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바람과 밝은 달
한 선비가 깊은 산 속 골짜기에
사는데, 임금이 불러 소원이
무엇이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무성한 소나무와 맑은
샘이 산중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무성한 소나무와 맑은 샘이 솟아나는 동안
그의 산중 생활은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는 말이다.
전해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 선비의 삶 자체가 청청한
소나무와 맑은 샘처럼 여겨진다.
강과 산과 바람과 달은 따로
주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세속적인 욕심을 떠난 맑고 한가로운
사람이면 누구나 그 주인이 될 수 있다.
사물을 볼 수 있는 눈이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가슴이 열린 사람이라면
어디서나 강산과 풍월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다.
"내 방을 드나드는 것은
오로지 맑은 바람 뿐이요,
나와 마주 앉아 대작하는 이는
다만 밝은 달이 있을 뿐이다."
청풍과 명월로써 벗을 삼았다니
아무나 가까이 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이런 사람은 우리가
그를 가까이하기보다는
그 나름의 삶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청량감을 준다.
무례하게 끈적거리고 추근대는
요즘 같은 세태이기에
그런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웃에게 맑은 바람과
밝은 달 구실을 하고 있다.
나는 이 산중에서 누구와 함께
자리를 같이하는가 스스로 물어본다.
사람은 나 하나만으로 충분하니까
사람과 자리를 같이할 일은 없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과 흰 구름,
시냇물은 산을 이루고 있는
배경이므로 자리를 같이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살갗으로
느끼고 가슴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 범정 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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