산성 성벽을 따라 걷는 구간에 오르내리는 굴곡길이 군데군데 있다. 걷기여행 종착점인 산성 마을 저수지 앞에 도착하면 저수지를 한 바퀴 돌면서 산책을 즐긴 뒤 마을로 들어선다.
다시 시내로 나오려면 저수지 앞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타야 하는데 차가 1시간에 1대 꼴로 있다(주말이나 공휴일에는 낮에 5대 정도 증차된다). 차 시간이 많이 남았으면 약 3.1km 정도 거리에 떨어진 명암약수터까지 걷는 것도 괜찮다(명암약수터에서 청주시내로 나가는 버스는 자주 있다). 이 길은 아스팔트 도로로 걷는 중간에 구불거리며 산을 넘는 고갯길이 나오는데 숲이 우거져 운치 있다. 차를 가지고 간 사람은 남문 잔디광장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성 성벽길 4.3km만 걸으면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 중 산성마을에서 청주시내까지 나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리기 싫은 사람은 산성 성벽길과 명암약수터까지 가는 길을 다 더해서 8km를 걷는 것이다. 명암약수터에서 약 700~800m 거리에 청주동물원이 있으며 거기서 또 약 700~800m 거리에 청주국립박물관이 있어 아이들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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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기 좋은 시기 : 4월~6월
주소 : 충북 청주시 산성동 상당산성 (지도보기) 경로 : 네이버 테마지도 보기
총 소요시간 : 3시간
총 거리 : 8km
준비물 : 생수 한 병. 편안한 운동화. 지도는 필요 없음. 상당산성 남문 잔디광장 앞에 매점이 있다.
상당산성은 백제시대 처음 흙으로 지은 성이다. 이후 조선시대에 돌로 축성했으며 현재까지 개보수를 통해 성곽이 유지되고 있다. 4.3km의 성벽길과 3.7km의 옛 도로를 걷는 코스다. | |
- 글∙사진 장태동
- 여행기자를 거쳐 2003년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살고 있다. 전국을 걸어 다니며 글 쓰고 사진 찍는다. [서울문학기행], [아름다운 자연과 다양한 문화가 살아 있는 서울·경기], [맛 골목 기행], [서울 사람들], [대한민국 산책길] 등의 책을 썼다. 이름 없는 들길에서 한 번쯤 만났을 것 같은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