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 술 이야기

송순주

문성식 2012. 3. 14. 06:13

송순주

송순주는 그 어떤 전통주보다 준비과정이 매우 까다롭고 어려운 술로 알려져 왔으며, 동시에 신비한 맛과 맑은 향기, 특히
한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독특한 술 빛깔로 애주가들로부터 가장 선호받는 가양주로 뿌리를 내렸었다.

 

 

맛과 향기뿐 아니라 약효도 뛰어난 소나무

 

30년 가까이 전통주를 연구하고 가양주의 대중화운동을 전개해오면서 입버릇처럼 주문하는 것이 “적게 마실 수 있는 술을 빚도록 노력하라”는 말이다. 술이 기호음료인 것은 분명하지만, 음주가 지나쳐서 반주(飯酒) 양을 넘어서게 되면 반드시 건강을 망치고 후회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어른들의 반주로 가장 적합하면서 가장 한국적인 정취를 간직한 술을 꼽으라면, 단연코 나는 송순주(松荀酒)를 추천한다. 또한 송순주는 가장 세계적인 술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는, 그만큼 가능성이 무궁한 술이라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이는 바로 우리나라 전통의 술빚기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부재료가, 바로 소나무라는 사실에서다. 우선, 소나무는 우리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이면서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나무이며, 잎과 순, 꽃, 줄기, 가지, 열매, 수액, 뿌리 등 어느 부위를 막론하고 향기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성인병에 대한 치료와 예방에 따른 약효도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른 봄에 새로 자라나는 소나무의 새순을 이용한 송순주는 주독해소(酒毒解消)에 뛰어난 효과를 나타내며, 위장병과 풍치, 신경 관계 질환의 치료와 예방, 동맥경화 예방, 수족마비 등 풍증(風症)과 마비(痲痹) 증상을 다스리는 효과를 나타낸다. 때문에 소나무를 부재료로 한 여러 가지 약주류 가운데 으뜸으로, 또 무엇보다 맛과 향기가 뛰어나다는데 송순주의 가치가 있다.

 

 

송순의 선택에 술의 품질이 달려있어, 혼양주법은 세계적인 양조기술

 

송순주에 대한 기록은 [치생요람], [산림경제], [규합총서], [임원십육지], [양주방], [술 빚는 법], [시의전서] 등 여러 문헌에 다양한 방법이 수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들 문헌에 의한 술빚기를 보면, 고두밥과 누룩에 송순을 넣는 일반 발효주법(醱酵酒法)이 있고, 곡주를 증류하여 소주를 빚은 후 다시 곡주를 빚는 과정에서 송순과 소주를 넣어 발효시키는 혼양주법(混釀酒法)의 송순주가 있는데, 혼양주법이 선호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혼양주라야 저장성이 높고 송순주 고유의 맛과 향기를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혼양주법의 송순주는 유럽의 포트와인이나 일본의 합성주법 보다 앞서 개발된 것으로 가히 세계적인 양조기술이라 할만하다.

 

위의 두 가지 방법의 송순주는 조선시대 명문가의 가양주로 전승되고 있어, 송순주가 반가의 가양주로, 특히 집안 어른과 노인들의 반주로 자리잡았음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먼저, 대전지방에 전승되고 있는 은진 송씨 가문의 송순주는 발효주법으로, 충남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예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 송순주는 조선조 인조 때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조정에 나아간 뒤, 특히 효종 때 송시열과 함께 서인(西人)의 대표적인 인물로 국정을 주도했던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1606~1672) 가문의 술이다. 지금은 은진 송씨 20대손 송봉기(73세) 씨의 처 윤자덕(72세) 씨에 의해 예의 맥을 잇고 있는데, 그 비법이 가전 기록인 한글필사본 [우음재방 주식시의]에 수록되어 있다.

 

술 빚는 법을 보면, 중복 무렵에 40일간 띄운 백곡을 가루내고, 멥쌀로 지은 백설기와 물을 섞어 된 반죽을 만들어 밑술을 안치는데, 15~20일간 발효시킨다. 이어 찹쌀을 깨끗이 씻어 불린 뒤, 고두밥을 짓고 이내 차게 식혀 밑술과 혼합하고 물을 되직하게 부어 술독에 안치는데, 이때 봄에 채취하여 준배해 두었던 송순을 술독 밑에 한 켜 깔고, 그 위에 술밑을 안친다. 술이 익기까지는 한 달이 소요되는데, 송순주는 엷은 보리차와 같은 밝은 담황색으로 진한 송순 향기와 함께 감칠맛이 뛰어나 독한 줄 모르고 자꾸 마시게 되어 대취하기 일쑤다.

 

송순을 채취하여 찌는 모습. 송순은 이른 봄에 새로 자란 어린 순을 채취하는데, 길이가 15센티 이상인 것으로 모엽(母葉)을 제거하고, 수증기로 쪄서 수분을 제거한 이후에 사용하는 것이 비결이다.

 

 

한편, 임진란 당시 제봉 고경명(高敬命: 1533~92), 증봉 조헌(1544~1592) 등과 금산전투에서 순사(殉死)한 병조정랑 김택(金澤)이란 인물의 가문비주로 송순주가 전북 무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는데, 생전의 김택이 평소 위장병과 신경통으로 고통을 받고 있던 중, 어느 날 비구승 한 분이 찾아 와 그의 부인에게 비방(秘方)을 일러주고 갔다 한다. 이에 부인이 그의 처방대로 하여 병을 고치게 되었는데, 김택의 사후 그 비방인 송순주(松荀酒)는 경주김씨 가문의 전통이 되어 가양주로 뿌리를 이어오게 된 것이다. 현재는 김제에 사는 경주 김씨 가문의 며느리 김복순 씨에 의해 예의 맥을 계승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규합총서], [임원십육지], [동국세시기], [시의전서], [술 빚는 법], [술방문], [양주방], [치생요람] 등 여러 문헌에도 소개되고 있다.

 

술 빚는 첫 일로 송순을 준비하는데 4월 하순부터 5월 중순경 소나무 곁가지에 새로 자란 송순을 채취하여 시루에 넣고 찐 뒤, 그늘에서 하루 정도 말려서 사용한다. 송순 준비에 이어 소주를 만드는데, 먼저 멥쌀을 깨끗하게 씻어 불렸다가 고두밥 쪄서 차게 식히고 누룩(황곡)과 물을 섞어 빚은 술밑을 술독에 담아 안쳐서 6~7일간 발효시킨 다음, 이를 소줏고리로 증류하여 알코올 함량 39%의 소주를 얻는다. 이어 본술인 송순주 빚기에 들어가는데, 멥쌀을 물에 불렸다가 건져 빻은 뒤, 백설기를 만들고 식혀서 백곡과 적당량의 물을 섞어 술독에 안친 뒤 5~6일 발효시켜 밑술을 얻는다. 덧술은 밑술의 4배 되는 양의 찹쌀 또는 멥쌀을 깨끗이 씻어 하룻밤 물에 불렸다가 고두밥을 쪄서 식힌 후, 누룩(황곡)가루와 쪄서 말려 두었던 송순을 밑술과 함께 버무려 술독에 안친 다음 밀봉한다. 발효에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 주기 위해 땅속 50cm 깊이로 술독을 반쯤 묻는다. 12~13일 후 발효가 끝나면, 미리 준비해 둔 소주 20ℓ를 붓고 용수를 박은 뒤, 다시 밀봉하여 80여일 숙성시켜 채주하는데, 이와 같은 송순주는 흡사 위스키와 같은 술빛깔과 은근한 솔향기를 자랑, 애주가라면 누구나 매료되고 만다. 앞서 대전지방의 송순주가 50일 정도의 발효기간을 거쳐 이루어지는 고급 가향주라고 한다면, 김제지방의 송순주는 100일이 넘는 양조기간을 거치는 장기 발효주이다. 명가(名家)의 가양주가 명주(銘酒)라는 설이 생각나는 지점이다.

 

이러한 송순주는 무엇보다 송순의 선택에 술의 품질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재료의 선택에 유의해야 한다. 송순은 이른 봄에 새로 자란 어린 순을 채취하는데, 길이가 15센티 이상인 것으로 모엽(母葉)을 제거하고, 수증기로 쪄서 수분을 제거한 이후에 사용하는 것이 비결이다. 이와 같이 준비한 송순이라야 술맛이 쓰지 않고 향이 좋으며, 이물질과 잡맛이 없는 맑고 깨끗한 송순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독특한 술 빛깔로 가장 선호받는 가양주

 

송순주는 그 어떤 전통주보다 준비과정이 매우 까다롭고 어려운 술로 알려져 왔으며, 동시에 신비한 맛과 맑은 향기, 특히 한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독특한 술 빛깔로 애주가들로부터 가장 선호받는 가양주로 뿌리를 내렸었다.

 

하지만 이러한 송순주는 일반 여염집이나 민가에서는 쉽게 빚어 마실 수 있는 술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쌀을 이용하여 익힌 술을 증류하여 소주를 만들고, 다시 2차례에 걸쳐 술을 빚으려면 그만큼 쌀의 소비가 많고, 일손이 많이 들게 되며, 술이 익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요구되거니와 송순을 구비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송순은 15일 사이에 1년동안 자랄 수 있는 크기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때문에 그 채취시기를 맞추기가 어렵다.

 

경험한 바로는 두 사람이 하룻동안 채취할 수 있는 양이 그리 많지 않은 데다, 모엽을 제거하는데 요구되는 시간과 고충이 여간이 아니다. 또한 쪄서 건조시키게 되면 허망하다 싶을 정도로 그 양이 20% 정도로 줄기 때문에 1년동안 사용할 송순을 구비하는 일은 적잖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자연히 귀한 술이 될 수 밖에 없다. 송순주를 오랫동안 반주로 마실 경우, 혈관이 강화되고 혈액순환이 촉진되어 손발저림과 마비증, 신경통 등 노인성 질환에 두루 효과가 좋다고 알려져 왔으며, 특히 위장병과 뇌졸중, 천식, 강장제로도 탁월한 효과를 나타낸다고 한다. 이는 송순에 함유되어 있는 정유성분과 비타민A, C, 탄닌, 플라보노이드, 항균성 물질들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발효가 끝나가는 송순주.

용수를 박아 채주 중인 송순주의 빛깔.

 

 

이른 봄 송순을 채취하기 시작하여 술을 빚고, 그 술이 익기를 기다리다 보면 어느덧 뜨거운 여름을 맞게 되는데,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여름 손님’을 맞으시던 할아버지. 매해 여름이면, 뒤란의 초가로 이은 우상각(友想閣)에 올라 세모시로 지은 새하얀 옷을 떨쳐입고, 한 손에 합죽선을 펴 들고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와 손님 앞에 송순주와 파강회, 김부각을 차린 소반을 내려놓고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앉아 술을 따르시는 어머니. 어머니의 손놀림을 따라 하얀 백자잔에 푸르스름한 빛깔의 송순주가 드리워짐과 동시에 청량한 술향기가 퍼진다. 그처럼 황홀한 감상에 빠졌던 기억은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새롭기만 하거니와, 아직까지 그처럼 멋있는 정취의 술자리를 경험해 본적이 없다.

 

갖은 정성을 들이고도 부족해 푸른 봄의 기운과 색깔을 입히고, 더더욱 오랜 기다림으로 익힌 술향기, 그리고 우리의 넉넉했던 인정과 풍류를 다 아우르는 옛 선비들의 술자리와 반주의 중심에 항시 송순주가 있었다. 때문에 가장 한국적인 정취를 간직한 술이자, 세계적인 술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는, 무궁한 가능성의 술이 송순주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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