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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께 나가 이십년을 배를 타면서 아기도 두 번 받았제.”
목포에서 비금도까지는 멀었다. 이 섬, 저 섬 들렀다 가는 통에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지루하지 않았던 건 갑판장의 맛깔 나는 얘기 덕분이었다. 뭍에 서 온 등산객을 알아 본 갑판장은 섬 자랑부터 오랜 세월 동안 배를 타며 있었던 에피소드까지 곁들여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했다. 배에서 아이를 낳은 산모가 두 명 있었고 당시 운항하던 배 이름을 아기 이름으로 지어줬다고 한다. 나중에 그 아이들이 자라 갑판장에게 인사하러 왔다고 하니 목포와 비금도 간 배편이 그만큼 오래되고 섬 주민들의 숫한 사연이 실려 있음을 실감한다.
- ▲ 곳곳이 전망대인 선왕산 암릉 줄기. 저수지의 깔끔한 코발트빛 너머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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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금도 가산선착장에서 선왕산으로 간다. 택시 기사 역시 구수한 입담으로 섬 얘기를 한보따리 푼다. 날 비(飛)에 날짐승 금(禽)자를 쓰며 비금면의 오른쪽 반도만 놓고 보면 비상하는 새의 형상이라 한다. 섬에는 금 세 개가 있는데 바로 소금의 금, 시금치의 금, 비금도의 금이다. 섬이지만 주민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고 살며 염전에 논농사에, 시금치 등 사철 내내 쉴 틈이 없다고 한다. 또 천재 바둑기사로 불리는 이세돌 9단의 고향이며 기념관도 있다. 산 이름은 아래 마을에서 보면 산의 선이 왕관처럼 삐쭉삐쭉하게 생겼다 해서 유래한단다.
산 입구엔 커다란 등산안내도와 벤치, 간이화장실이 있다. 능선을 따라 산으로 들어간다. 선왕산은 능선이 횡으로 그어진 선에 가깝다. 산행은 능선을 따라 동에서 서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출발한 지 10분 만에 벤치가 나온다. 나무 사이로 경치를 감상하기엔 아직 고도가 너무 낮다. 몇 발짝 더 오르자 첫 번째 봉우리다. 역시 벤치가 있고 삼각점이 있다. 드문드문 늘어선 나무 덕택에 주변 경치가 눈에 든다. 정작 눈을 사로잡는 건 산 아래가 아닌 산 위다. 가야 할 줄기엔 그림산이 바위로 된 거대한 사자마냥 멋들어지게 앉아 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설레는 바위산이다. 이름처럼 한 그림한다.
- ▲ 그림산 정상으로 이어진 바위 구멍.우회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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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그림산 바위덩치를 오른다. 바위 앞 갈림길엔 우회로가 있지만 계단이나 난간 같은 시설물이 잘 돼 있어 망설임 없이 바윗길을 택한다. 철계단을 올라서면서 고도감이 쭉쭉 상승한다. 오른쪽 아래에는 맑은 코발트빛의 저수지가 예쁘장하게 빛나고 멀리 시선을 가져가면 무수한 섬이 산이 되어 끝없이 늘어섰다. 동쪽엔 풍력발전기가 거대한 바람개비 모양으로 돌고 있다. 정상까지 이어진 바윗길은 눈길 닿는 곳 모두가 조망터다.
정상 바로 밑에서 길이 둘로 나눠진다. 한쪽은 좁은 굴이고 한쪽은 경치가 좋은 난간을 따른다. 굴은 배낭을 메고선 빠져나오기 힘들 정도로 좁다. 비만 테스트로 알맞은 굴이다. 뚱뚱하지 않다는 통행허가를 받아 정상에 올라서면 목포에서도 2시간이 넘게 걸리는 비금도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바위봉우리 꼭대기답게 사방으로 트여 있어 묵은 체증이 가신다. 나름 지자체에서 신경 썼음을 체감할 수 있는 성능 좋은 망원경과 정상 표지판, 벤치가 있다. 기념사진 찍기에 좋은 그림 같은 그림산 정상이다.
그림산에서 선왕산으로 이어진 길은 더 멋들어진 바위조각들이 뭍에서 온 사람들을 놀래주려고 기다린다. 바위 중간중간에는 고정로프와 계단이 친절하게 있어 거대한 바위가 많음에도 험하다는 인상은 받을 겨를이 없다. 그림산을 떠나오다 문득 서서 뒤돌아보니 정상바위가 마치 수리의 머리처럼 용맹하게 솟았다. 비상하는 새라는 섬 이름에 맞아떨어지는 그림이다.
- ▲ 선왕산 정상. 산불무인감시탑과 표지석, 망원경이 있으며 말안장처럼 긴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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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산 풍경이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지만 지루할 새가 없다. 오른쪽으로 흘러내리는 능선 언저리에 북한산 인수봉을 축소시켜 놓은 것 같은 고운 바위덩치가 등 돌리고 앉아 있다. 얼른 가서 바위봉 위에 올라서고픈 욕구가 솟구치도록 정이 가게 솟구쳤다. 두리번두리번 양쪽으로 경치를 실컷 보며 내려서면 죽치우실 안부다. 왼편 죽치마을로 이어진 하산길이 있다. 이름답게 대나무숲이다. 키 작은 산죽이 아닌 진짜 대나무숲이다.
오랜만의 그늘인 대나무숲 사이를 올라오면 나무 없는 대머리 벤치 봉우리가 나온다. 지나온 그림산 바위사자와 가야 할 선왕산 바위왕관을 모두 바라보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가야 할 선왕산 바위 줄기가 늠름하게 보이지만 멀어 보이지 않는 건 탁월한 경치를 빨리 스쳐 보내기엔 아쉽기 때문이다. 선왕산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바위절벽은 더 아찔해진다. 왼편으로 하누넘해수욕장으로 이어진 S자 도로가 보인다.
정상은 말의 안장처럼 길쭉하다. 작은 헬기장, 카메라가 회전할 때마다 소음을 내는 산불무인감시탑, 표지석, 은색으로 반짝이는 망원경이 있다. 망원경은 성능이 좋아 저 아래 마을 김씨가 논두렁에 오줌 누는 것도 보인다. 그림산에서 본 바다는 갯벌과 섬으로 둘러싸여 시원한 감은 부족했는데, 정상은 서쪽으로 치우친 탓에 서해바다가 눈앞이다. 바다만 있으면 심심하므로 기암 줄기와 둥글둥글한 섬들은 보너스다.
- ▲ 맹수가 웅크리고 앉은 것 같은 모양새의 그림산 암릉. 산행 시작 5분부터 다양한 바위가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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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100m 더 가면 삼각점이 있는 바위 봉우리다. GPS로 확인한 높이는 표지석이 있는 봉우리와 높이가 같다. 터가 좁아 정상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성싶다. 다만 바람이 덜해 간식을 먹고 쉬었다 가기는 더 낫다. 정상을 지났다 해서 풍경이 맥이 빠질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선왕산은 고삐를 늦추지 않고 산행 막판까지 밀도 높은 섬산 절경을 선사한다. 마치 비금도를 절대 잊지 말라는 듯 말이다. 조각 같은 바윗덩이와 내려설수록 가까워지는 하누넘해수욕장이 강함과 부드러움의 맛깔스런 비빔을 보여준다.
일제강점기 포대로 쓰였던 터가 몇 곳 있는데 봉우리처럼 솟은 포대에서 능선을 버리고 왼편으로 내려가면 해수욕장 방향이다. 200m대 낮은 산답게 하산까지는 1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도로에서 왼편으로 가면 방갈로가 여럿 있는 해수욕장 입구다. 농장 건물이 있으나 닫혀 있고 주변에 인가가 전혀 없어 해변의 한적함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 ▲ (왼쪽)그림 같은 경치를 보여주는 그림산 암릉 구간./그림산과 선왕산은 기암이 많지만 시설물이 잘 돼 있어 위험한 곳은 없다.(오른쪽)그림산에서 본 선왕산의 힘 있는 산줄기. 조망이 화려해 5.7km의 산길이 짧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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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조망처
그림산과 선왕산 산행은 따로 명조망처를 꼽기 힘들 정도로 곳곳이 전망대다. 암릉이 많아 널찍하게 터지는 데가 많아서 그렇다. 첫 번째 전망대(좌표 N34 44 21.9 E125 55 40.5)는 산행 시작 후 30분쯤 오르면 만난다. 너른 바위 절벽 위로 철난간과 벤치가 있어 경치가 좋다.
동쪽과 남쪽으로 트여 있다. 두 번째 전망대(N34 44 27.1 E125 55 22.2)는 그림산 정상이다. 사방으로 트인 파노라마 전망대로 압권의 경치를 자랑한다. 세 번째 조망점(N34 44 35.6 E125 54 56.7)은 육산 봉우리로 나무가 없고 벤치가 있어 사방으로 시야가 트인다. 양쪽으로 그림산과 선왕산의 바위줄기가 볼 만하다. 네 번째 조망터(N34 44 54.3 E125 54 18.5)는 당연히 선왕산 정상이다. 하누넘해수욕장으로 굽이굽이 이어가는 도로와 망망대해가 볼 만하다.
- ▲ 하누넘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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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길잡이 ]
산행 들머리는 면소재지에서 조금 떨어진 상암마을이다. 도로 한켠에 주차장과 산행 안내판이 있다. 능선을 따라 서쪽으로 가는 것이 산행의 큰 틀이다. 일자로 뻗은 능선이 워낙 뚜렷해 길을 잃기란 쉽지 않다. 바위 더미가 산적한 구름산과 선왕산이지만 곳곳에 정비가 잘 되 있어 바위산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산행할 수 있다.
선왕산 정상 이후에 능선을 계속 타고 서산저수지로 가는 코스와 하누넘해수욕장으로 내려가는 코스로 나뉜다. 하누넘해수욕장이 워낙 예쁘장해 대부분은 해수욕장으로 하산한다. 산행안내도가 있는 일제강점기 포대 터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해수욕장이다. 등산안내도 현 위치에 해수욕장으로 내려서는 갈림길로 표시되어 있다. 내려서는 길이 희미한 편이지만 해수욕장이 가까워 길을 잃을 만한 요소는 없다. 상암마을~그림산~죽치우실~선왕산~하누넘해수욕장을 잇는 산행의 GPS 실주행거리는 5.4km에 3시간 걸린다. 해수욕장에선 택시를 불러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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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비금도는 목포연안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들어간다. 50분 걸리는 쾌속선이 가장 빠르며 차량은 실을 수 없다. 07:50, 13:00, 15:30에 목포에서 출발해 도초선착장에서 내리면 된다. 비금도와 도초도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150명 이상은 선박 전세가 가능하다. 쾌속선은 남해고속(061-244-9915)에 문의한다. 요금은 1만7,600원이며 20명 이상 단체는 10%, 대학생 단체와 65세 이상은 20%, 소아(3~12세)는 50%, 중고생은 10% 할인된다. 차를 실을 수 있는 대흥페리(061-244-9915)의 배편은 2시간 20분이 걸리며 07:00, 13:00, 15:00에 운행한다.
대흥페리호는 여러 섬을 거쳐 가며 비금도 가산선착장과 도초도 화도선착장 두 곳 모두에서 내려도 된다. 섬 내에는 버스편이 있으나 운행횟수가 적어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차량을 실을 경우 승용차 기준 3만 원이다. 단체의 경우 섬 내의 미니버스를 전세 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하누넘해수욕장에선 내촌돌담마을의 김동철 개인택시(018-695-1333)를 이용하면 선왕산의 유래와 하트해변의 뷰포인트 안내를 해준다. 해수욕장에서 선왕산 입구까지 1만5,000원이다. 섬에는 세명택시(275-1781), 금천택시(275-5166), 도초택시(275-5454), 도초개인택시(275-825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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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식(지역번호 061)
깔끔한 숙소는 비금면 원평해수욕장 부근에 몇 곳 있다. 시설에 따라 다르지만 2인 기준 5만 원이 일반적이다. 미리 예약하면 선착장 도착 시 픽업이 가능한 곳도 있다. 바닷가민박(261-0001), 하얀갯마을(261-2255), 오란다민박(275-9915), 하와이민박(275-8179), 엔젤펜션(010-7336-5004) 등이다. 숙소에 가스시설이 설비되어 있어 직접 음식을 해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도초도 화도선착장 앞에 식당과 모텔이 여럿 있다. 보광식당(275-2136), 환영식당(275-2364), 창성장식당(275-2014) 등이다.
볼거리 하누넘해수욕장
하트모양의 해변이라 해서 하트해변이라고도 불린다. 주민의 말에 따르면 ‘하누넘’은 북서쪽에서 하늬바람이 넘어오는 곳이란 뜻이다. 비금면 내월리에 있으며, 길이 1km, 폭 50m(간조 시)에 이른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 내에 있으며 해변에선 하트모양인지 알 수 없으나 해변에서 내촌돌담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하트처럼 보인다. SBS 드라마 ‘봄의 왈츠’의 촬영지이며 하누넘의 낙조는 천연기념물인 칠발도와 어우러져 장관으로 소문났다
글 신준범 기자 | 사진 김영선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