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임진란 당시 제봉 고경명(高敬命: 1533~92), 증봉 조헌(1544~1592) 등과 금산전투에서 순사(殉死)한 병조정랑 김택(金澤)이란 인물의 가문비주로 송순주가 전북 무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는데, 생전의 김택이 평소 위장병과 신경통으로 고통을 받고 있던 중, 어느 날 비구승 한 분이 찾아 와 그의 부인에게 비방(秘方)을 일러주고 갔다 한다. 이에 부인이 그의 처방대로 하여 병을 고치게 되었는데, 김택의 사후 그 비방인 송순주(松荀酒)는 경주김씨 가문의 전통이 되어 가양주로 뿌리를 이어오게 된 것이다. 현재는 김제에 사는 경주 김씨 가문의 며느리 김복순 씨에 의해 예의 맥을 계승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규합총서], [임원십육지], [동국세시기], [시의전서], [술 빚는 법], [술방문], [양주방], [치생요람] 등 여러 문헌에도 소개되고 있다.
술 빚는 첫 일로 송순을 준비하는데 4월 하순부터 5월 중순경 소나무 곁가지에 새로 자란 송순을 채취하여 시루에 넣고 찐 뒤, 그늘에서 하루 정도 말려서 사용한다. 송순 준비에 이어 소주를 만드는데, 먼저 멥쌀을 깨끗하게 씻어 불렸다가 고두밥 쪄서 차게 식히고 누룩(황곡)과 물을 섞어 빚은 술밑을 술독에 담아 안쳐서 6~7일간 발효시킨 다음, 이를 소줏고리로 증류하여 알코올 함량 39%의 소주를 얻는다. 이어 본술인 송순주 빚기에 들어가는데, 멥쌀을 물에 불렸다가 건져 빻은 뒤, 백설기를 만들고 식혀서 백곡과 적당량의 물을 섞어 술독에 안친 뒤 5~6일 발효시켜 밑술을 얻는다. 덧술은 밑술의 4배 되는 양의 찹쌀 또는 멥쌀을 깨끗이 씻어 하룻밤 물에 불렸다가 고두밥을 쪄서 식힌 후, 누룩(황곡)가루와 쪄서 말려 두었던 송순을 밑술과 함께 버무려 술독에 안친 다음 밀봉한다. 발효에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 주기 위해 땅속 50cm 깊이로 술독을 반쯤 묻는다. 12~13일 후 발효가 끝나면, 미리 준비해 둔 소주 20ℓ를 붓고 용수를 박은 뒤, 다시 밀봉하여 80여일 숙성시켜 채주하는데, 이와 같은 송순주는 흡사 위스키와 같은 술빛깔과 은근한 솔향기를 자랑, 애주가라면 누구나 매료되고 만다. 앞서 대전지방의 송순주가 50일 정도의 발효기간을 거쳐 이루어지는 고급 가향주라고 한다면, 김제지방의 송순주는 100일이 넘는 양조기간을 거치는 장기 발효주이다. 명가(名家)의 가양주가 명주(銘酒)라는 설이 생각나는 지점이다.
이러한 송순주는 무엇보다 송순의 선택에 술의 품질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재료의 선택에 유의해야 한다. 송순은 이른 봄에 새로 자란 어린 순을 채취하는데, 길이가 15센티 이상인 것으로 모엽(母葉)을 제거하고, 수증기로 쪄서 수분을 제거한 이후에 사용하는 것이 비결이다. 이와 같이 준비한 송순이라야 술맛이 쓰지 않고 향이 좋으며, 이물질과 잡맛이 없는 맑고 깨끗한 송순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독특한 술 빛깔로 가장 선호받는 가양주
송순주는 그 어떤 전통주보다 준비과정이 매우 까다롭고 어려운 술로 알려져 왔으며, 동시에 신비한 맛과 맑은 향기, 특히 한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독특한 술 빛깔로 애주가들로부터 가장 선호받는 가양주로 뿌리를 내렸었다.
하지만 이러한 송순주는 일반 여염집이나 민가에서는 쉽게 빚어 마실 수 있는 술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쌀을 이용하여 익힌 술을 증류하여 소주를 만들고, 다시 2차례에 걸쳐 술을 빚으려면 그만큼 쌀의 소비가 많고, 일손이 많이 들게 되며, 술이 익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요구되거니와 송순을 구비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송순은 15일 사이에 1년동안 자랄 수 있는 크기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때문에 그 채취시기를 맞추기가 어렵다.
경험한 바로는 두 사람이 하룻동안 채취할 수 있는 양이 그리 많지 않은 데다, 모엽을 제거하는데 요구되는 시간과 고충이 여간이 아니다. 또한 쪄서 건조시키게 되면 허망하다 싶을 정도로 그 양이 20% 정도로 줄기 때문에 1년동안 사용할 송순을 구비하는 일은 적잖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자연히 귀한 술이 될 수 밖에 없다. 송순주를 오랫동안 반주로 마실 경우, 혈관이 강화되고 혈액순환이 촉진되어 손발저림과 마비증, 신경통 등 노인성 질환에 두루 효과가 좋다고 알려져 왔으며, 특히 위장병과 뇌졸중, 천식, 강장제로도 탁월한 효과를 나타낸다고 한다. 이는 송순에 함유되어 있는 정유성분과 비타민A, C, 탄닌, 플라보노이드, 항균성 물질들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