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가톨릭 미디어 시대를 열라

문성식 2011. 2. 11. 23:49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57] 가톨릭 미디어 시대를 열라
 
명실상부한 가톨릭 종합미디어 시대 '개막'
 
 
<사진설명>
평화방송 케이블 TV 개국식에 참석한 김 추기경(왼쪽에서 세번째).
 
 
약 100년 전 교황 비오 10세는 매스 미디어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예견하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복음을 전파하는 데 홍보수단을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돈이 부족하다면 내 교황관(冠)과 목장(木杖), 십자가라도 팔아 보태겠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식견이다. 현대사회가 미디어 시대라는 사실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신문·방송·인터넷 같은 미디어는 현대인의 생활은 물론 의식까지 지배할 만큼 위력이 막강하다.
 
그런데 마력(魔力)에 가까운 힘을 가진 미디어에서 하루 24시간 복음의 향기가 은은하게 퍼져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 "교회가 사람들을 기껏 복음화시켜 집에 돌려보내면 TV와 인터넷이 말짱 도로아미타불을 놓는다"는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다.
 
지난해 복자품에 오른 성바오로수도회 창설자 알베리오네 신부님 같은 분은 "비복음적 인쇄매체는 복음적 인쇄매체로 대항해야 한다"면서 일전불사 의지로 사신 성직자다.
 
교회의 첫째 사명은 복음 전파이다. 하지만 미디어를 통하지 않고는 복음 전파가 힘든 세상이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교회는 세상과 대화하면서 사명을 수행해야 하는데 사회 교류의 지배적 수단인 미디어를 통하지 않고는 대화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미디어에 대한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서울대교구가 평화신문(1988년), 평화방송 라디오(1990년), 평화방송 케이블 TV(1995년)를 잇달아 설립한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평화신문은 갑자기 창간한 것이 아니다. 1984년 200주년 사목회의에서 교구 신부들과 결의한 사항 중 하나가 교회신문 창간과 종합대학 설립이었다.
 
라디오도 비교적 순조롭게 개국했다.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나 청취할 수 있는 5㎾ 출력 FM방송으로 출발했지만 나름대로 성장 가능성을 확신하고 있었다. 라디오 개국 축하 리셉션에서 "지금은 평화방송이 겨자씨처럼 작은 매체지만 앞으로 평화와 안식이 깃든 하늘나라처럼 발전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러나 케이블 TV 개국을 준비할 때는 이만저만 고민한 게 아니다. 정부가 가톨릭·개신교·불교에 채널을 한 개씩 주겠노라고 먼저 제의했지만 선뜻 받을 수가 없었다.
 
당시 케이블 TV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 때문에 대기업들까지 채널을 차지하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 그리고 개신교는 운영주체가 두쪽으로 갈려 서로 채널을 할당받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난 거꾸로 '이걸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면서 배부른(?) 걱정을 하고 있었다. 돈 때문이었다.
 
신문이나 라디오와 달리 TV 방송국을 설립, 운영하려면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방송국이 어느 정도 자리잡기까지 얼추 200억원이 소요될 것이라는 계산이 나와 있었다. 교구 재정 규모로는 천문학적 액수였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신부들이 선뜻 의견을 밝히지 못하고 망설였다. 특히 흥미위주의 오락물 일색인 방송에서 종교 프로그램이 얼마나 호소력이 있을까 하는 문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차피 교구장 용단이 필요한 문제였다. 오랜 고민 끝에 "우리도 영상 분야에 진출해서 가톨릭 종합미디어 시대를 열자"고 신부들에게 호소했다.
 
"21세기는 영상시대이다. 복음선교에 매스미디어를 활용하는 것은 우리 권리이자 의무다. 이 시대에 주어진 가장 좋은 선교수단은 TV다. 우리가 만일 채널을 포기하면 개신교쪽에서 채널 2개를 갖고 갈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가톨릭은 21세기 영상선교 시대의 낙오자가 된다. 훗날 후손들은 영상선교 발판조차 만들어놓지 못한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농담조로 이런 말도 했다. "가톨릭은 김수환이 용기를 내지 못해 채널을 반납했다는 소문이 나면 얼마나 창피하겠는가"
 
사실 '울며 겨자 먹기식' 사업 추진이었다. 그러나 이왕 할 바에는 사명감을 갖고 기쁜 마음으로 준비하자는 게 내 생각이었다. 자금조달도 계산상으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린이까지 합친 서울교구민(100만명)이 하루 4원씩 낸다면 1년이면 1만2000원, 100만명이 모두 동참하면 120억원이 된다.
 
물론 불가능한 시나리오지만 각 본당에서 그같은 마음으로 영상선교 사업에 힘을 보태주었다. 목돈을 쾌척하신 분들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덕분에 내 관(冠)과 목장을 내다 팔지 않고도 방송국을 개국할 수 있었다. 이 기회를 빌어 감사드린다.
 
평화방송 평화신문은 어느덧 자리를 잡고 명실상부한 가톨릭 종합미디어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라디오는 현재 대구·광주·부산·대전 등지에도 지역방송국이 설립돼 전국 네트워크를 갖췄다. 지금 이 시각에도 복음이 전파와 활자에 실려 산간 벽지까지 퍼져나가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뿌듯하다.
 
그러나 초기에 노조사태로 인해 공권력까지 투입되는 불상사가 일어나 가슴이 아팠다. 91년 초에 발생한 소위 '평방사태'는 노동자 이익을 적극 옹호해온 가톨릭이 집안식구(평화방송 직원들)를 탄압했다는 구설수에 올라 세인의 이목을 끌었다.
 
지금 와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 다만 노조가 어떤 문제를 확대시켜 회사와 교회를 궁지로 몰아가려 했던 점은 유감이다.
 
몇년 전 가톨릭중앙의료원 파업 때도 느낀 점이지만 노조는 '설마 교회기관에서 우리를 어떻게 하랴'라는 생각으로 무리한 요구를 해오는 경우가 있다. 물론 회사나 교회가 명백하게 잘못한 점이 있으면 사과하고 노조 요구를 수용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노조가 교회기관이라는 특수성을 약점으로 잡고 무리하게 밀고 나오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가톨릭중앙의료원 파업 때 의료사업에 대한 회의적 목소리가 컸다. "교회가 이런 불상사까지 치르면서 의료사업을 지속할 필요가 있느냐"라는 주장이었다. 공론화되지는 않았으나 꽤 설득력있는 얘기가 오고갔다. 원래 교회 의료사업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선사업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고 규모가 커지다 보니 경영논리가 도입되고, 그러다 보니 노사갈등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취지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교회 본질적 사명까지 훼손시켜가면서 영위해야 될 사업이라면 한번쯤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평화신문, 제780호(2004년 7월 4일), 정리=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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