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약재와는 상반되는 순한 맛
도소주는 과연 어떤 술일까 궁금하던 차에 2004년 KBS와 함께 설특집 “설날 이야기”의 주제로 ‘도소주’의 재현과정과 시음 풍속을 방송키로 한 바 있었다. 도소주의 주재(主材)가 되는 순곡청주를 먼저 빚어놓고, 그 술이 익기를 기다려, 부재료인 오두거피를 비롯하여 대황, 거목, 길경, 호장근 등 10가지 약재를 베주머니에 넣고 자정에 동네 우물에 매달아 두었다가, 이튿날 새벽 4시경(平明)에 약재주머니를 건져 올리고, 빚어 둔 술에 넣어 잠깐 끓여내니 도소주가 완성되었다. 도소주가 맥이 끊긴 지 실로 몇 십 년 만에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제작진은 물론 동참했던 제자들까지 도소주 제조과정을 지켜보았던 만큼 호기심에서라도 반응이 좋으리란 기대를 가졌으나, 어느 누구도 그 맛을 음미하려 들지 않았다. 도소주에 들어간 약재 중에 사약에 사용되는 독성이 강한 약재들이 두 가지나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설명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필자가 먼저 시음을 해 보기로 하였는데, 아무런 탈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모두가 달려들어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바닥을 보았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재미있기만 하다. 실제로 도소주는 술의 향기가 너무나 좋고, 그 맛이 매우 부드러우며, 어린 아이가 마시기에도 거슬림이 없을 정도로 순하다. 때문에 집안 어른이 주전자를 들고 아이들에게 술 한잔을 따라주며 “일년 내내 건강해라” “무병하고 공부 잘해라”시며, 덕담을 나눠주시고는 가장 나중에 도소주를 마시는데, 아이들도 “할아버지 할머니 건강하세요”하고 인사를 드린다.
도소음 풍속에 담겨있는 여러 가지 의미
도소음 풍속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로, 도소주의 제조과정에 들어가는 약재는 거의가 기운을 돋궈주는 자양강장제 또는 각기병, 피부병, 혈관계 질환을 다스리는 약재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오두와 대황을 제외한 여러 가지 약재 중 길경과 백출을 제외하고는 팥 등 거의가 붉은 색을 띤다는 사실이다. 붉은 색 약재의 선택은 바로 벽사풍속(辟邪風俗)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로, 오두거피, 대황, 거목(去目)에 대한 약재의 약성이나 형태의 파악이 안된 상태여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를 제외한 거피오두, 대황의 사용은 아주 흥미롭다. 오두나 대황은 다 같이 아주 독성이 강하여 전문가가 아니면 처방할 수 없는 약재들이라는 점에서, 전염병과 같은 무서운 질병에 대하여 이독치독(以毒治毒)의 효과를 얻고자 했다는 것으로 생각된다. 도소주는 대체로 길경, 육계, 방풍, 산초, 백출 등이 그 재료로 이용되며, 중국 풍속의 전래로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상류층에서 빚어 마시면서 일반에 퍼졌고, 고려시대 이후 매우 일반화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셋째, 약재를 설날 회일(晦日, 그믐)에 우물에 담근다고 하였는데, 우물을 온 마을사람들이 다 같이 사용하는 것으로, 약재를 우물에 담가두어 온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나눠 마심으로써, 약재의 성분이 우물물에 침출되어 그 약성으로 인해 온 마을에 질병이 없기를 바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우물은 동적(動的)으로 독에 길어 둔 정적(靜的)인 물에 반하여 양(陽)으로 비유되는 만큼, 양기로 받아들임으로써 사악한 기운인 음(陰)을 물리치고자 하였던 것이다. 또한 음력 섣달 회일은 저무는 해의 마지막 달 마지막 날로서 음일(陰日)을 가리키는데 비해, 정월 초일의 평명(平明)은 솟아 오르는 해(陽年)의 동이 트는 시간, 곧 양(陽)의 시간에 우물에 담가 둔 약재를 꺼냄으로써, 양의 기운을 얻고자 했던 것이다.
넷째, 도소주는 집안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부터 마시는 습속을 나타내고 있는데, 나이가 어린 아이일수록 질병이나 전염병에 약하기 때문에 ‘나이 많은 어른들의 배려’에서 비롯된 풍속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기회를 통해 어른들 앞에서 술 마시는 법과 예절을 가르치고자 했음을 엿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도소음(屠蘇飮)은 전염병과 같은 질병에 대한 두려움 못지않게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같은 시간에 그것도 나이가 어린 아이부터 마시는 것이 풍속이었고, 궁중에서는 왕이 신하들에게 하사하는 술로 한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공음풍속이 있었으므로, 자연히 ‘술 마시는데 따르는 예절’을 가르치고자 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주로 인한 사회적 병폐가 수위를 넘어서고 있고, 음주연령층이 초중등학생까지 확대되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는 시점에서, 부모나 어른들 앞에서 술을 배우게 하려는 조상들의 세심한 배려가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여러 의미와 상징이 담긴 도소음의 풍속을 민간에서 찾아보긴 어렵게 되었다. 이번 명절에는 온 가족이 모여 가족 건강 기원은 물론, 아이들 앞에서 술 마시는 법과 예절을 보여주며 우리 전통의 기운을 살려보는 것을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