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그리고 성

불륜도 운명이다 ???

문성식 2011. 8. 14. 08:50

불륜도 운명이다 ???

왜 한 사람만 선택해야 하나요?

완벽한 관계는 없다. 실제 불륜을 저지르지 않아도, 결혼한 남녀는 자신이나 배우자가 불륜을 저지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닫아놓지 않는다. 그 덕분에 불륜이나 그에 가까운 일은 시시각각 발생한다. 그래서, “나에게는 그런 일이 없을 거야”라고 오만을 떠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파트너 관계가 지속될수록 관능적 매력이 줄어드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물론,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첫 관계가 가장 좋고, 시간이 갈수록 관능적 매력이 떨어지는 식은 아니다. 상대방에 대한 성적 욕망은 첫 관계에서부터 1년 동안 지속적으로 상승한다. 이후 서서히 하강 곡선을 그리다가 짧으면 6년, 길어봐야 9년이 지나면 나이에 상관없이 고정된 파트너에게 느끼는 성적 매력도는 최저점에 도달한다. 이때는 정말 손도 잡기가 싫다.

이 시기에 부부관계가 소원해지는 데에는 사회적인 환경도 한몫 한다. 결혼 시기를 대입해보면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막 입학하고, 둘째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할 무렵이다. 육아만으로도 지쳐 있는데, 자신을 이렇게 만든 상대에게 무슨 성적 매력을 느끼겠는가? 더군다나 아내는 출산 이후 몸매가 많이 상했고, 남편은 ‘술배’만 한 가마니다. 어쩌다 마음이 동해서 서로를 탐하다가도, ‘내가 지금 이런 사람과 도대체 뭐 하는 것인가?’ 이런 회의가 들어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등을 돌리고 만다. 한 번 이러고 나면, 다시 한 번 안아보는 데 두 달이 걸린다.

부부 사이가 섹스 때문에 지속되는 관계는 아니지만, 그게 없으면 정말 허전~ 하다. 축 처진 몸매로 그럴 리야 없다고 혼자 결론 내리지만, 가끔씩 ‘혹시 이 남자, 나 말고 그것 하러 만나는 여자 따로 있는 것 아냐?’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길을 가다가 ‘저 여자는 몸 관리를 잘해서 잠자리에서도 잘 하겠네’ 이런 생각이 드는 여자를 발견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물론, 남편의 바람기를 사전 봉쇄하기 위해 운동을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혹시 생길지도 모르는 로맨스를 위해서라면 다른 이야기가 될 테지만.


중년의 어느 부동산 중개인

어느 날 남편과 함께 이사갈 집을 찾아 분당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한적한 마을의 한적해 보이는 부동산에 들어갔다. 숱이 성성하고 새까만 머릿결에 두꺼운 안경을 끼고 있는 170센티미터 정도의 40대 남자(이런 외모를 갖고 있는 남자는 언뜻 굉장히 평범해 보이지만, 안경 너머로 ‘변태 속성’이 느껴질 때가 많다. 머리에 기름기라도 좔좔 흐르는 사람이라면 영락없다)는 손님이 들어왔는지 마는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책상머리에 앉아 뭔가 열심히 하고 있었고,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던 40대 초반 여성이 아주 쿨하게 우리를 맞았다.

그녀는 상담도 냉랭했다. “돈은 얼마나 가지고 계시죠?” “그 이하는 안 돼요.” “생각이 있으시면 집을 보러 가고, 그렇지 않으면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왠지 자존심이 상해서 “보러 가자”고 했지만, 그 집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보다 5천만 원은 비싼 집이었다. ‘까짓 마음에 들면 대출 더 받으면 되지 뭐’ 이런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단단히 고쳐먹었다.

헌데,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하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었다. 그녀는 20대 초반 아이들에게나 어울릴 만한 ‘똥꼬치마’를 입은 데다, 가슴이 푹 파인 쫄티는 굳이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가슴에 골이 있다는 사실을 어필하기에 충분했다. 앉아 있을 때는 몰랐는데, 몸매는 왜 이렇게 늘씬하고 다리며 팔이며, 목이며, 눈에 보이는 살은 왜 이리 팽팽한지… 솔직히 기가 죽고 말았다. 아니, 룸살롱에 나가는 여자도 아니고 부동산 중개업을 하면서 이렇게까지 섹시해서야 말이 되는가? 남편은 이미 넋을 빼앗긴 채 그녀 곁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고, 무리해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려는 걸 간신히 말렸다. ‘이 화상아! 그 여자는 당신에게 아무런 관심 없다고!’

섹시한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40대 초반의, 하지만 다섯 살은 어려 보이는 그 부동산 중개업자가 그런 부류에 속한다. 우리가 상상하듯, 결혼은 삼간 채 자신의 일을 하며 평생 프리섹스를 하면서 살아가지 않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녀가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그녀를 본 이 세상 거의 모든 남성들은 그녀에게 성욕을 느꼈을 게 분명하다.

남자 입장에서는 그렇다. 우연히 만난 그녀가,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녀가, 나를 쳐다보는 그녀가, 성인영화의 여자 주인공보다 훨씬 더 섹시한 데다 ‘천박’과는 거리가 멀고 열 배는 더 그윽하다면, 어찌 침이 꼴깍하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상대가 이미 섹스에 원숙한 기교를 가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나이니, 10대나 20대 초반 여성들에게서 느껴야 하는 불편한 마음도 죄책감도 없다. 이야기가 길어져서, 혹시 몇 시간 후에 불같은 섹스를 시작해도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머릿속에선 이미 그녀와 바로 이 자리, 조금 옮기더라도 이 건물 화장실,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하더라도 가장 가까운 모텔에서 질펀한 섹스를 벌이고 있다. 그녀가 말을 걸어온다. “계약하시겠어요?” 그 소리가 마치 “제 옷 좀 벗겨주실래요?” 이렇게 들린다. “예? 예. 그러지요.”

 

평생 한 사람과만 관계를 맺어야 하나요?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은 정말로 불편한 사람이다. 정말 그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게 아니라고 믿고 싶다. 정답은 “내 파트너는 나와만 자야 하고, 나는 여러 사람과 자야 한다” 이것이다. 두말할 것 없이, 대부분의 사람이 한 사람 이상과 관계를 맺어왔고, 맺고 있다. 그게 사실 특별한 사실도 아니고, 엄청난 잘못이라고 떳떳하게 꾸짖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건 정말 우연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대학 신입생 시절에 처음 사귀었던 그녀를 20년 만에 우리 회사에서 만났다. 그것도 바로 우리 부서로 들어왔다. 이건 운명의 장난임에 틀림없다. 그녀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녀와의 잠자리를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 첫경험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불륜은 나도 싫다. 다만 한 번이라도 잠자리를 같이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면 당시의 감흥이 그대로 떠오를 것 같다.

한 가지 고마운 사실은 그녀의 외모가 거의 달라진 게 없다는 점이다. 외모가 변했다면, 섹스를 갈망하는 내 마음도 사그라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뜨겁다. 같은 팀에서 보험영업을 하고 있는 우리는 적어도 하루에 두 번은 마주친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은 회식자리에서 만난다. 실적이 좋아도 마시고, 나빠도 마신다.

첫 번째 회식 자리, 고기집과 노래방을 거치고, 몇 사람 남지 않은 3차 호프집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마주보고 앉게 되었다. 나는 그녀가 지금까지 집에 가지 않은 이유를 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말을 꺼냈다. “이런 자리가 생기길 한 달 내내 기다렸어. 나는 너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어. 내 말 뜻 알겠니?” “우리는 과거의 연인일 뿐이야. 그것도,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에 만났다 헤어진 수많은 남자들 가운데 하나라고. 나는 너에게 특별한 감정이 없어.” 뒤통수만 봐도 알아볼 수 있는 여자에게 이런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아프다.

이게 병이라면 병이다. 얻고 싶은 것을 얻지 못하면 포기해야 하는데, 나는 그런 성격이 못 된다. 처음 그녀와 잠자리를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집요하게 이야기를 끌고 가고 술을 마시게 해서 모텔에 데리고 갔다. 알코올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정말 오랜만에 가슴이 터질 듯한 섹스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녀는 회사를 그만두었고,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도대체 이게 무엇인가? 20년 만에 만나서 한 번 자고 헤어지다니. 헌데, 주변에 이런 사례들은 너무나 많다. 오히려 한 번에 끊어버리는 그녀의 결단력이 훌륭하다. 이 남자에게 그녀는 첫사랑, 첫경험의 의미일지 몰라도, 그녀에게는 그저 ‘나와 섹스를 하고 싶어하는 불쌍한 남자’ 정도로 보였을 것이다. 별 의미도 없는 남자로부터 계속 이런 요구를 받을 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떠나버린 것이다.

혹시 이 남자가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그녀를 찾아다니고, 그래서 만나게 된다면 정말 끝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런 식의 아주 참혹한 끝 말이다. “너, 왜 이렇게 나를 찾아다니니?” “왜 나를 자꾸 떠나는지 그게 궁금해서 찾아왔어.” “정말 그게 궁금해서 찾아온 거니? 넌 정말 여전히 한심하구나. 넌 내가 만난 수많은 별 볼일 없는 남자 중 하나일 뿐이야. 그중에서도 네가 제일 후져.” 이런 표현 말이다. 남자의 로맨스는 불륜에서조차 왜 이렇게 객관성을 획득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불륜도 운명일까?

나이가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내 말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나는 이미 결혼을 한 몸이라거나,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라고 말하는 아내의 입을 그냥 놔둬서는 안 되는데, 어쩐지 ‘그래, 어쩔 수 없지. 그 사람과 잘 살아’ 이렇게 예의를 차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이는 참 많은 것을 빼앗아간다. 사랑도, 싸움도, 밤중에 체조하는 것도 못하게 만든다. 나이가 들면, 의심도 많아져서 가끔 사랑이 찾아와도 못 알아보는 경우가 많다. 이게 가장 불행한 일이다.

그래서 부동산 매매처럼 사랑도 타이밍이라고 한다. 집값이 오르기 전에 팔고, 한참 오를 때 사는 일을 반복하는 게 우리네 보통사람들의 삶이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맞는 사람, 자신에게 맞는 사랑은 늘 여건이 좋지 않을 때 찾아온다. 누구도 모르는 이 사랑의 타이밍 때문에 평생 억울해하면서 사는 사람들도 많다. 사람살이라는 게, 불륜이라고 말하기에는 억울한 괜찮은 만남들이 있다. 규범에 둘러싸인 세상에 살면서, 룰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을 이해한다는 게 한편으로 죄악이 될 수 있는 줄은 알지만, 누군가 정말 좋아져서 어쩔 수 없이 시작한 만남을, 아내나 남편이 알아도 끊을 수 없는 만남을, 주변 사람 누가 욕을 한들,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정신적으로만 사랑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그를 생각할 때마다 심장이 뛰고 옷을 벗고 싶고, 그의 옷도 벗기고 싶고, 밤새도록 하고 싶은 걸 어떻게 하나? 밖에서 차를 마시는 것도 싫고, 드라이브도 별로고, 영화를 보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그냥 침대 위에서 벗은 채로 함께 있고 싶다. 친구들이 나를 보고 미쳤다고 한다. 그래 미쳤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그에게 ‘어디 먼 데로 달아나서 함께 살자’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가정을 버릴 용기를 내지 못한다. 나와 잠을 자고, 나와 밥을 먹고, 나의 눈을 바라보지만, 자신의 가정을 버릴 정도로 나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좋다. 오늘 바로 이 순간 그와 함께 있다는 게 중요하다. 가장 후회되는 일은 그가 결혼하기 전에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불륜의 감정은 누구에게나 있고, 이건 거부할 덕목이 아니라 인정하고 잘 다스려야 할 감정이다. 잘만 활용하면 부부관계에서 윤활유 역할을 한다. 결혼이라는 건 결코 만만한 게 아니다. 두 사람이 50년 가까이 살면서 어찌 아슬아슬한 위기의 순간이 없겠는가?

바람을 피웠다고 바로 이혼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바람이 없다고 끝까지 함께 사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뭐든 적당히 해야 한다. 그러니 배우자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일까지 막아보겠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이건 사랑도 아니고, 그저 관계의 역류일 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불륜은 어쩌면, 부부 사이에 생긴 문제들의 역작용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랑은 억지로 되지 않는다는 만고의 진실을 인정하고, 불륜을 이용할 줄 아는 지혜로운 방법을 터득해가는 게 진짜 인생일 테다.


/ 여성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