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시대의 예언자, 김수환 추기경Ⅰ- 사랑의 신학

문성식 2011. 2. 15. 22:20

 

 

시대의 예언자, 김수환 추기경Ⅰ- 사랑의 신학
 
말 보다 행동으로 그리스도를 대변한 지도자
 
 
<사진설명>
▲ 김수환 추기경이 1985년 8월 아시아 사회 주교 연수회의 일환으로 사북탄광 현장체험에 나섰다.
▲ 김수환 추기경이 1974년 7월 긴급조치 위반혐의로 구속되었다 풀려난 지학순 당시 원주교구장 주교가 양심선언을 하는 것을 신자들과 함께 지켜보고 있다.
▲ 1987년 11월 농민회 회원들의 삭발 단식농성장을 찾은 김 추기경이 함께 기도를 드리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입에 올린 말이 ‘사랑’이다. 그러나 고백컨대, 어머니가 보여준 사랑처럼 ‘모든 것을 덮어주고, 믿고 바라고 견디어내는’ 사랑을 온전히 실천하지 못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회고록에서 자신의 무릎에 기대 영면한 어머니를 회고하며, 사랑에 대한 강한 갈망을 드러냈다. 이러한 세상 모든 이를 향한 ‘사랑의 신학’은 김 추기경 일생을 관통하는 주제였다.
 
 
모든 이를 위하여
 
김 추기경의 ‘사랑의 신학’ 뿌리는 주교품을 받은 19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5월 31일 마산 완월동 성지여중고 교정에서 열린 마산교구장 주교 서품식에서 이 젊은 주교는 자신의 사목 표어로 ‘여러분과 또한 많은 이들을 위하여’(PRO VOBIS ET PRO MULTIS)를 선택했다.
 
김 추기경은 이 문구를 훗날 서울대교구장 착좌 때도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고 해석을 조금 고쳐 그대로 사용했다. 사목표어 선택 이유에 대해 김 추기경은 이렇게 말했다.
 
“교회는 어떤 누구도 소외됨이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를 ‘사랑’으로 하나되게 하는 도구요, 이를 나타내는 표지여야 합니다. 교회 쇄신이란 바로 이러한 정신으로 이웃과 사회, 세계를 위해 봉사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김 추기경은 기회 있을 때마다 사랑을 이야기 했다. 심지어는 부처님 오신 날 축하 메시지에서도 “자비란 이웃을 자기 자신같이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가난한 이, 슬픈 이, 병고에 신음하고 인생고에 시달리는 이를 위하여 그런 분들과 고통을 나눌 줄 알며, 심지어 극악무도한 죄인까지도 가슴에 품어 주고 그의 모든 잘못을 용서하여 주는 사람, 한도 끝도 없고 절대적이요 조건 없는 사랑이 곧 자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이 자비가 참으로 오늘날 우리 모두의 마음을 밝혀주고 적셔 주기를 빕니다.”(1991년 5월)
 
하지만 김 추기경이 말한 사랑을 가능케 하는 원천은 인간의 사랑이 아니었다.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1요한 4,10)이었다.
 
“하느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목숨까지 바치시고 십자가상에 피를 흘리셨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십시오. 거기서 결론적으로 발견하는 것은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다.”(신앙대학 강좌, 1980년 3월)
 
김 추기경의 위로부터의 사랑은 ‘나’로 연결된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만큼 귀한 존재이기에 어찌 ‘나’를 사랑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김 추기경의 ‘나’ 사랑은 이기적 자애심과는 다르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이유가 나 자신이 잘난 데 있지 않고 오히려 전적으로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이유에 있기 때문이다.
 
김 추기경이 생각한 하느님은 나를 비롯한 세상 모두의 ‘나’들을 사랑하신다. 그래서 김 추기경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너’를 사랑하시고 ‘그’를 사랑하시고 ‘저’를 사랑하시는 존재다. 여기서 이웃 사랑의 당위성이 나온다.
 
 
실천하는 사랑
 
김 추기경은 늘 “하느님 사랑의 물줄기는 우리를 통해서 이웃과 세계로 번져 가야 한다”고 말했다. 말로만의 사랑이 아닌 실천하는 사랑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김 추기경은 자주 “마음으로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이지만 그 타인인 이웃이 궁핍한 곤경에 처해 있을 때에는 그를 거기서 구출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그 곤경의 원인이 근본적으로 정치나 경제 체제에 있다면 그것에 대한 변화도 동시에 수반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우리는 흔히 이웃사랑을 신자로서 닦아야 할 여러 가지 덕행 중 하나에 불과한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웃 사랑은 모든 계명의 중심입니다.”(1980년 3월 사순절 특강)
 
더 나아가 김 추기경은 사랑은 신앙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1996년 공군대학에서 강연할 때도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할 가치는 사랑입니다”라며 사랑 실천을 통해 이 사회에 맑은 물이 흐를 수 있게 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러한 사랑이 널리 퍼져 나갈 때 이 사회는 비로소 평화가 흘러 넘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추기경은 이 사랑의 열매로 평화를 말했다.
 
“평화는 사랑의 결실입니다. 사랑 없이 평화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랬던 것처럼, 평화를 위해서 우리 자신을 과감히 버리고 헌신하는 일입니다. 평화는 현세 활동에서 모든 것을 포괄하는 선입니다. 우리는 평화를 향해서, 평화를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정성과 노력을 다 기울여야 할 바로 그 시점에 서 있습니다”(1988년 11월 평화학술회의 기조강연)
 
 
공동선에의 참여
 
김 추기경에 의하면 사랑과 평화를 위한 노력은 본질적으로 공동선에의 참여를 요청한다. 세상을 올바로 만들겠다는 공동선에 대한 의지 자체가 세상에 대한 사랑을 전제로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김 추기경은 교회가 공동선을 이룩하려면 불의와의 타협을 거부해야 한다고 했다.
 
1968년 서울대교구장 취임미사에서 김 추기경은 “교회의 높은 담을 헐고 사회 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교회 쇄신과 현실 참여의 원칙을 분명히 했다.
 
또한 교회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종교적인 양심으로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교회는 정치적·사회적인 권력 보다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근본적인 신념으로 삼아 사회와 인류 안에서 빛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종교적 현실 참여를 강조했다. 따라서 교회는 절대로 불의와 부정과 타협하는 교회 공동체가 아닌 인간 모두가 순수한 양심에 따라 내면의 회심으로써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좌(左)도 우(右)도 아닌 사랑
 
세상 사람들은 김 추기경을 두고 진보적이니, 보수적이니 말이 많지만 정작 김 추기경은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한 것은 소위 진보적 견해였지만, 낙태 반대는 보수적 입장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추기경이 말한 모든 것은 ‘사랑’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추기경이 공식 기록으로 대 사회적 발언을 처음 한 것은 1968년 2월이다. 가톨릭노동청년회(JOC)의 총재 주교였던 추기경은 당시 합법적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노동자를 불법 해고한 ‘강화 심도직물 사건’에 맞서 ‘사회 정의와 노동자 권익 옹호를 위한 주교단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노동자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나선 것이다. 김 추기경 성명 발표 후 정부가 사태 수습에 나서 6일 후 해고자들이 전원 복직되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이후로도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생존권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절규는 끊이지 않았다. 그때마다 김 추기경은 그들을 사랑의 품으로 끌어안았다.
 
하지만 이러한 김 추기경의 행동은 한 때 오해를 받기도 했다. 많은 이들은 이러한 오해가 추기경의 행동을 이념적 잣대로만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김 추기경 자신은 결코 이념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주화도 필요하고 제도 개혁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우리 마음에 자비의 정신, 사랑의 정신이 싹트는 것입니다(1991년 5월, 부처님 오신날 메시지)
 
그의 대사회적 판단과 행동들은 역사 및 사회적 합의에 따라 기준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이념’이 아닌, 오직 ‘신앙’에 의지한 것이었다. 사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었던 시절에도 추기경이 강조한 것은 사랑에 입각한 화해였다.
 
“사랑하기 위한 싸움에서 미움만이 남아있는 경우가 없지 않은지 우리는 반성해야 합니다. 때문에 불의를 보고 분노하며 자신의 개인적 안락과 미래까지도 포기하면서 정의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싸우는 이들도 이 민족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한다면, 이 민족 사회가 결코 미움과 대립의 사회가 되지 않고 사랑의 사회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분들도 먼저 하느님과 화해해야 합니다”(1986년 3월, 정의와 평화를 구하는 9일 기도 메시지).
 
[가톨릭신문, 2009년 2월 22일, 우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