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초신자를 위한 신앙생활 길잡이> ④ 예배

문성식 2012. 4. 5. 09:11

<초신자를 위한 신앙생활 길잡이> ④ 예배  


“예배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초신자들이 교회 생활을 하면서 힘든 것은 지루한 설교를 듣는 것과 전통적인 형태의 예배의식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최근 들어 많은 교회에서는 믿지 않는 사람과 초신자들이 예배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고 복음을 이해하고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좀더 쉽게 참석할 수 있도록 전통적인 예배형식과 방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스타일의 예배를 드리곤 한다.

‘열린 예배’(Seeker's Service)란 이름으로 불리는 이 예배는 찬양, 연극 등 문화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많은 교회에서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열린 예배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열린 예배에 대해 새로운 형태만을 즐기고자 하는 풍조를 반영한 것으로 본래 예배의 본질을 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열린 예배’는 예배가 아닌 집회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예배의 본질은 무엇이며, 예배는 어떻게 드려야 되는 것일까?

Part 1. 예배란 무엇인가

예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의 믿음의 표현이며 마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대하7:14). 또한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요 기독교의 핵심이다. 그래서 성경은 창세기부터 시작해 요한계시록까지 예배란 무엇이며 그 대상은 누구인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예배의 어원적 의미
일반적으로 예배(禮拜)란 “예를 다하여 절한다”는 뜻이며, 영어의 Worship(예배)은 ‘worth’(가치)와 ‘ship’(신분)에서 유래됐는데, ‘존경과 존귀를 받을 가치가 있는 신분’이라는 어원적 의미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예배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구약에서 예배를 의미하는 단어는 ‘종이 주인을 섬기다’, ‘봉사하다’를 의미하는 ‘아바드’(창15:13, 14:4)와 ‘몸을 굽히다(엎드리다)’, ‘굴복하다’는 뜻의 ‘샤하아’(대하29:30, 욥1:20)가 사용되고 있다. ‘아바드’는 성전에서 드리는 공식적 예배에 사용된 단어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자주성을 버리고 그의 뜻을 따르는 존재’임을 말해 주고 있다. ‘샤하아’는 예배자들이 숭배의 대상에 대해 최대한으로 존경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의미로, 인간은 하나님 앞에 완전히 복종해야 하는 존재임을 말해 준다.

신약에서는 ‘누구의 손에 입맞추는 것’을 뜻하는 ‘프로스쿠네오’와 ‘백성을 위해 일한다’는 의미의 ‘레이투르기아’, 그리고 ‘섬긴다’는 뜻의 ‘라트레이아’가 사용됐다. ‘프로스쿠네오’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마음을 가지고 무릎을 꿇어 경배하는 것을 말한다(마28:9, 17, 고전14:25 등). ‘레이투르기아’는 교직자들의 드리는 제의적 봉사나 특정인만 참여하는 예배가 아닌 회중 전체가 참여하여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봉사를 뜻한다. 즉 예배는 회중 전체의 일이요 행위임을 말해 주고 있다. 한편 ‘라트레이아’는 말 그대로 피조물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섬긴다는 뜻으로 사용됐다.

예배의 정의 ; 계시와 응답 그리고 만남
예배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현대의 예배학자들은 “하나님의 구속 사건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예배라고 정의한다. 즉 하나님의 계시(revelation)와 인간의 응답(response), 그리고 만남(encounter)이 예배의 특징이다. 예배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이루어진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즉 수직적 관계와 수평적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즉 예배는 이러한 관계회복을 전제로 하며 지향한다.
또한 예배의 개념은 하나님께 경배하고 교회를 위한 공적인 봉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 하나님의 말씀 선포, 감사와 찬양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섬기는 삶 자체를 의미한다.

예배의 본질 ; 영과 진리가 기초하는 예배
예배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창조이래 참 예배를 드리는 자를 찾으신다. 그래서 아담 이후 꾸준히 예배들이 드려져 왔다. 또한 예배는 지상에서만 이루어지고 끝나는 것이 아닌 천상에서도 계속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요한계시록은 말씀하고 있다(계5:11-14).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참된 예배의 어떤 것인가에 대해 주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라고 말씀하셨다(요4:23). 즉 상한 심령으로 정성을 다해 외식함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드려지는 예배를 의미한다.

또한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사마리아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고 책망하셨다. 사마리아인의 예배는 ‘예배의 내용이나 대상에 대한 지식은 무시하면서도 열광적이고 감정적인 예배’라는 사실을 지적하셨다. 반면 유대인의 예배는 ‘아는 것을 예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유대인의 예배도 신령과 진정(영과 진리)이 빠진 예배였다. 아무리 예배의 내용이나 대상을 알아도 예배에 마음이 담겨 있지 않으면 생명 없이 드려지는 예배일 수밖에 없다.

예배의 요소 ; 성삼위 하나님과 인간
예배의 요소에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임재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경배드릴 때 반드시 필요한 요소는 찬양(대상16:25), 경배(고전14:25), 기도와 간구(시141:2), 하나님의 말씀(신5:27), 예물(시96:8), 겸손(합2:20), 거룩한 태도(롬12:1) 등이다. 또한 사도행전을 통해 우리는 예배의 구성요소를 4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먼저 설교나 성경 봉독과 같은 가르침이 있어야 한다.
둘째는 성도들간의 공동체적인 삶이 있어야 한다.
셋째는 세례와 성만찬과 같은 의식이 있어야 한다.
넷째는 기도가 있어야 한다.

즉 예배 속에서 복음이 선포되고 또 설명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듣는 가운데 함께 고백하며 찬양과 기도가 드려져야 한다.
한편 예배를 드릴 때 잊기 쉬운 것은 예배의 대상이 누구인가라는 점이다. 예배는 하나님(성부, 성자 성령)을 위한 것이지 사람이나 천사 등 피조물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된다. 성경은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을 대신하여 예배 받을 만한 존재가 없다고 가르친다(출20:4, 레26:1). 또한 우리는 간혹 예배의 주인(중심)이 하나님이 아닌 ‘내가’ 될 때도 있다.

온전한 예배의 자세
예배를 드리는 가장 올바른 자세는 마음과 정성, 뜻을 다하여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예배를 받으시기 기뻐하신다. 자신을 드리지 않고서는 거룩하고 신령한 예배가 될 수 없다. 예배는 혼자 드리는 것이 아닌 성도들이 다 함께 드리는 것이므로 성도는 합력하여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리도록 해야 한다(롬8:28).

예배는 단지 교회에서만 이루어지는 행위는 아니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모든 삶의 현장에서 거룩한 산 제사로 자기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예배자의 마음 속의 동기와 태도가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또한 예배의 깊이는 하나님을 아는 것에 비례한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갖는 행위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공부할 때 하나님을 깊이 알게(깨닫게) 된다.

잘못된 예배에 대한 인식
① 예배와 삶이 분리된 신앙
많은 교인들은 의무적인 예배는 성스러운 것이고, 그 외의 생활은 세속적(世俗的) 삶으로 분리하는 이원론적인 사고를 갖는다. 그래서 교회에서의 생활과 세상에서의 생활이 별개인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삶과 예배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즉 세상에서의 삶도 예배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② 예배를 구경만 하는 교인
우리는 일상 속에서 쉽게 ‘예배를 본다’고 말하는데, 그 말은 잘못된 것이다. 예배 시간은 단순히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것을 받기만 하며 구경하는 시간이 아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계시와 인간의 응답이 만나는 동적인 자리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다.
③ 십자가 관계가 없는 예배
예배를 나와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로만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예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연상해 생각해야 한다. 예배는 공동체 속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으로 수직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교인들간의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④ 입맛 따라 옮기는 교인
많은 수는 아니지만 자신들의 기호에 합당한 교회, 또는 축복을 받으려고 교회에 나가는 교인들이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예배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예배의 기본정신은 감사로 응답하는 드림에 있지, 무엇을 받거나 무엇을 추구하는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배의 중심은 ‘하나님의 말씀’
교회 개혁을 말할 때 항상 예배의 개혁(Renewal of Worship) 혹은 예전 갱신이 언급된다. 그것은 예배가 교회의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종교개혁가들은 예배에서 불필요한 예전적 요소들을 제거하고 설교 즉 말씀의 비중이 강화되도록 개혁하였다. 그것은 “예배에 있어서 그 중심은 말씀이 돼야 한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설교단을 중앙에 설치하는 모습은 이를 상징한다.

그런데 한국교회 전체가 한때 경배와 찬양모임이라는 열병에 휩싸였던 것처럼 최근에 열린 예배의 붐이 일어나고 있다. 열린 예배의 형태도 찬양예배, 드라마예배, 영화예배, 토크식 예배 등 다양한 문화적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열린 예배에 대한 관심은 청년들이나 교회 안의 불신자 혹은 초신자들을 겨냥하고 있는 점에서 바람직한 모습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이 약화된 예배란 점에서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즉 교인들의 영적 성장과 회심은 말씀과 양육에 의해서 이루어지는데, 열린 예배는 영적으로 볼 때 어린 아이들을 위한 복음의 기초(젖먹이 신앙)를 강조하는 예배라는 점이다.


PART 2. 성경에서의 예배 기원

많은 이들은 성전과 교회의 의미가 다르듯 제사와 예배는 다르다고 말한다. 제사에는 피의 희생이 따른다면 예배에는 말씀과 기도, 성만찬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 분명히 제사와 예배는 형식적인 면에서 다르지만 그 기원은 한곳에 두고 있다.
예배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기독교의 예배 기원은 사도행전 2장에서 찾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섬긴다’, ‘경배한다’라는 의미의 예배는 인간 창조와 깊은 연관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하시면서 자신과 교통하며 섬길 수 있는 능력을 사람에게 부여하셨다. 아담과 하와는 타락하기 전에는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에 대한 예배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이후 예배에는 희생제물을 바쳐야 되는 제사로 변형되었다.

우리는 성경에서 타락 후 첫 예배의 모습은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히11:4). 이후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자신과 가족의 구원에 대한 특별한 감사의 표시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제물을 드렸다(창8:20-21). 아브라함과 이삭도 장막을 치는 곳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한 제단을 쌓았는데(창13:4, 26:25), 성전(성막)이 출현하기까지 가족 중심적인 예배가 드려졌다.

구약시대의 예배
구약시대의 예배는 제사로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를 통해 자신의 죄악을 해결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온전히 가질 수 있었다. 구약의 5대 제사는 인간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을 내포하고 있다.
먼저 번제(레1:1-17)는 ‘자기를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한다’, 소제(레2:1-16)는 ‘자신의 삶을 드려서 하나님만 기쁘시게 한다’, 화목제(레3:1-17)는 ‘하나님과의 교통을 상징’, 속죄제(레6:24-30)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죄) 회복’, 속건제(레7:1-10)는 인간과 인간간에 관계를 회복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구약의 제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흠 없는 제물이 있어야 됐는데, 이 제물은 인간을 대신해 희생되었다. 이것으로 제사 드리는 자가 죽은 것으로 간주하였는데, 신약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구약의 제사법을 완성시키셨다(히9:24).
구약시대 예배의 발전형태를 보면 가족 중심의 ‘단(壇) 예배’가 출애굽시대 이후 일정한 의식(예전)과 민족공동체 중심의 ‘성막 예배’로 발전하게 된다. 솔로몬 시대 이후 이동형 예배인 ‘성막 예배’는 ‘성전 예배’로 전환하지만, 반복되는 전쟁과 성전파괴는 결국 소그룹 형태의 ‘회당 예배’ 변하게 된다.

신약시대의 예배
신약시대의 예배는 구약시대의 예배와 달리 보다 영적인 의미를 지닌다. 신약시대 예배의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의 행하신 일에 대해 성도들이 찬미와 선행, 사랑의 수고로 응답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즉 짐승의 희생을 통해 드리는 구약시대의 제사와는 달리 삶을 통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서 영적 예배이다(롬12:1).

신약시대의 예배는 초기 유대교의 회당예배의 형식을 본 땄다. 그러나 기독교의 원시적인 예배 형태는 ‘식탁공동체 예배’라고 볼 수 있으며, 성만찬을 예배의 중요요소로 여겼다. ‘초대교회 예배’는 교회의 틀이 형성되면서부터 가르침(말씀), 세례, 성만찬을 예배 중심으로 시행했다. ‘중세교회 예배’는 말씀 위주보다는 예배의 외적인 형식과 의식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됐고, 소그룹 형태의 초대교회 예배가 대규모 형태의 예배로 변하게 됐다. 종교개혁시대에 이르러서는 하나님과 만남이 실현되지 않는 중세교회 예배에 대한 개혁이 요청됐으며, 종교개혁자들 위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공동체’를 실현을 추구하게 됐다.

PART 3. 김남준 목사 인터뷰

“참된 하나님의 말씀 선포에서 예배가 살아난다”
예배는 참아야 할 종교의무이기 때문에 초신자들에게는 불편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배는 예식도 의식도 아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예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은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기 위한 기다림이 없는데, 예배 15분 전 미리 와서 기도하고 준비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또한 예배는 형식과 전통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진실함’이 예배 순서마다 배어나야 하며,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기쁨을 드려야 한다.

예배 시간에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4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첫째로 예배 중 정직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돼야 한다.
둘째는 성령께서 예배 중 은혜를 내려 주셔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가 있어야 된다.
셋째는 하나님을 만나려는 갈망에서 예배에 참석해야지 기능적인 참석은 필요 없다.
넷째로 정직한 하나님의 말씀을 접할 수 있도록 깨달으려는 갈망이 필요하다. 즉 예배가 주님의 인격을 체험하는 시간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많은 교회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열린 예배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옳지 않게 생각된다. 왜냐하면 넓은 의미에서 예배는 안 믿는 사람이나 창조된 피조물 모두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되겠지만, 우리가 말하는 예배는 협의적인 의미이다. 물론 불신자 전도를 위한 집회는 필요하지만, 주님을 만나는 것(예배)과 대체할 수 없다. 예배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토대 위에 드려야 된다. 예배에서 설교는 교인들을 성화로 이끄는 것인데, 전도를 위한 설교로는 성도를 신앙적으로 성숙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과도한 음악이나 감정적인 요소를 도입하는 열린 예배는 말씀집중보다는 콘서트 분위기로 흐를 수밖에 없기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라기보다는 전도집회라고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