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보물

보물 제1896호 부산 운수사 대웅전(釜山 雲水寺 大雄殿)

문성식 2016. 11. 7. 11:21

보물 제1896호 부산 운수사 대웅전(釜山 雲水寺 大雄殿)

종목 보물 제1896호
소재지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로 219번 길 173 (모라동 5)
지정일 2016.03.02
수량 1동
시대 조선시대 (1655년)
소유자 운수사
관리자 운수사
자료출처 및 참조 문화재청

부산 운수사(雲水寺) 대웅전(大雄殿)은 2013년 전면 해체 수리 때 종도리(宗道里, 건물의 가장 높은 곳인 용마루가 있는 부분에 놓이는 도리)에서 발견된 2개의 묵서명(墨書銘)에 의해 1647년 공사를 시작해서 1655년 완공되었음이 확인되어, 부산 지역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단아한 주심포(柱心包, 공포를 기둥 위에만 배열한 것)계 맞배지붕 건물로, 우주(隅柱, 기단 모서리에 세워지는 기둥, 귓기둥)의 하부에는 기둥 높이의 1/2 정도까지 원형 돌기둥을 세워 목재 기둥을 받고 있다. 이는 범어사 대웅전, 범어사 일주문 등 부산 동래지역 건축물에서 다수 확인되어, 내륙지방에 비해 태풍이 잦고 비가 많은 데 따른 지역적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건물의 시대성을 볼 수 있는 공포는 배면이 정면보다 시기적으로 앞서 있다. 배면 공포의 소박한 살미와 결구방법은 조선 중기 건축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양산 신흥사 대광전, 부산 범어사 대웅전과 동일한 형식이다. 반면, 정면은 후대에 화려한 치장형 살미(첨차와 직교하여 보방향으로 걸리는 공포부재를 통칭)를 사용하여 장식적인 공포로 변화된 것으로, 동래향교 반화루, 범어사 종루와 유사한 모습이다.

 

이는 주심포계 익공식(翼工式, 창방과 직교하여 보방향으로 새 날개 모양의 익공이라는 부재가 결구되어 만들어진 공포형식) 건물이 다포(多包, 공포를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배열한 것)계 건축의 영향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특히, 일반적인 익공식 건물의 경우 주두(柱頭, 공포 최하부에 놓인 방형의 부재) 아래의 기둥머리에 초익공(初翼工)을 끼워 공포를 구성하는데, 이와 달리 주두 위에서 구성한 것은 운수사(雲水寺) 대웅전(大雄殿)만의 큰 건축적 특징이다.

 

아울러 운수사(雲水寺) 대웅전(大雄殿)은 창호, 천장, 단청 등이 교체되고 변화되었으나 기본적인 구조는 1655년 최초 건립 당시의 형태와 1771년 고쳐 지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건물에 남아 있는 묵죽도(墨竹圖) 등 4점의 벽화는 창건 또는 18세기 중수 시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운수사(雲水寺) 대웅전(大雄殿)의 시대성과 역사성을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종도리에서 발견된 2개의 묵서명은 많은 건축 정보를 담고 있는 소중한 연구자료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지역 불교건축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대웅전 건축 당시는 부산 지역에서 조영이 가장 왕성하게 펼쳐지던 시기였고, 운수사의 공역 여건과 기반도 상당한 수준에 달했던 시기였다. 특히 대웅전에서 발견된 대웅전 조영연혁을 기록한 송판에 보이는 승인공장(僧人工匠)과 민간 공장중에서는 1770년대에 이루어진 범어사 대종(大鐘) 주조불사, 동래향교 대성전 중수공사, 범어사 종루 이건공사 등에도 참여한 사람이 확인되어 18세기 부산지역 공장(工匠) 연구에도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 건물은 부산에서 유례가 드물 만큼 잘 정제되고 뛰어난 기법의 목조건물이다.특히 조선중기의 잘 정제된 건축기법을 두루 갖추고 있는 특이한 건물로서 건축사적으로 크게 주목되며, 문화재적 가치도 뛰어난 소중한 건축유구이다.

 

 아울러 임란 이전 목조건물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부산지역에서는 가장 오래 전의 건물로서 문화재적 가치는 어느 것에 비할 바 아니며, 지금의 건물만으로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판단되는 문화재이다.

 

운수사는 낙동강과 나란히 남쪽으로 이어진 태백산맥의 끝줄기인 금정산 기슭에 자리한 범어사 말사로 낙동강 서안에 위치한 탓에 행정정으로는 옛날부터 동래부에 속했다. 운수사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31종의 고지도에도 모두 표기되어 있는데 가장 오래된 《여지도서》(1757년, 영조 33년), 《해동지도》(18세기 중엽, 규장각)에는 읍지류와 마찬가지로 운수사를 비롯해서 범어사, 국청사, 해월사, 마하사, 선암사, 화지암이 표기된다. 대부분 건물 한 채를 그린 후 옆에 사찰 이름을 부기하는 식이다.

 

그런데 《영남지도》(18세기 중엽, 규장각), 《각읍지도》(19세기 초, 국립중앙도서관), 《영남읍지》(1894년, 규장각)에는 운수사를 비롯해서 범어사, 선암사, 마하사 등 4개만 표기된다. 작은 사찰들은 빼고 큰 사찰만 표기한 것으로 이는 운수사가 큰 사찰이었고, 이란 사실은 《동래부지도》(19세기 중엽, 국립중앙도서관)에 범어사와 운수사 건물을 더 크게 그린 데서도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