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의 바람꽃)
대낮에 횃불을 들고 다니는 사람부처님이 코오삼비의 미음정사에 계실 때이다.
한 바라문 수행자가 있었는데 그는 지혜가 밝고 온갖
베다경전에두루 통달하여 무슨 일이나 거리낌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뽐내고 자랑하면서 상대를 찾아
다녔지만 감히 맞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대낮에 횃불을 들고 거리를 다니기도 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어째서 밝은 대낮에 횃불을 들고
다니느냐고 물으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어리석고 어두워
눈을 뜨고도 보지를 못한다. 그래서 횃불을 켜서 비추어 주는
것이다" 라고 대답 하였다.
그런 그에게 감히 대꾸하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부처님은 그 바라문 수행자가 일찌기 복을 심었기 때문에
제도 할 수 있음을 살펴 아셨다.그렇지만 그는 자만심을
가지고 명예를 구하고 목숨이 덧없음을 알지 못했다.
부처님은 한 사람의 현자(賢者)로 변신하고 어떤 가게 앞에
서서 그 바라문을 불러 물어 보았다.
"당신은 어쩨서 대낮에 횃불을 켜고 다니시오?"
바라문은 의기양양하게 대답 하였다.
"사람들이 하도 우매해서 밝음을 보지 못하고 있오.
그래서 횃불을 들어 그들의 앞을 비추어 주는 것이요"
현자가 다시 물었다.
"경전에 네가지 밝은 법이 있는데 당신은 그것을 아시오?"
바라문은 얼굴을 붉히면서 무엇을 네가지 밝은 법이라고
하는가 하고 반문했다.
현자는 말했다.
첫째는 천문지리에 밝아 사계절의 조화를 아는 것이오
둘째는 하늘의 별에 밝아 오행(五行)을 가릴줄 아는 것이며
세째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밝아 교화하는 것이요
네째는 군사 거느리는 일에 밝아 국경을 튼튼히 하여 실수가
없는 것이요..
당신은 바라문으로서 이 네가지 밝은 법을 갖추었읍니까?
바라문 수행자는 부끄러워 하면서 들었던 횃불을 떨어 뜨리고
고개를 수그렸다. 부처님은 곧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그 바라문을 위하여 게송을 읊으셨다.
조금 아는것이 있다 하여
스스로 뽐내 남을 깔본다면
장님이 촛 불을 든것과 같아
남은 비추지만 자신은 밝히지 못하네.
바라문은 이 게송을 듣고 더욱 부끄러워 하면서 부처님께
귀의 하였다. 그는 자신의 허물을 깨달았기 때문에 오래지
않아 아라한이 되었다.
법구비유경 다문품에서
주)
사람이 전지전능 할 수는 없다.
남이 모르는것을 먼저 알았다고 해서 교만을 부린다면
그는 설익은 사람이다. 요즘 우리 주변에도 밖에 나가
국내에서 듣지 못하던 소리를 좀 듣고 오면 혀 꼬부라진
소리로 떠 버리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드물지 않다.
그가 아는것 만큼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다면 시비의
여지가 없지만 그러지 못할때 그의 인격은 분열이 된다.
부처님의 생존시에 인도에는 수많은 주의주장이 있었다.
논전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여기에서 우리가 한가지
기억 해둘 일은 논전에서 패배하여 자신의 주장이 잘못
된 줄을 알았을때는 그 자리에서 상대를 스승으로
섬기면서 귀의 했다는 점이다.
오늘의 지식인들 보다도 얼마나 더 솔직하고 분명한
지적인 결단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법정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