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20_0133.jpg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있는 고려 초기의 석탑. 높이 7.5m.

2층기단 위에 서 있는 오층석탑으로 각 부재의 결구(結構)에 특징을 보이고 있다. 현재 1층기단은 땅속에 묻혀 있어 자세한 구조와 양식을 밝힐 수 없으나 면석에는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안상(眼象)이 조각되어 있다.

1층 갑석은 12매로 조성되었으며 밑에는 부연(副椽 : 탑 기단의 갑석 하부에 두른 쇠시리)을 조각하였다. 갑석 상면에는 다른 돌로 다듬은 3단의 기단받침이 있다. 2단의 기단받침 중 1단과 3단받침은 낮은 받침이며, 2층받침은 일반적인 예와는 달리 높고 광대한 호형(弧形 : 활모양)받침을 각출하였다.

이 탑에서와 같이 각(角)-호(弧)-각의 몰딩(moulding : 테두리장식)을 다른 양식으로 구비한 예는 다른 곳에도 볼 수 있지만, 이처럼 호형이 큰 것은 바로 이 탑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2층기단의 결구수법에서는 미륵사지석탑(彌勒寺址石塔의성탑리오층석탑(義城塔里五層石塔)·감은사지동서탑(感恩寺址東西塔)의 예와 같이 4개의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를 비롯하여 각 면 중앙에 있는 일주식(一柱式)의 탱주(撑柱 : 받침기둥), 우주와 탱주 사이를 메운 면석들은 모두 별개의 석재로 결구하였다. 갑석은 8매로서 기단을 마감하였는데 밑에는 기단받침과 같은 3단의 갑석받침인 부연을 조각하였다.

1층탑신은 너비에 비하여 높이가 낮아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4우주와 면석은 역시 다른 석재로 조성하였다. 옥개석은 너비에 비하여 낮아서 마치 목조건물의 지붕모양과 같이 처마곡선이 우각(隅角)에 이르러 경쾌한 반전을 나타내고 있다.

받침과 옥개부는 각각 4매씩으로 구성되었으며, 추녀 밑으로 한 줄의 홈이 돌려 있고 그 안에 받침을 삽입할 수 있도록 패어 있다. 옥개 낙수면의 경사는 매우 완만하고 전각의 반전도 극히 약하다.

2층 이상도 거의 같은 수법으로 탑신과 옥개석을 장식하였는데, 전체적인 체감비율은 우아하고 장중한 감을 주고 있다. 상륜부(相輪部)는 일부를 남기고 있으며, 노반은 탑신부의 형식을 따라 신부에 4우주를 갖추고 별석의 노반 갑석으로 마감하였다.

갑석 밑부분에는 낙수가 탑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도록 절수구(切水溝)를 마련하였으며, 윗면에는 반구형의 복발(覆鉢)과 원형의 앙화(仰花) 등으로 장식하였다.

1971년에 이 탑을 해체 보수하던 중 5층탑신 내부에서 사리장치(舍利裝置, 높이 26㎝, 너비 33.27㎝)가 발견되었는데, 청동합(靑銅盒) 속에 수정병·다라니경(陀羅泥經)·자단목(紫壇木)·방분향(芳粉香) 등이 들어 있었다. 또, 제4층 탑신 속에서는 금동아미타삼존불좌상이 발견되었다.

이 탑의 전체적인 균형과 양식은 부근에 있는 정림사지오층석탑(定林寺址五層石塔)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인상을 주고 있어서, 중부지방에서 유행하던 독특한 석탑양식을 반영하고 있다.

옥개석이 넓고, 상층 기단받침의 양식을 비롯하여 기단의 면석부재들이 모두 별석으로 구성된 점은 미륵사지석탑이나 정림사지오층석탑, 또는 감은사지석탑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옛 수법이며, 옥개석의 추녀곡선 처마 밑에 설치된 절수구는 신라 말기부터 고려 초기에 조성된 석탑에서 찾아볼 수 있는 수법이다. 따라서, 이 탑의 조성연대는 고려 초기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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