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가 즐겨 했던 ‘매화음’
술을 공부하다 보면 한동안 호기심에 빠져 물불을 못가릴 때가 있기 마련이다. 주방문(酒方文) 곧, 술 빚는 법을 어느 정도 알게 되면 눈에 띄는 모든 것이 술 재료로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인데, 필자의 경우 그 시기는 ‘꽃으로 빚는 술’에 눈을 뜨게 되었을 때가 아닌가 싶다. 더욱이 옛 사람들의 풍류와 관련된 글을 대하고 나면 그 충동은 배가된다. 풍류를 말할 때 단원 김홍도를 빼놓을 수 없다. 김홍도가 정조(正祖)의 초상을 다시 그리고 그 상으로 충청도 연풍 현감에 제수되었는데, 중인 신분으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직책이었으나, 그의 호방한 성격이 행정을 돌보는 관직에는 맞지 않았던지 3년만에 파직되었다. 이에 같은 시기의 화가였던 조희룡(1797~?)은 자신의 [호산외사]에서 김홍도의 낙천적인 성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집이 가난하여 더러는 끼니를 잇지 못하였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매화 한 그루를 파는데, 아주 기이한 것이었다. 돈이 없어 그것을 살 수 없었는데, 때마침 돈 3천을 보내주는 이가 있었다. 그림을 요구하는 돈이었다. 이에 그 중에서 2천을 떼어 매화를 사고, 8백으로 술 두어말을 사다가 동인들을 모아 매화음(梅花飮)을 마련하고, 나머지 2백으로 쌀과 땔나무를 사니 하루의 계책도 못되었다.”
김홍도가 기이한 매화를 사고 싶었던 것은 그림의 소재로 쓰는 한편으로, 동료들과 매화음(梅花飮)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가진 돈 대부분을 매화를 사고 나머지는 좋은 벗들과 함께 마시기 위해 술을 샀으니, 그가 얼마나 풍류를 즐길 줄 아는 한량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꽃향기를 술에 넣는 법, 매화주 만들기
돌이켜보면 ‘꽃술’을 빚는답시고, 시간만 나면 들로 산으로 발길을 재촉하고, 저녁 때 돌아와 채취해 온 꽃을 다듬고 씻느라 날이 새는 줄 몰랐던 날이 2~3년 계속되었다. 매화주도 그 중 한 가지였다. 어렵사리 매화를 구하고 나면 옛 사람들이 즐겼던 매화주의 향취를 감상해보자는 의미에서 매화주를 기록하고 있는 유일한 문헌을 보았는데, 바로 조선시대 중기의 서유구(徐有榘, 1764~1798)가 쓴 [임원십육지(林源十六志)] “정조지(鼎俎志)” 편에 수록된 ‘매화주 방문(梅花酒 方文)’이었다. [임원십육지]에 수록된 매화주 방문은 ‘화향입주법(花香入酒法)’으로, 술에 꽃향기를 불어 넣는 방법이란 뜻이다.
먼저, 멥쌀 5되를 백세(百洗)하여 물에 불렸다가, 고쳐 씻어서 시루에 안쳐서 고두밥을 쪄낸 다음, 차게 식기를 기다렸다가, 준비해 둔 누룩 5되와 물 1말을 섞어 술밑을 빚는다. 술밑을 술독에 안치고, 상법(常法)대로 하여 5일간 발효시켜 밑술을 얻는다. 이어, 술이 고이기 시작하면, 찹쌀 5되를 위의 방법대로 하여 고두밥을 짓고 돗자리나 삼베보자기 위에 고루 풀어 헤쳐서 차게 식힌 뒤, 밑술에 물 1말과 함께 섞는다. 밑술과 고두밥이 고루 섞이도록 버무려서 술독에 담아 안친 다음, 재차 2일간 발효시키면 술이 괴어오르기 시작한다. 3일 정도 지나면 밥알이 동동 떠올라 있게 되는데, 이때 구들에 말려서 준비해 둔 매화 8냥을 명주 주머니에 담아서 술독 안에 손가락 한마디만큼 떨어지게 매달아 놓는다.
이와 같은 방법에서 보듯 매화주는 별도로 빚어둔 술에 뜻풀이 그대로 꽃향기(花香)를 술에 넣는 법(入酒法)임을 알 수 있다. 매화꽃주머니를 술독에 매달아 둔 지 이틀 밤이 지난 뒤에 매화주머니를 거두고보니 술에서 매화향기가 그윽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체험하게 된 매화주 감상(感賞)은, 기대와는 달리 다소 실망스러웠다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느낌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긴 하지만, 향기는 좋았으되 술맛은 다소 칼칼하고 거친 맛이 강한 데다, 술맛이 매화향기와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었다. 또한 며칠이 지나자 매화향기는 사라지고 독한 술맛에 그 향취마저 반감되고 말았다. 하지만 술 좋아하는 지인(知人) 몇을 불러 술자리를 갖게 되었는데, 가히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모두들 ‘꽃향기가 너무나 좋다’ ‘여태 이런 술향기는 경험해 본 적이 없다.’면서, 술 빚는 법을 묻곤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