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39.jpg 조선 중기에 군사목적으로 사용된 포탄. 선조 때 이장손(李長孫)이 발명하였다. 표면은 무쇠로 둥근 박과 같고, 내부는 화약과 빙철(憑鐵) 등을 장전하게 되어 있으며, 완구(碗口)에 의하여 목표물에 발사하는 인마살상용 폭탄의 일종이다.


지름 21㎝, 둘레 68㎝로 도화선을 감는 목곡(木谷), 목곡이 들어가는 죽통(竹筒), 얇은 철 조각, 뚜껑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표면은 무쇠로 둥근 박과 같고 내부는 화약과 얇은 철 조각들로 장전하게 되어 있으며, 화포의 일종인 완구(碗口)를 이용하여 발사된다. 임진왜란 때 경주 부윤이었던 박의장이 사용하여 경주성을 탈환하기도 하였다.

이 비격진천뢰는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유물 중 가장 보존 상태가 좋아 문헌과 비교 연구할 수 있는 국방 과학기술 문화재로 평가되며, 화포 연구와 탄환 발전사에 대한 자료로서 높은 가치가 있다.

 

비격진천뢰에 대해 이서(李曙)가 지은 ≪화포식언해 火砲式諺解≫와 ≪융원필비 戎垣必備≫에서는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즉, “그 체형은 박과 같이 둥글고 부리는 네모가 졌으며, 그 부리에는 손잡이가 달린 뚜껑이 있다. 내부에는 도화선인 약선을 감는 목곡(木谷)이 있고, 또한 목곡이 들어가는 죽통(竹筒)이 있으며 내부에는 빙철(馮鐵)이 채워진다. 특히 목곡은 폭파시간을 조절하는 장치로서 그 재료는 단목(檀木)을 사용하며, 그 골을 나사모양으로 파서 폭파를 빠르게 하고자 할 때에는 열 고비로, 더디게 하고자 할 때에는 열다섯 고비로 하되, 중약선(中藥線)을 감아 죽통에 넣어 한 끝은 죽통 아래 중심에 꿰고, 또 한 끝은 죽통 위 개철 밖으로 내되 두치를 넘지 못하게 하며, 이 때에 죽통과 개철 주위에는 홈이 생기지 않도록 종이로 밀봉한 뒤 화약은 허리구멍으로 채워넣고 격목으로 구멍을 막은 뒤 완구에 실어 발사하되 불꽃을 막으려면 진천뢰 심지에 불을 붙이고 나서 완구 심지에 불을 붙인다.” 하였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비격진천뢰로는 육군박물관에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것 외에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 고현성지(古縣城趾)에서 발굴된 것과 진주성지에서 발굴된 파편, 그리고 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 석마리에서 발굴되어 연세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