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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213호. 정면 7칸, 측면 2칸, 팔작지붕. 삼척시의 서편을 흐르는 오십천(五十川)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있으며, 옛날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이승휴(李承休)가 창건하였는데, 그 후 1403년(조선 태종 3)에 삼척부사(府使) 김효손(金孝孫)이 구기(舊基)에 의거하여 중창(重創)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는 정면이 5칸이었던 것을 후일 좌우 양단에 1칸씩을 늘린 것 같고, 그 부분만은 공포(拱包)의 형식을 달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내부의 천장을 보면 당초의 건물의 측면 외부에 나와 있던 도리의 뺄목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이 누각이 전에는 맞배지붕 건축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공포는 주두(柱頭) 뒤의 두공(頭工)으로써 대들보를 받도록 한 후 그 보머리가 그대로 길게 나와서 외목도리(外目道里)를 직접 받고 있다. 제일 밑에 있는 첨차(遮)는 기둥머리에 꽂혀 있는데, 이는 주심포(柱心包)집 계통에서 볼 수있는 수법이다. 그러나 그 첨차의 형태는 오히려 다포(多包)집 계통의 것을 사용한 점이 특이하다. 조선 초기의 건축이지만 몇 번에 걸친 수리 때문에 원형이 손상된 부분이 많다.
三陟竹西樓(삼척죽서루)
보물 제213호
소재지 : 강원 삼척시 성내동 9-3
[竹西樓(죽서루) 입구]
樓(누)란 사방을 트고 마루를 한층 높여 지은 다락형식의 집으로,
이 건물은 고려 충렬왕 1년(1275)에 대학자 이승휴 선생이 세웠다.
그 뒤 조선 태종 3년(1403)에 삼척부의 수령인
김효손이 고쳐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竹西樓(죽서루)]
우리가 가는 날.
죽서루 앞 화단에 핀 모란을 화폭에 옮겨그리는 분이 계셨다.
참 아름다운 한폭의그림같은 풍경 난 그분까지 디카에 담아왔습니다.
[가까이서 찍은 죽서루]
죽서루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유래가 있다.
그 하나는 죽서루 동쪽에 대나무밭이 있었는데,
그 대밭 속에 죽장사라는 절이 있었다.
그래서 죽장사 서편에 있는 누각이라 하여 죽서루라했다 한다.
이름난 기생 죽죽선녀의 집 서편에 있는 누(樓)라고해서 죽서루라 했다 하지만,
신빙성은 적다 한다.
[화단에 심어져 있던 모란]
모란(牧丹)
미나리아재비과 낙엽활엽관목으로 높이 약 2m
원산지는 중국으로 전국에 분포
5~6월에 백색이나 붉은 자줏빛의 큰 꽃이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그윽한 향기가 봄의 향취를 높게 하므로
한국식 정원에 알맞은 관상수이라 한다.
잎 또한 특이하여 꽃이 없는 시기에 감상 가치가 있다.
햇볕이 드는 곳에 잘 자라며 홑꽃 또는 겹꽃으로 피는
다양한 색상의 꽃이 감상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정원의
어느 곳에서 나 볼 수 있도록 단식, 군식으로 화단에 심는다.
활짝 핀 모란의 너무 아름다워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죽서루]
이 누각에는 율곡 이이 선생을 비롯한 여러 유명한 학자들의 글이 걸려 있다.
그 중 ‘제일계정(第一溪亭)’은 현종 3년(1662)에 허목이 쓴 것이고,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는 숙종 37년(1711)에 이성조가 썼으며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는 헌종 3년(1837)에 이규헌이 쓴 것이다.
[죽서루 현판]
죽서루에는 당대 쟁쟁한 많은 문인 학자들이 시를 남겼고
그시가 오늘날 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일부는 죽서루에 현판과 벽면에 걸려 있었다.
그 중의 몇 가지만 담아 왔습니다.
그 중 촛점이 맞지 않아 떨린 사진도 있지만, 올려봅니다.
[이규헌이 쓴 海仙遊戱之所(해선유희지소)]
[허목이 쓴 第一溪亭(제일계정)]
[竹西樓 / 李球]
삼척의 관루는 죽서루이고
누중의 가객은 심중서로다
지금과 같이 백발임에도
시와 술에 의탁하여
한가한 나를 위해 자리를 베풀었네
본관은 우계(羽溪), 초휘는 옥(沃), 공(公)은
일찍이 고려 충렬왕 8년 1283년 원(元) 나라에 들어가
약관 18세에 진사(進士)에 급제하여 환국(還國)후
고려조정에 중용(重用)되어 예빈경(禮賓卿)에 이르렀고,
당대(當代)의 문명(文名)을 날렸으며 특히 詩文(시문)에 능하였으며
삼척죽서루(三陟竹西樓)에 그 시문과 더불어 오늘에까지 명성이 전래되고 있다.
[竹西樓 次韻 / 栗谷 李珥]
누가 하늘 도와 이 아름다운 누각을 세웠는가
그 지나온 세월 얼마인지 알 수가 없구나
들판 저 멀리 산봉우리에는 검푸른 빛 서려있고
모래사장 부근에는 차가운 물 고여있네
시인은 본래 남 모르는 한이 많다지만
깨끗한 이 곳에서 어찌 나그네의 근심을 일으켜야만 하리요
온갖 인연 모두 떨쳐버리고 긴 낚시대 들고와
푸른 절벽 서쪽 물가에서 졸고 있는 갈매기와 놀아보리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1536~1584).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 석담(石潭) 시호 문성(文成)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호조, 이조, 병조 판서, 우찬성을 지냈다.
사헌부 감찰을 지낸 원수(元秀)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사임당 신씨이다.
저서로는 <율곡전서> <성학집요> <경연일기>가 있다.
[竹西樓 / 松江 鄭澈]
관동의 신선 경계에 있는 삼척의 누각
빈 난간 높이 걸려 있어 여름 또한 가을 같다.
하늘위의 옥황상제 궁전이 북쪽 왼편에 이웃해 있고
꿈속에 은하수 서쪽으로 흘러감이 들린다.
성긴 주렴 걷고자 하나 이슬이 축축하고
한마리 새 날지 않으니 강의 모습 시름겹다.
송강 정철(松江 鄭澈 : 1536~1593)은 조선 선조(14대) 때의 명신이면서
문인으로서 자는 계함, 호는 송강이며, 시호는 문청이다.
율곡 이이와 동갑나기인 정철은 돈녕부 판관을 지낸 정유침의 아들로서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당대의 명유들이었던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면앙정 송순 등에게서
글을 배웠으며, 우리나라 시가사상 고산 윤선도와 쌍벽을 이루는 가사문학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竹西樓에서 바라본 오십천]
죽서루에서는 멀리 태백 준령이 보이고 가까이는 근산(近山),
갈야산(葛夜山), 봉황산(鳳凰山)이 솟아 있다.
오십 굽이를 휘몰아쳐 흐른다는 오십천 절벽 위에 장방형으로
자리잡은 죽서루는 관동팔경 중 바다를 끼고 있지 않은 유일한 樓(누) 라한다.
[樓에서 본 왼쪽 정경]
경치가 아름다운 삼척 죽서루는 關東八景 中 하나로 손꼽힌다.
關東八景(관동팔경)이란
간성 청간정(淸澗亭), 강릉 경포대(鏡浦臺), 고성 삼일포(三日浦), 삼척 죽서루(竹西樓),
양양 낙산사(洛山寺), 울진 망양정(望洋亭), 통천 총석정(叢石亭), 평해 월송정(越松亭)
[樓에서 본 오른쪽 정경]
[예전 흔들다리가 있었던 자리]
[밑에서 바라본 죽서루]
죽서루는 기둥을 자연암반의 높이에 맞춰 직접 세운 점도 특이하다.
죽서루는 총 17개의 기둥이 있는데, 나머지 여덟 군데의 기둥은 다듬은 암반 위에 올라갔다.
그래서 죽서루의 기둥은 그 높이가 제각기 다르다고 한다.
다듬은 초석과 다듬지 않은 자연 높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죽서루에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과 공존을 모색했던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슬기가 고스란이 남아 있다.
곳곳에 암벽같은 기묘한 바위들이 늘려 있었다.
[용문 바위와 성혈 유적]
죽서루 동쪽 옛 연근당 자리 가까이에 있는
바위문, 행초서로<龍門>이라 새긴 음각글씨가 있으며,
바위 상부에 성혈 유적이 있다.
성혈은 풍요와 다산을 의미하는 선사시대의 상징물이지만
조선시대에와서는 민간신앙으로 정착되어 득남의 기원처로 변했다한다.
즉 칠월 칠석날 자정에 부녀자들이 성혈터를 찾아가서
일곱구멍에 좁쌀을 담고 치성을 드린 후 좁쌀을 치마폭에 감추어 가면
아들을 낳는다고 믿는 민간 신앙이다.
용문 바위의 성혈은 크기가 직경 3~5cm정도의 크기로 10개가 만들어져 있다.
예전엔 이곳에 물이 드나들었었나?
아님 풍화작용인가?
자연의 조화가 참으로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은행나무]
은행나무과
원산지는 중국동부로 전국에 분포
가을에 물드는 노란 단풍이 아름다워 주로 도심지의
공원이나 도로변에 녹음을 제공하는 나무로 심는다.
강한 햇볕아래에서 잘 자라고 암수의 구별이 있으며,
공해에는 강한편이나 생장속도는 느린 편이다.
[송강정철 가사의 터 표석]
문화부는 1991년 2월을 우리나라 가사문학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송강 정철의 달로 정하고 기념 표석을 두개 세웠는데, 하나는
"관동별곡"에 나오는 관동팔경의 하나인 삼척의 죽서루 경내이고,
다른 하나는 "성산벽곡"의 무대인 전남 담양의 석영정 부근이다.
높이 3m의 8각 대리석으로 기단의 둘레가 2.5m인
<송강 정철 가사의 터> 표석은 종전의 일반적인
詩碑(시비)와는 달리 팔각형의 장대표석과 8각형의
기단으로 이루어졌는데 기단 8각의 각 면마다 송강의
대표작과 친필, 手決(수결), 세움말, 가사창작의 배경등을 담아
송강의 생애와 문학에 관한 미니박물관 역활을 하도록 만들었다.
[문화원 앞뜰]
[삼척 문화원]
[죽서루 서문]
관람을 마치고 쪽문으로 나오다가...
먼저 나온 옆지기 디카에 담겨버렸습니다. ㅎㅎㅎ
[외출의 영화촬영지를 밝이는 푯말]
영화 외출을 여기서 촬영을 했나보다.
외출을 보진 못하였지만... 문득 어떤 영화일까? 궁금해진다.
갈길이 바쁜 우린 아쉽지만 서둘려 죽서루를 떠나왔다.
[사진. 글 / 초아(인터넷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