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살아 있을 때 사람 노릇해야
오늘날 우리 사회 일각에서 드러나고 있는 비정한 일들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의 방향을 돌려서 살펴볼 수도 있어야 한다.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인 양식과 사고에
허술함은 없었는지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삶의 부피에만 헛눈을 파느라고 삶의 질을 까맣게
잊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자기 그릇이 있다.
그릇이 차면 넘치게 마련이다. 이것은 도리요 우주 질서다.
사람들은 자기 분수인 그 그릇을 모르고
함부로 과욕을 부리다가 그 과욕에 스스로 치여 넘어진다.
이런 이치는 개인이나 집단이나 예외일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또 명심할 일은,
어떤 사회현상을 그 단면만 보고 성급히 속단해서는 안 된다.
전체의 흐름 위에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좀더 시야를 넓힌다면
인류 역사의 진행 과정으로 내다볼 줄도 알아야 한다.
어떤 위정자들이건 간에 체제 유지에만 급급한 나머지
전체의 흐름을 내다볼 줄 모른다면,
그때 그때 미봉책으로 땜질만 하다가
마침내는 전체의 흐름 앞에 넘어지고 말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거짓이나 임시방편에는
더 속지 않을 만큼 많이 성숙해졌다.
제도화된 일부 신문이나 방송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극히 소수의 현실 인식이 박약하거나
낙관밖에 할 줄 모르는 그런 계층뿐이다.
사회가 어지러울 때일수록
더욱 솔직하고 정직하고 성실한 정책이
일반 국민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책상을 한번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식의
상투적인 속임수에 속을 국민은 이제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
허위에 찬 책임 있는 공직자의 이런 말도 또한
한낱 연기와 재로 사라지고 말 것이 아닌가.
어디 말 뿐이겠는가. 우리들 자신도 언젠가는
한줄기 연기와 한줌의 재로 이 땅에서 사라져갈 것이다.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가둔 자건 갇힌 자건,
다스리는 자건, 다스림을 받는 자건,
그 누구를 물을 것 없이 모두 다 사라져갈 것이다.
그러니 사람은 살아 있을 때 사람 노릇을 해야 한다.
서로 믿고 의지하고 돕고 사랑하는 일이 인간의 길 아니겠는가.
너무 비관할 것 없다. 그렇다고 자만도 금물이다.
그저 사람 노릇 잘하면 사람이 된다.(1987년)
- 법정 스님 < 텅빈 충만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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