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82.jpg 고려시대의 불상. 높이 2.88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경기도 하남시 하사창동(출토 당시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춘궁리)의 절터에서 출토된 불상이다. 출토 당시에 양 귀의 끝과 콧등, 두 손이 파손된 상태여서 보수되었고, 양손은 근래에 다시 개수되었다.

특히, 긴 눈초리가 위로 치켜 올라가고, 얼굴에 비하여 인중이 짧고 입이 작아 부처로서의 자비함이 줄고 관념적으로 변하였다.

이와 같은 표현은 실상사철제여래좌상(보물 제41호)이나 청량사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65호) 등과 같은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에 이미 나타난 특징으로 고려시대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유행하였던 것 같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선명하고 대의(大衣)는 우견편단식(右肩偏袒式)으로 입었다. 옷주름은 융기선으로 나타나 있으며, 아래에 모여져 있는 부채꼴의 군의(裙衣) 자락도 비교적 자연스러운 편이다.

이 불상은 전체를 여러 조각의 틀을 붙여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은 상의 표면이 거칠고 엉성하다. 하지만 원래는 조각 위에 호분 등을 입혀 면을 고르게 하고 다시 채색을 가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까지 전하는 철불 가운데 석굴암본존불의 형식을 재현한 듯한 항마촉지인의 불상들은 적조사(寂照寺)철조여래좌상을 비롯하여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경복궁 회랑에 많은 예가 전한다. 대부분 양손과 귀의 일부가 절단되었거나 불두만 남은 경우도 있다.

양식적으로는 통일신라 말기의 철불 양식을 이어받고 고려적으로 다시 변모한 10세기의 특징을 지녔는데, 서로 상당한 유사점을 가지고 있어 흥미롭다. 단지 정확한 출토지를 알 수 있는 불상이 드물다.

이 철불은 태평 2년(977년)의 명문이 있는 경기도 하남시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과 멀지 않은 하사창동의 광활한 평야와 넓은 수로를 배경으로 융성하였을 대가람에 봉안되었던 불상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미술사적 의의가 더욱 크며, 고려시대 10세기의 대표적인 불상이라 하겠다.

이 불상이 발견된 하사창동의 절터에는 팔각대좌의 일부인 석물 3기와 함께 거대한 석조대좌의 하대석이 출토되었다. 이 철불과 관련하여 크게 주목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