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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선약수마을길 - 삼색 숲을 만나다

문성식 2012. 8. 13. 13:27

전남 장흥은 전남 교통의 중심지인 광주에서도 1시간 이상 가야 하는 먼 거리다. 서울에서 5시간 거리니 이른 아침을 먹고 출발해도 도착하면 바로 점심시간이다. 걷기 전에 장흥 특산물 먹을거리인 ‘매생이탕’을 먹어야 한다. 이번 걷기여행의 출발점은 장흥시외버스터미널이다.(자가용 이용자는 ‘정남진 토요시장’으로 곧바로 찾아가면 된다. 장터 옆 탐진강 둔치에 주차공간이 있다.) 터미널에 내려 ‘정남진 토요시장’을 찾아간다. 지도상 760m 거리인데 작은 읍내 거리도 구경하고 탐진강과 강변 둔치의 소박한 공원도 구경하며 걷는다.

 

삼색 숲길을 거닐다

 

장터를 벗어나 장흥대교 아래 돌다리를 건너 군민회관5거리에 도착했다. 거기에서 평화리 상선약수마을로 들어간다. 직선 아스팔트길 1.5km를 걷는 사이 넓은 들판과 들판에 핀 들꽃이 볼만하다. 마을 입구 메타세쿼이아길이 여행자를 반긴다. 메타세쿼이아길이 끝나는 곳에 정자가 있다. 정자 옆에서 대나무숲길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나무 계단길이다. 대나무가 하늘을 가려 햇볕이 걸러든다. 길은 험하지 않지만 오르막이 계속 이어진다. 대나무숲이 끝나는 지점에 평상이 하나 놓였다. 그 평상을 지나면 소나무숲이 나온다. 소나무숲길 끝은 억불산 임도와 만난다. 정자에서 여기까지가 약 700m 거리다. 임도는 시멘트길이다. 임도 따라 1.1km를 더 걸으면 이번 걷기여행의 중간 지점인 ‘정남진 천문과학관’이 나온다. 

 

천문과학관 앞에 서면 장흥 읍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발 300m가 채 안 되는 높이인데도 시야가 좋다. 음수대가 있어 목도 축이고 식수도 보충할 수 있다. 거기서 약1km 더 올라가면 억불산 정상이다. 이번 걷기여행 코스를 따르자면 천문과학관 앞으로 난 숲길로 내려가야 한다. 그 길에서 편백나무 숲을 만났다. 쭉쭉 뻗은 가지에 하늘을 가린 편백나무 숲은 언제나 여행자의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만든다. 숲을 아주 천천히 거닐었다. 곳곳에 놓인 운동기구에도 매달려 보고 평상에 눕기도 했다. 주변에 사람만 없었다면 옷을 다 벗고 풍욕을 즐기고 싶었다.


이곳 마을 아줌마 같은 사람이 그 숲에서 나물을 뜯는다. “무슨 나물이에요?” 물으니 “저도 몰라요 어디서 본 것 같아 뜯긴 뜯는데…”라고 답한다. 마을 사람이 나물을 뜯는 거나 먼 도시 여행자가 이 숲에 드러누워 시간을 즐기는 거나 그 마음이야 뭐가 다르겠는가. 그저 자연과 한 번 더 깊은 숨을 나누고 싶은 그런 마음 말이다.      

 

편백나무 숲길. 상선약수마을 걷기여행의 마지막 숲이다. 대나무숲길과 소나무숲길을 지나고 임도를 거쳐
천문과학관 앞에서 편백숲길로 내려가는 길을 따르면 이 길을 만날 수 있다.

  

‘울긋불긋 꽃대궐’ 마을길을 걷다

 

편백나무 숲을 벗어나서 걷다보니 약수터가 나왔다. 목을 축이고 약수터 앞으로 난 나무 계단을 따라 내려왔다. 길은 마을로 이어졌다. 대나무숲과 소나무숲을 지나 임도를 걸어 다시 편백나무숲을 지나 온 이 길은 마을입구에서 출발해 마을 뒷산을 돌아 다시 위로 내려오는 코스다. 마을 위쪽에는 작은 절집 ‘성불사’가 소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일주문도 없는 절 입구 나무그늘 아래 ‘소원성취’라는 글을 쓴 기와 한 장이 문패처럼 놓였다. 절집을 지나자 숲속 마을 외딴 집에서 색소폰 소리가 들려왔다. 소소한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 인생을 즐기는 장소였다. 이것이야 말로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살아 있는 예술의 전형 아니겠는가.

 

마을로 내려가는 길에 오래된 우물이 나왔다. 조선시대부터 대나무 통에 숯과 모래, 자갈 등을 넣어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걸러 먹었다. 그때부터 이 마을 사람들은 정수기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물을 지나 걷는데 온통 꽃으로 뒤덮인 지붕 낮은 집이 보였다. 마당과 집 주변이 화사한 꽃들로 가득 찼다. 그야말로 ‘꽃대궐’이었다. 그 집 앞에는 50여 그루의 배롱나무가 있는데 여름에 꽃을 피우기 때문에 아직은 앙상한 가지만 구불거리며 하늘을 이고 있었다. 연못 안 작은 땅에는 큰 소나무 네 그루가 친구처럼 서 있었다. 연못 옆으로 난 음습한 골목길에는 고택의 담장과 거대한 나무가 하늘을 가렸고 그곳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푸른 이끼가 자랐다. 고택으로 들어가는 문은 잠겨 있어 옛집의 정취를 구경할 수 없었으나 담장과 나무, 그 아래 이끼 낀 돌계단만으로도 오래 된 마을의 향기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마을길을 따라 나오는데 해가 지면서 마을 앞 작은 저수지에 노을이 그 빛을 뿌려놓고 있었다.

 

상선약수마을 꽃 만발한 집 정원. 그야말로 '울긋불긋 꽃대궐'이 아닐 수 없다. 보기만 해도 행복하다.

  

이 마을의 이름은 ‘평화리’인데 ‘상선약수마을’로 더 잘 알려졌다. 마을 이름에 노자가 남긴 글 가운데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의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글귀를 따다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장흥시외버스터미널로 가면서 오늘 걸었던 길을 다시 떠올렸다. 장터 ‘사람숲을 지나 대나무숲과 소나무숲, 편백나무숲을 걸어 온 하루. 오늘 하루가 물 흐르듯 흘렀다. 아무런 흉도 없고 화도 없고 거역도 없고 오직 하나 흥에 겨워 신나고 앞뒤 다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들이 사는 마을이 있어 도시를 떠나온 여행자의 하루가 편안했다. ‘상선약수(上善若水)’의 하루가 먼 타향에서 지고 있었다.     

 

 


여행하기 좋은 시기 : 신록 오르고 철쭉 피는 5월. 배롱나무 꽃 피고 녹음 우거진 8월.

주소 : 전남 장흥군 장흥읍 평화리 (지도보기)

경로 : 네이버 테마지도 보기
총 소요시간 : 3시간 30분

총 거리 : 7.9km

문의 : 체험마을사무장 (019-625-3446)

 

장흥에 가면 정남진 토요시장을 들러야 한다. 2일과 7, 토요일에 장이 선다. 옛날 시장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데다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는 장터 공연장에서 공연이 열려 장터의 흥을 더욱 돋운다.

 

또 토요시장에 가면 공연장 앞 식당에서 파는 매생이탕을 먹어봐야 한다. 매생이는 장흥 특산물 먹을거리로 매년 겨울에만 채취한다. 겨울에 채취한 매생이를 사철 팔기 위해 식당마다 냉동 보관한다. 입안에서 느끼는 질감이 부드럽고 그 맛은 구수하다. 매생이탕은 끓거나 김이 나지 않지만 매생이가 열을 머금고 있기 때문에 먹을 때 천천히 식혀가며 먹어야 한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기자를 거쳐 2003년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살고 있다. 전국을 걸어 다니며 글 쓰고 사진 찍는다. [서울문학기행], [아름다운 자연과 다양한 문화가 살아 있는 서울·경기], [맛 골목 기행], [서울 사람들], [대한민국 산책길] 등의 책을 썼다. 이름 없는 들길에서 한 번쯤 만났을 것 같은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