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보물 제87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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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북 안동시 |
소재지 | . |
지정일 | 1986.10.15 |
수량/면적 | 1폭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이용구 |
관리자 | 이용구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조작가인 농암 이현보(1467∼1555)의 초상화이다. 이현보는 연산군 4년(1498)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직책을 거친 후 말년에는 후진양성에 힘썼다. 그의 많은 저서 중에서『어부가』등의 시조가 특히 유명하다.
이 그림은 가로 105㎝, 세로 126㎝로 비단에 채색하여 그렸다. 위가 뾰족한 패랭이를 쓰고 붉은색이 감도는 옷을 입은 모습으로 허리에는 물소뼈로 만든 각대를 두르고 있으며 오른쪽을 바라보며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조선시대 초상화는 손이 나타나지 않는데 비해 한 손에는 지휘봉 모양의 불자를, 다른 한 손은 책상을 잡고 있다. 책상 아래로는 검은 가죽신이 보인다.
이 그림은 선생이 관찰사로 있던 중종 32년(1537)에 동화사의 승려이자 화가인 옥준이 그렸다고 전해진다. 그 후 순조 27년(1827)에 훼손을 우려한 후손들에 의해 이 그림의 모사본이 만들어졌다.
영정(影幀)의 뜻은 형상을 뜻하는 영(影)과 그림족자를 의미하는 정(幀)을 합한 말로, 영정이란 결국 형상을 그려 족자로 만든 것이라는 뜻이 된다.
이 영정(影幀)을 다른 말로는 영(影)·진(眞)·진영(眞影)·영자(影子)·영상(影像)·영첩자(影帖子)·상(像)·화상(畵像)·초상(肖像) 등으로 부르고, 왕의 초상(肖像)인 경우에는 어진(御眞)·어용(御容)·진용(眞容)·수용(수容)·성용(聖容)·왕영(王影) 등으로 부른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용어들을 초상화(肖像畵)로 통일하여 부르는 경향이 있다. 쉽게 정리하면 초상화란 인물의 전신(全身)이나 상반신(上半身)을 주인공과 아주 닮게 극히 세밀하게 그린 그림을 말하는데, 전신화(傳神畵)라고도 한다. 또 조선시대의 초상화는 그려진 대상인물의 신분에 따라 어진(御眞)·공신상(功臣像)·기로상(耆老像)·일반 사대부상(一般 士大夫像)·여인상(女人像)·승상(僧像)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초상화는 중국에서는 주(周)나라 때부터,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그렸는데, 정치적·사회적 특성에 따라 많이 그렸거나 적게 그렸다. 그리고 초상화는 대부분 전문 화사(畵師)가 그렸지만 자기 스스로 그린 자화상(自畵像)도 있다. 현재 한국에 남아 있는 초상화는 4백여 점이 되며, 초상화를 잘 그린 화가는 김진여(金振汝), 김홍도(金弘道), 안건영(安健榮), 이광좌(李光佐), 이기(李琪), 이태(李태), 이명기(李命基), 이한철(李漢喆), 임희수(任希壽), 장경주(張敬周), 조중묵(趙重默), 진재해(秦再奚), 채용신(蔡龍臣) 등이다.
조선시대 전기의 사대부상(士大夫像)은 문관(文官)이나 무관(武官)인 관리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관복상(官服像)과 평복(平服)(또는 야복상(野服像))으로 구별된다. 주인공의 형상과 정신을 비교적 잘 전하고 있는 조선시대의 사대부상은 다른 초상화에 비하여 그 수도 많고 수준도 높다. 관복상, 즉 공신상(功臣像)은 엄숙한 분위기에서 한정된 시간 안에 그려진데 비해서, 평복상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대상인물과의 접촉을 빈번하게 하면서 그렸기 때문에 완만한 느낌을 준다. 물론 이런 이유 때문에 그림의 수준이 낮은 것도 있다. 사대부상은 서원(書院)·영당(影堂)·사묘(祠廟) 등의 발달과 유행으로 많이 그려졌다.
현재 최고의 사대부상은 황희(黃喜)(1363∼1452)상·하연(河演)(1376∼1453)상·최덕지(崔德之)(1384∼1455)상(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寶物)로 지정되었음) 등이다. 평량자형모제(平凉子型帽制) 중 평량자(平凉子)는 평량립(平凉笠)·폐양자(蔽陽子)·차양자(遮陽子) 등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말로는 패랭이라고 한다. 즉 댓가비로 엮어 만든 갓의 하나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천인(賤人)이나 상인(喪人)이 썼다. 이런 평량자를 쓰고 있는 초상화로서 제일 오래된 것은 김시습(金時習)(1435∼1493)상이라 하겠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이 살아 있을 때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초상화는 상반신상(上半身像)이다. 밀화영(蜜花纓)의 끈을 달고 있는 평량자를 쓰고 야복(野服)차림을 한 이 초상화의 화법(畵法)은 안면(顔面)과 의습(衣習)처리에서 조선시대초기의 초상화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안면은 옅은 살색으로 밝게 처리하였고, 외곽선과 눈·코·입·귀 등은 옅은 갈색선으로 처리하였다. 복색(服色)은 담홍색(淡紅色)으로 처리하였다. 평량자를 쓰고 담홍포(淡紅袍)를 입고 있는 초상화로는 김시습상 다음으로 이현보(李賢輔)(1467∼1555)상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농암(聾巖) 이현보영정(李賢輔影幀)은 위가 뾰족한 평량자를 쓰고, 담홍색인 무관복(武官服)을 입고, 서대(犀帶)를 착용하고 오른손에 지휘봉인 불자(拂子)를 쥐고 앉아 있는 좌안7분면전신좌상(左顔七分面全身坐像)이다. 생견(生絹)에 수묵담채(水墨淡彩)로 그린 이 영정의 크기는 세로 126㎝, 가로 105㎝로서 보존상태가 좋지 않은 편이다. 이현보가 경상도 관찰사 시절인 1536년(중종(中宗) 31, 병신(丙申))에 그려진 이 초상화의 안면 묘사는 골법용필(骨法用筆)에 의하여 기운(氣韻)이 생동(生動)하나 의습과 수족(手足)묘사는 평범하거나 미숙한 편이다. 차양(遮陽)이 큰 평량자를 비뚜름하게 쓴 채 눈을 크게 뜨고 앉아 있는 모습, 자세와 서안(書案)의 각도가 맞지 않는 점, 안면과 의습 묘사를 구륵전채법(鉤勒塡彩法)으로 처리한 점 등은 고격(古格)이면서도 자연스럽다. 이 이현보영정(李賢輔影幀)은 그의 16대손(代孫)인 이용구(李龍九)씨 집 (경북(慶北) 안동시(安東市))의 목조영각(木造影閣)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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