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잔의 추억,,,

차 한잔의 침묵

문성식 2012. 4. 15. 21:29

      차 한잔의 침묵 법상 스님 엇저녁부터 내리는 빗방울의 기세가 여느때 같지 않게 거세고 진득한 걸 보면 이제 장마가 시작되려는가 보다. 비가 내릴 적에는 창문을 열어 놓고 빗소리를 듣곤 한다. 그도 모자랄 때면 방앞 작은 다실로 나아가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차 한 잔을 우리며 한참을 밖을 내다 보고 있기를 좋아한다. 방은 창문이 커야 좋겠다. 행여 이 다음에 집을 지을 일이 생긴다면 내 방은 사방으로 툭 터진 너른 창문을 낼 것이다. 물론 바깥 공기 때문에 조금 추울 일은 있겠지만 겨울 옷을 꺼내 입을 지언정 창문을 꼭꼭 닫아 두게 되면 답답하고 매마르며 마음이 훤해지지 않는다. 햇차라고 누가 선물해 주었던 우전 한 모금 입에 담고 비냄새와 함께 들숨으로 타고 들어오는 한 자락 향내음도 이런 내 삶에 더없는 풍요로움이다. 예전엔 선물 받은 것들을 보면 선물해 준 사람이 생각나 고마움을 느꼈었는데, 요즈음은 도통 어디서 난 것인지, 누가 준 차인지도 생각이 가물가물 하다. 선물해 주신 분께는 죄송한 일이지마는 애써 마음 일으킬 일이 없으니 그 고요 함도 좋은 일이긴 하다. 나는 이 공간을 좋아한다. 컴퓨터에 프린터기, 스캐너, 전화기, 카 세트, 농장이며 책장 그리고 그 외에도 나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 주는 많은 것들이 짐짝처럼 쌓여있는 내 방을 보면 머리가 아프다. 그러나 그에 비해 방앞에 단아하게 놓여 있는 이 텅 빈 다실은 그나마 내 머리를 맑게 해 주고 내 삶에 맑은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늘 마음은 그리워하고 있다. 방 안에 처박혀 있는 저 편리한 물품들을 언젠가는 다 들어내고 이 가난한 다실처럼 내 일상도 가난해 지고 싶은 것이다. 아직은 젊은 혈기에 욕심이 많고 또 핑계거리가 있다보니 이놈의 것들을 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처지가 딱하기도 하고 또 한 편 그것이 ‘내 몫’이라는 데 ‘내 삶의 이유’라는 데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이 다실에서 차를 마실 때는 혼자일 때가 가장 좋고 그 다음은 둘일 때 인심을 조금 더 쓴다면 셋까지도 보아 줄 만은 하다. 차를 마실 때 사람이 너무 많으면 자연스레 말이 많아지고 그러다 보면 청아한 차 한 잔의 맑음에 속진의 때를 입히는 것 같아 찻잎에게 민망한 마음이 든다. 혼자 마시는 차가 좋은 이유는 충분한 ‘침묵’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침묵 그 속엔 거대한 말 없는 말이 담겨 있다. 침묵 속에 어우러진 속 뜰의 향기는 우리의 삶을 더욱 살지게 하고 풍요롭게 할 것이며 그 안에서 참된 지혜의 울림을 꽃피울 수 있다. 말과 글, 언어를 통한 울림에만 너무 익숙하게 되면 그만큼 우리의 내면은 번잡해 지고 중심을 잡지 못하게 마련이다. 우린 누구나 침묵을 통해, 혼자 있음을 통해 저마다의 내면의 울림에 귀 기울여야 한다. 바깥에서 끌어내는 답변이란 언제나 그렇듯 근원적이지 못하지만, 침묵을 통해 내면의 바다에서 피어나는 울림이란 근원적이며 온전하다. 말이 많으면 정신이 없다. 혼란스럽고 난잡하여 중심이 서지 못한다. 모임을 즐기는 사람이나, 토론을 즐기는 사람을 보면 똑 부러지기는 할 지언정 청청한 향기로움을 느끼지는 못 할 것 같다. 나 부터가 그렇다. 3주에 한 번 있는 모임에서도 한나절 입을 놀리고 나면 괜히 속이 텅 텅 비는 것 같고 공허할 때가 있다. 사람들이 떠나간 뒤에는 늘 그런 속앓이를 하게 된다. 아직 ‘말하는 침묵’을 실천하기에는 ‘머무름 없는 행’을 실천하기에는 많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다. 이놈의 공부는 이처럼 끝이 없어서 좋기도 하고 힘겹기도 한 것이다. 그래도 이만하니 이 공부가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가. 이 다실 때문에 공부를 많이 하게 된다. 침묵의 의미를 알게 해 준 것도 이 곳이고, 또한 말의 의미를 알게 해 준 것도 이 곳이며, ‘혼자 있음’의 충만함을 일깨운 곳도 이 곳이고, 도반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준 곳도 이 곳이다. 함께 나누는 차 한 잔 속에서, 이심전심 침묵 속에서도 마음을 나눌 수 있었음 좋겠다. 그런 도반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고, 나 또한 그런 맑은 도반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얼마전 이 다실 한 귀퉁이에 이런 글귀를 적어 두었다. * * * 맑은 차 한 잔 나눌 때는 그냥 고요해도 좋습니다. 애써 할 말을 찾지 않아도 지금 이 침묵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사람 사이의 침묵을 못 견뎌 하지만, 사람 사이에 맑은 차 한 잔 놓여 있을 땐 차 한 잔의 침묵을 받아주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이 텅 빈 고요 속에 속 뜰의 본래 향기 잔 속으로 은은히 피어오를 듯 말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