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성경은 왜 배워야 하는가?

문성식 2011. 9. 13. 18:01

성경은 왜 배워야 하는가?

 

글/ 오철환


Ⅰ. 지식의 근본을 알려면 성경을 배워야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


본서는 주전 1000년경 이스라엘의 셋째 왕 솔로몬이 영감되어 기록한 말씀이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특수한 지혜를 받은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온 이스라엘이 두려워 섬겼다. 왕상 3:28에, “온 이스라엘이 왕의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저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고 하였다. 그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며 그 지혜를 들으려고 동서 사방에서 모여들기도 했다. 왕상 4:29~30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셨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에 모래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고 했고, 34절엔 “모든 민족 중에서 솔로몬의 지혜의 소문을 들은 천하 모든 왕 중에서 그 지혜를 들으러 왔더라”고 했다.

 

특히 스바여왕은 정신이 어수선하여 솔로몬을 다음과 같이 격찬하기까지 했다. 왕상 10:4~9에,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모든 지혜와 그 건축한 궁과……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는 층계를 보고 정신이 현황하여 왕께 고하되 내가 내 나라에서 당신의 행위와 당신의 지혜에 대하여 들은 소문이 진실하도다 내가 그 말들을 믿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와서 목도한즉 내게 말한 것은 절반도 못되니 당신의 지혜와 복이 나의 들은 소문에 지나도다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신복들이여 항상 당신의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 찌로다”고 탄복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영감된 이 지혜로운 솔로몬의 말, 아니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어 보자.

 

특히 1:7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란 말씀을 생각해 보자. 이 말씀은 구약 다른 곳에도 여러 번 쓰여져 있다. 특히 본서에 13번 있다. 그리고 이 구절은 지혜의 기본원리를 설명하는 말인 것이다. 동시에 이 말씀은 본서의 열쇠 구절이요 전 성경의 열쇠 구절이라고 할 수 있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여호와를 경외함이 없이는 지식의 근본인 하나님과 그의 계시된 성경을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부패하고 경제적으로 난관에 부딪치게된 근본적인 원인은 모든 것의 근본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고 멸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려면 반드시 여호와를 경외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 12:13은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이 본분이니라”고 하였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 한마디로 하면 이 말씀은 여호와를 떠나서는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천지 만물의 창조주시요 인류를 지으신 아버지시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모든 것의 근원이시다. 따라서 여호와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말씀은 여호와를 떠난 자는 무식한 자란 말인 것이다. 사실 그렇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이 없고는 진정한 지식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두려워 하는 자 중엔 참된 학자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오만한 자요 경솔한 자요 사욕을 채우는 자요 허영심이 강한 자이니 이런 사람 주에선 대학자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만 이 참 지식이 깃드는 것이다.

 

여기 「지식」이란 특별한 것을 말한다. 지식이라면 자연과학이 있고 철학이 있고 역사가 있고 윤리가 있으며 그밖에 각종 전문적인 학이 있다. 그러니 여기 솔로몬이 말하는 지식은 단순히 실제적 또는 상식적인 지식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말로 한다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자연과학의 근본이요 철학의 근본이요 윤리도덕의 근본이요 모든 학문의 근본이 되는 지식이란 말이다. 한마디로 하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식의 기초적인 원리란 말이다.

 

「경외」란 말도 그저 두려워하는 것만이 아니라 겸손하게 마음으로 존경하며 섬기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마치 착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마음으로 존경하며 순종하는 겸손을 말하는 것이다. 이 겸손히 있어야 참 지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과연 그렇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을 가질 때 내 도덕생활은 순결해지고 내 영혼은 명랑해지고 내 지식은 고상해지는 것이다. 그렇다! 참 학자란 흔히 말하는 만물박사격인 백과사전의 내용물이 아닌 것이다. 진리를 그대로 아는 사람, 진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 되는가를 생각해 보자. 그것은 여호와의 지식은 무궁 무진하기 때문이다. 롬 11:33에,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유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고 하셨다.

 

욥기서를 보면 욥과 그의 세 친구들이 각각 자기들의 천박 단순한 인생철학을 가지고 갑론을박(甲論乙駁) 자기들의 지식으로 대설전(大舌戰)을 전개했지만 끝이 없으니 이 시비(是非)를 바로 잡아 주기 위해 지혜의 근본이 되시는 여호와가 나타나셨다. 욥 38장 이하를 보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어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하라”고 하시면서 먼저 천문학적으로 맹렬히 힐문(詰問) 하셨다.

 

“내가 땅에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에 있었느냐 깨달아 알았거든 대답하라 그때 천사들이 찬송을 불렀는데 네가 그 사실을 아느냐 깨달아 알았거든 대답해 보라. 눈 창고,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네가 열 두 궁성을 인도하겠느냐 북두성을 이끌겠느냐 네가 하늘에 법도를 아느냐 네가 번개 소리를 내겠느냐”라고 하셨다. 그는 금시초문이라 한마디도 대답을 못했다.

 

주님은 계속 동물학적으로 날카롭게 힐문하시기를, “네가 사자나 까마귀의 식물을 예비하겠느냐 염소 새끼와 암사슴은 언제 새끼를 치는지 아느냐 강력한 들소를 마음대로 줄을 매어 이랑을 갈겠느냐” 그밖에 말, 독수리, 물소, 악어 등등으로 물었지만 그는 함구무언(緘口無言)이었다. 한참 후 욥이 겨우 입을 열기를, “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내 손으로 입을 가리울 뿐이로소이다 내가 한두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 하지도 아니 하겠고 대답치도 아니 하겠나이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금도 지체함이 없이 심문하시기를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대답하라 네가 내 심판을 피할 수 있느냐 스스로 외롭다 하려 하여 나를 불의하다고 하느냐 네가 하나님처럼 우렁차게 울리는 소리를 내겠느냐 네가 교만하거나 나는 교만한 자를 낮추어 그 처소에서 밟아서 그들을 함께 진토에 묻어 버리겠노라”고 하셨다.

 

이제 욥은 혼비백산(魂飛魄散) 회개를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전지 전능하신 주여!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웠습니다.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말 어려운 말이었습니다. 주여 나를 가르쳐 주옵소서 내가 전에는 귀로만 들었사오나 이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내가 스스로 의롭다고 똑똑한 채 한 것이 심히 부끄럽습니다. 주여! 내가 티끌과 재 가운데 앉아 회개하나이다”라고 여호와의 지혜 앞에 굴복하고 말았다.

 

우린 여기서 하나님은 모든 것에 초월하시며 우린 아~주 수준이 낮은 인생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 55:8~9에,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 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하셨다. 그리고 우린 배우면서도 언제나 부족한 줄 알아야 한다.

 

뉴~톤의 말과 같이 “사람이 일평생을 배웠다 할지라도 그 지식은 해변가에서 두 서넛의 돌을 주운 것에 불과하다. 눈앞에 열린 진리의 바다는 무한하다. 이와 같이 신자의 지욕 또한 무한한 것이다. 사람이 열 번 스무 번 새로 산다 할지라도 그 얻은 지식은 늘 부족을 느낄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에 반(反)하여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는 불신자의 대부분은 학교간판만 얻으면 다 된 줄 안다. 그 후 공부는 대개 하질 않는다. 그러나 신자는 여호와를 경외하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주 앞에 학생으로 겸손히 배우는 자인 것이다.

 

어느 소경된 부인은 나이 많도록 국문도 몰랐는데 예수를 믿은 후 성경이 배우고 싶어서 그때부터 점자(點字)를 배워 나중 놀랄만큼 성경을 정독(精讀)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참된 지식을 배우려는 욕망은 여호와를 경외하는데서 불일듯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 중에 예수 믿고 글을 배워 성경 찬송을 보는 자가 적지 않으며 전엔 세상공부에만 열중하던 사람이 은혜 받은 후로는 성경 말씀을 꿀송이처럼 알고 공부하는 자가 있는 것은 이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이는 분명히 솔로몬의 말이다. 그러나 마 12:42을 보면 예수께서 솔로몬을 지혜롭다고 시인하시면서 당신을 가리켜 “여기 솔로몬 보다 더 큰이가 있느니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주님이 바로 지혜의 근본이란 말이다. 고전 1:30을 보면,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가 되셨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지식의 근본을 아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앎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동시에 우주의 원리를 알게 되고 인생의 근본을 알게 되는 것이다.

 

어느 성도가 말하기를, “그의 십자가의 못박히신 양손 안에 전 우주가 존재한다”고 했다. 그렇다! 진리의 중심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그를 알고 그를 믿고서 비로소 모든 지식의 근본을 알게 되는 것이다. 히 11:3을 보면,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라고 하셨다. 이 말은 믿음 없이는 세계관, 인생관, 역사관, 가치관 등 모든 근본을 모른다는 것이다. 믿음을 가져야 세계관, 인생관, 역사관, 가치관이 바로 확립이 된다는 것이다. 그럼 이 믿음이 무엇인가? 이것이 바로 지식의 근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뿌리 없는 나무에 물을 주면 썩는 것 같이 믿음 없는 지식은 영혼을 썩이는 것이고 기초 없는 집이 무너지는 것 같이 예수 없는 지식은 멸망인 것이다. 그러므로 벧후 3:18은 말하기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고 하셨다. 그리고 지혜의 근본 예수님을 아는 비결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성경을 자세히 살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