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코 브루네리 - 유쾌하게 망가진 성직자들을 담다
19세기 후반, 특히 프랑스에서는 성직자들이 작품의 주제가 되는 작품들이 등장합니다. 그림 속 성직자들은 대개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그 지위가 추기경급이니까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말로 이런 그림들을 무엇이라고 하는지 찾지 못했지만 뜻으로 본다면 ‘반 성직자 미술’(Anti-clerical Art)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주제를 즐겨 그린 일군의 화가들이 있었는데 이탈리아 화가 프란체스코 브루네리(Francesco Brunery, 1849-1926)도 그 그룹의 한 사람입니다.
지루한 회의 A Tedious Conference, 70.49x92.08cm
붉은색 옷과 모자를 쓴 사람들은 추기경, 보라색은 주교, 검은색은 신부입니다. 주교가 일어나서 새로운 안건을 읽기 시작하자 추기경들의 자세가 흐트러지고 말았습니다. 계속되는 회의가 모두에게 고역이었던 모양입니다. 몸을 길게 늘이고 있는 추기경이 가장 고참일까요? 좀 쉬었다 하시죠, 추기경님. 무릎을 손가락으로 툭 하고 찌르는 보다 젊은 추기경의 표정이 재미있습니다. 회의가 지겨운 것만큼 재미없는 강론 말씀도 지루하다는 것을 추기경들께서는 알고 계실까요?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 근처의 투린에서 태어난 브루네리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미술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것이 아니라면 또 태어난 곳과 화가로서 활동한 나라가 다른 경우라면 화가 개인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으니 알 수 없지만, 그림을 배우기 위해 파리로 거처를 옮겼다는 것을 보면 집안의 지원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An Amusing Retort, 50x60cm
무슨 이야기가 저렇게 재미있을까요? 가만히 보아 하니 이야기를 한 사람은 왼쪽에 있는 젊은 신사인 것 같습니다. 아마 밖에서 가져온 유쾌한 소문이라도 들려준 모양입니다. 이야기가 궁금했던 두 신사는 작은 술잔을 한 잔 내밀었습니다. 목 좀 축이고 이야기 좀 계속해봐. 사실 남자들의 수다도 여자들의 그것에 못지않지요. 누군가를 헐뜯는 것만 아니라면 소문만큼 재미있는 것도 많지 않거든요.
파리에 도착한 브루네리는 장 제롬과 레옹 보나에게서 그림을 배웁니다. 장 제롬은 당대 최고의 오리엔탈리스트였고, 레옹 보나는 최고의 아카데믹 화법을 구사했으니 대단한 스승 밑에서 그림을 배운 셈입니다. 브루네리는 앞선 선배들이 파리에서 그림 공부가 끝나고 나면 로마로 건너가 그림 공부를 계속했던 것처럼 그도 로마로 건너가 역사화와 이전 대가들의 작품을 공부합니다.
서투른 이발사 La Barbier Maladroit, 51x40cm
이런, 큰일 났습니다. 서투른 이발사가 추기경 면도를 하다가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면도날로 얼굴을 살짝 베인 정도이겠지요. 얼굴을 찡그린 추기경의 모습에서도 웃음이 나지만 얼굴 전체에 주름이 잡히도록 당황한 이발사의 표정도 가관입니다. 이발사의 솜씨가 서투른 것일까요, 아니면 추기경의 얼굴이라 너무 긴장했던 것일까요? 그래도 추기경님, 참으셔야 합니다. 칼 아래 얼굴을 맡기신 것도 추기경님이시잖습니까? 더구나 이발사가 칼도 들고 있는데요. 면도를 하는 순간이 사람을 가장 완벽하게 믿는 순간이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로마에서의 공부가 끝나고 난 후 브루네리가 아내와 함께 파리로 돌아왔다는 것을 보면 결혼을 한 것이 분명한데 언제 했는지 기록을 찾지 못했습니다. 상상을 해보면 로마에 거주할 때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파리에서는 학생 신분이었지만 로마에서는 유학 생활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자유스러웠을 것이고 객지 생활을 하다보면 쉽게 사랑에 빠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빨간 말을 옮겨 Red to Move, 60.6x73.7cm
그러지 말고 빨간 말을 옮겨. 이렇게? 옆에서 보다 못한 동료가 훈수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자신이 없는 선수는 말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훈수꾼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이상하게 옆에서 보면 잘 보이는 수가 막상 직접 판에 뛰어들면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욕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일 겁니다. 상대방을 보지 않고 자신의 것에만 집중하는 어리석음 때문이죠. 살면서 훈수를 듣기도 하고 훈수를 하기도 했습니다. 훈수대로 살았다면 지금의 인생이 어떻게 또 변했을지 알 수 없지만,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아마 또 제멋대로 하는 경우가 더 많겠지요. 그래서 사는 것은 늘 긴장의 작은 도랑을 건너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1880년, 서른한 살의 나이로 브루네리는 파리 살롱전에 초상화를 전시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베니스의 운하를 그린 작품을 전시합니다. 그의 주요 장르는 풍속화였고, 유화뿐만 아니라 파스텔화 수채화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무자비한 Sans Pitié, 65.1x53.9cm
제목이 무자비한… 무엇일까요? 무자비한 장난 정도가 어떨까 싶습니다. 신문을 보다가 잠이 든 추기경을 나이 지긋한 주교가 깃털을 가지고 간질이고 있습니다. 그 모양을 보고 있는 오른쪽 신부의 표정도 재미있습니다. 말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보고 있자니 후환이 두렵고… 뭐 그런 표정 아닌가요?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재미도 있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가톨릭의 서열을 보면 교황, 추기경, 주교, 신부 그리고 부제 순인데, 이런 장난도 가능하군요. 사제들의 장난이 우리의 중고등학교 교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보면 그림 속 순간만큼은 한 인간으로 돌아간 모습입니다.
프랑스 혁명은 프랑스 사회에 여러 가지 영향을 남깁니다. 그중 하나는 반종교적인 색채가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것이죠. 성직자 계급은 프랑스의 전통사회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습니다. 세금을 내지 않으면서도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었던 이 계급은 혁명 중에도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했고 이것이 혁명을 주도한 세력과 정면으로 부딪힌 것이죠. 그러다보니 희화화된 성직자들이 등장하는 그림들이 사람들의 인기를 끈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입니다.
<새 하녀 The New Servant, 54.3x65.4cm
새로 온 하녀의 모습에 두 신사의 정신이 나간 모습입니다. 이미 마신 술에 불콰해진 얼굴인데 매력적인 하녀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남자들은 젊으나 나이를 많이 먹으나 똑같습니다. 물론 저라고 예외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노골적이지는 않은데…. 그러고 보니까 두 신사의 아내가 보이지 않는군요. 그렇다면 조금 이해가 됩니다. 아내가 없으면 남편들의 간이 배 밖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거든요.
예전에 소개했던 장 비버트(http://blog.naver.com/dkseon00/140060398291)처럼 브루네리도 성직자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그림에 담기 시작합니다. 기사들도 혁명 전에 가지고 있던 지위 때문에 대상이 되었죠. 이런 화가들을 ‘추기경파 화가’(Cardinal School of Painters)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다분히 비아냥거리는 느낌도 납니다. 요즘 추기경들께서 보시면 버럭 화를 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완패 Throughly Beaten, 49.5x60.9cm
마지막 패를 뒤집는 순간 승부가 끝나고 말았습니다. 승리한 남자의 얼굴은 유쾌하지만 자신의 패가 이길 것이라고 믿었던 남자는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손가락을 물어뜯으며 분한 마음을 달래보지만, 눈을 보니까 그렇게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자, 그러지 말고 완전하게 진 것을 인정하지. 붉은 옷을 입은 사내의 표정이 씩씩거리고 있는 사내의 속을 더 긁어대는 것 같습니다. 원래 저렇게 옆에서 거드는 사람이 더 미운 법이죠.
혁명도 이런 ‘반 성직자’ 작품들이 등장하는 요인이 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유럽과 미국이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경제적인 번영도 한몫했습니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부가 축적이 되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종교에서 멀어지게 된 것이죠. 배 부르고 등이 따듯한데 굳이 신을 찾을 이유가 없었겠지요. 물론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맞지 않는 이중주 Un Duo Discordant, 65x53.5cm
그만, 그만해!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어! 악보를 보며 박자를 저어주던 추기경이 그만 귀를 막고 말았습니다. 귀를 막고 있는 그의 표정을 보니 어지간히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연주 중인 추기경은 깜짝 놀란 모습입니다. 악기를 입에 물고 있으니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동그랗게 치켜 뜬 눈에는 아마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내가 뭘 틀렸다고 그래? 박자나 잘 맞추지…. 누가 틀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커피 잔을 기울이며 두 사람의 토닥거림을 재미있게 바라보고 있는 주교의 표정을 보면 악기 연주가 아주 엉망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듣기 어려웠다면 커피 잔을 들기 전에 귀를 막았겠지요. 목소리 크고 동작 빠른 사람이 이기는 것은 그곳이나 이곳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1898년, 브루네리는 프랑스 예술가 협회의 회원이 되면서 많은 관심을 받게 됩니다. 작품 속의 생생한 분홍색과 선홍색, 화려한 장식과 그림 속에 담긴 유머, 그리고 완벽한 마무리는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고 ‘추기경파 화가’들의 선두주자가 됩니다.
나무 위로 Up a tree, 61x50.2cm
이걸 어쩝니까…. 추기경께서 초원에 이젤을 펴 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난데없이 소가 추기경을 향해 돌진하고 있습니다. 우선 나무 위로라도 피해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소뿔의 높이와 추기경 엉덩이의 높이가 같습니다. 이 장면보다 3~4초 뒤의 장면은 상상하기에도 끔찍하군요.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늘 성경만 볼 것이 아니라 가끔은 나무 타는 연습도 하셔야 할 모양입니다. 그건 그렇고 소라고 보기에는 너무 사납게 그린 브루네리의 속마음이 궁금합니다.
1903년 브루네리의 명성은 정점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기록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상상을 해볼 수밖에 없는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후기 인상파와 현대미술의 등장으로 인해 아카데미즘 작품들이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죠. 혹시 브루네리도 그런 물결에 휩쓸린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도 감히 대놓고 낄낄거릴 수 없는 분들을 그림 속으로 모셔온 브루네리의 솜씨에 박수를 보냅니다.
허영심 Vanity, 56.5x47cm
거울 앞에 선 남자가 한껏 자신의 모습에 취해 있습니다. 장식용 칼을 들고 다소곳이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내의 표정은 심드렁해 보입니다. 또 시작했어. 저걸 누가 말려.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남자의 모습에서 문득 남자의 머리도 가벼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제가 믿는 종교의 성직자들에 대한 그림 이야기는 그림 이야기일 뿐입니다. 오해 없으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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