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을 만들어 술을 빚는다
지금이야 술 빚는다 하면 너나 없이 쌀을 쪄서 만든 고두밥을 이용하여 술 빚는 것을 능사로 여기지만, 조선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바로 “술제떡”이라 하여 ‘백설기’를 비롯하여 떡을 만들어 술을 빚었다. 술제떡으로는 ‘구멍떡(공병)’, ‘인절미(인절병)’, ‘물송편(수송편)’, ‘범벅(니, 담)’, ‘개떡’ 등이 주를 이루었다.
조선시대 후기 순조~철종 때, 시와 해학에 뛰어나 주변의 칭송이 자자했던 정지윤(鄭芝潤, 1808년~1858년)이란 선비가 있었는데 그는 특히 술을 즐겨 마시고 슬픈 일, 즐거운 일 이해득실의 전부를 시로 잘 표현하였다고 전한다. 자유분방한 성격 탓에 궁색한 생활을 면하지 못하던 그는 술을 너무 좋아했지만 주막집에 외상값이 쌓여 있어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 어느 날 그가 주막집에 들어서 또 한번 외상 술을 청하자 화가난 주모는 거절했다. 허탈해하며 마당을 보니 구석 우리에서 돼지 한 마리가 튀어나와 멍석 위의 백설기를 먹고 있었다. 그가 그 광경을 보고 있는데, 주모가 이를 보고 그에게 돼지를 쫓지도 않고 물끄러미 보고만 있냐며 역정을 냈다. 그랬더니 그는 “나는 돼지도 맞돈 내고 먹는 줄 알았지 외상으로 먹는 줄 몰랐다.”라고 응수했고, 이에 주모는 할말을 잃어 술상을 내왔다고 한다.
정지윤이라는 선비의 해학과 위트에 관한 이야기지만, 전통주의 관점에서 우리가 이 이야기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돼지가 먹은 설기떡이 술을 빚기 위해 식히고 있는 떡, 곧 ‘술제떡’이라는 것, 그렇다면 당시만 해도 고두밥이 아니라 떡을 만들어 술을 빚는 것이 희귀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일반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주막에서 파는 술이니만큼 일반 가정에서 상비해두고 부모봉양이나 손님 접대 목적의 술이 아님에도 백설기와 같은 술제떡을 만들어 술을 빚었다는 것은 술제떡이 가장 일반화된 전통 양조법의 한 가지였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떡을 만들어 술을 빚는다
전통적으로 술빚기에 이용되어 온 술제떡은 ‘백설기’뿐만 아니라 삶는 떡인 ‘구멍떡’이나 ‘물송편’, 찌는 떡인 ‘개떡’, 설익히는 ‘범벅’, 치는 떡인 ‘인절미’ 등 여섯 가지 방법의 다양한 떡이 있어왔고, 그 역사는 매우 오래된 것으로 전한다. 고려시대 주막에서 빚어 팔았다고 하는 ‘방문주’나 ‘유하주’, ‘녹파주’, ‘도화주’, ‘두견주’, ‘백하주’ 등이 소위 ‘반생반숙’법의 범벅으로 빚는 술이고, ‘이화주’는 구멍떡으로 빚는 술이다. 또 ‘춘주’나 ‘죽엽주’ 등은 백설기로 빚는 술이었다. 그리고 이들 술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대중주였다.
이와 같은 사실은 조선시대 음식과 관련한 여러 문헌에서도 보다 쉽고 다양하게 목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술과 관련하여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알려져 있는 [산가요록]의 ‘하숭사절주’와 ‘구두주’를 비롯하여 [수운잡방]의 ‘백화주’, [임원십육지]의 ‘급수청방’, [양주방]의 ‘댓잎술’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 [음식디미방]의 ‘하향주’나 ‘감향주’, [양주방]의 ‘점주’, [주방문]의 ‘이화주’, [산가요록]의 ‘과동감백주’ 등이 구멍떡으로 빚는 술이다. 이 밖에 [시의전서]의 ‘백일주’와 [임원십육지]의 ‘동정춘’ 등이 개떡으로 빚는 술이다. 특히 조선시대의 주품들은 일반 가정에서 볼 수 있는 대중주가 아닌, 반가나 부유층의 반주나 제주, 손님 접대를 위한 상비주로 자리매김되었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1천여 가지의 양조를 통해서 경험한 바로는 개떡으로 빚는 [임원십육지]의 ‘동정춘’이나 구멍떡으로 빚는 [음식디미방]의 ‘동양주’와 ‘하향주’ 등은 그 향기가 매우 뛰어나며, 떡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사용하여 이들 술의 향기를 능가하는 술을 만드는 것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