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부분 1861년(철종 12)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하고 1864년(고종 1)에 수정판이 간행된 분첩절첩식(分帖折疊式) 우리 나라 전국지도. 목판본.

 

이 지도는 가로 80리 세로 120리의 방안(方眼)을 한 면(面)으로 하고 두 면을 한 도엽(圖葉)으로 목판에 새겼다.

전체 지도 도엽은 목판 121매이고 제책(製冊)이 되었을 때의 면수는 213면이다. 여기에는 부록격인 지도유설(地圖類說)·도성도(都城圖)·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 등이 첨가되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126개 목판이고 전체 면수는 227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가로 70리 세로 100리를 하나의 방안으로 한 개 면을 이루어 총 321면인 〈청구도〉와 비교할 때 94면이 줄어든 숫자이다. 〈대동여지도〉의 면수가 〈청구도〉의 면수보다 줄어든 것은 〈대동여지도〉가 〈청구도〉보다 가로 10리 세로 20리를 한 개 방안에 더 수용하고 섬을 육지에 가깝게 배열하여 그렸기 때문이다.

 

제주도부분 〈청구도〉는 동서 22판 남북 29층이고, 〈대동여지도〉는 동서 19판 남북 22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구도〉는 건곤(乾坤) 두 책으로 만들어져 건권에서는 1·3·5의 홀수층을, 곤권에서는 2·4·6의 짝수층의 면을 동(東)에서 서(西)로 제책(製冊)하여 두 권을 상하로 펴면 네 개의 지도면(地圖面)을 동시에 볼 수 있게 하였으나 그 이상의 지도면은 책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 잇대어서 볼 수 없는 불편함이 있다.

〈대동여지도〉는 각층의 도엽을 동에서 서로 길게 잇고 이를 병풍식으로 접어 1층으로 삼아 모두 22층인데, 분첩절첩의 방법으로 제책하여 한 질이 되게 하였다. 접은 책의 크기는 가로 20㎝, 세로 30㎝로서 당시 책의 크기와 비슷하게 만들어 마치 한 권의 책처럼 편리하게 만들었다.

 

이를 남북으로 22층을 계속 이으면 가로 6.8m, 세로 3.3m의 거대한 우리 나라 전도(全圖)가 된다. 지도의 내용을 〈청구도〉와 비교하면 〈청구도〉에는 1만5485개의 주기(註記)가 있는데 〈대동여지도〉는 총 1만3188개의 주기가 있으므로 〈청구도〉가 〈대동여지도〉보다 2,297개의 주기 내용이 더 많다.

〈대동여지도〉를 판각하기 위하여 제작한 선행지도인 〈동여도〉는 주기 내용이 1만8736개로 〈청구도〉보다는 3,251개의 주기 내용이 많고 〈대동여지도〉보다 5,548개 주기 내용이 더 많다. 이것은 〈대동여지도〉가 판각의 어려움 때문에 〈동여도〉보다 주기 내용을 줄였음을 〔표〕에서도 알 수 있다.

 

〈대동여지도〉의 축척은 〈청구도〉·〈동여도〉와 마찬가지로 100리를 1척(尺)으로, 10리를 1촌(寸)으로 한 백리척(百里尺) 축척의 지도이다. 그러나 당시의 1촌(寸) 1보(步)가 현재의 몇 ㎝에 해당되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면 미터법에 의한 축척을 쉽게 찾아낼 수 있겠지만 이들 지도에 적용한 주척(周尺)의 길이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해답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대동여지도〉의 축척을 미터법으로 환산한 축척은 대체로 1:160,000과 1:216,000의 두 가지 학설이 있다. 전자는 조선시대 10리도 현재의 10리와 마찬가지로 4㎞라는 거리 개념에서 출발하여 계산해 낸 축척이고, 후자는 지구의 둘레가 4만㎞인데 360도로 나누면 1도는 111.11㎞이고 당시 위도 1도는 200리였으므로 111.11㎞를 200리로 나누면 5.5㎞가 되어 10里는 약 5.5㎞가 된다는 거리 개념에서 계산해 낸 축척으로 후자가 신빙성이 높다.

 

〈대동여지도〉는 김정호의 걸작품인 동시에 삼국시대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우리 나라 고지도 제작법 중 좋은 기술만을 집대성해 놓은 최고의 고지도이다. 이 지도의 특색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목판본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필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막고 대량 생산의 길을 터 놓았다.

 

둘째 지도표(地圖標)를 써서 지도의 주기 내용을 간결화하여 고지도를 근대화 시켰다.

 

셋째 분합(分合)이 자유롭게 22첩으로 만들어 상하를 연결하면 도별지도(道別地圖)가 되고, 모두 연결하면 전국도(全國圖)가 되도록 만들어 이용하기 편하고 접으면 책만한 크기로 휴대하고 다니기도 편하였다.

 

넷째 전통적인 고지도 제작 양식인 배수(裵秀)의 6체론(六體論)과 방안도법, 평환법을 사용하고, 지도를 확대 축소할 때에는 서양의 과학기술을 가미하여 〈대동여지도〉의 정확성을 기하였다.

 

다섯째 다른 어느 고지도보다 주기내용이 많아 풍부한 정보량을 담고 있다.

 

여섯째 도로에는 10리마다 점을 찍어 표시하여 여행할 때 이정(里程)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였다. 〈대동여지도〉의 판목(板木)은 대원군에 의하여 압수되어 불태워졌다고 알려졌으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판목 1매가 숭실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15매가 무더기로 발견되어 판목 소각설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