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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백암산(白岩山·1,004m)은 낙동정맥에서 동해 쪽으로 슬쩍 가지 친 능선에 솟아오른 봉우리다. 산은 아름드리 소나무와 참나무가 우거져 건강에 좋은 피톤치드가 많은 곳으로 이름나 있고 산 아래 백암온천은 국내 최고 수질을 자랑한다.
이러한 자연환경으로 명성이 높은 백암산 골짜기 풍광 또한 대단했다. 백암산 북동릉과, 낙동정맥과 금장지맥~구주령산 산줄기로 둘러싸인 신선골(선시골)은 웅장했다. 깊고 힘이 넘쳤다. 협곡과 깊은 소는 섬뜩하리만치 신비감 넘쳤고, 산사면과 산릉에 빼곡하게 우거진 아름드리 소나무 숲은 골짜기를 한층 풍요롭게 덧칠해 주었다. 온천에 숲이 좋다는 백암산에 대한 굳어 있는 생각을 바꿔 주었다.
- ▲ 신선골은 물흐름마저 신비감 넘친다. 살짝 경사진 암반 위로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삼라만상을 깨끗이 씻어줄 듯 맑고 곱다. 호박소 아래 신선계곡.
- “기억나? 머리 썼다가 엄청 고생한 거. 그땐 정말 웃겼어.”
신선골은 두 번째다. 첫 산행은 2012년 11월 초, 낙동정맥 구간종주 산행 때였다. 남쪽 영덕 칠보산에서 출발해 낙동정맥으로 접근한 다음 백암산을 거쳐 온천단지로 하산하는 산행을 계획했던 기자 일행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종주산행해야 한다는 부담을 줄이려는 생각에 종주산행 전날 신선골을 거슬러 올라 백암산 정상에 야영장비에 먹거리와 식수를 올려놓았다. 이 정도 무게를 줄이면 하루에 칠보산을 출발해 낙동정맥을 타고 백암산정까지 가는 데 아무 문제없으려니 안심했다.
한데 막상 이튿날 칠보산자연휴양림을 출발한 일행은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능선 길을 따르다 보니 잡목을 헤치느라 시간이 늦어지고 엉뚱한 지능선으로 접어드는 바람에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다. 어렵사리 낙동정맥에 다가서기는 했지만 백암산 정상에서 대여섯 시간 못미친 곳에서 어둠을 맞고 말았다. 취사장비는 물론이요, 식수도 얼마 없었다. 인원은 5명인데 상할까 싶어 휴양림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돼지고기 1근과 라면 2개가 먹거리 전부였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불법’ 모닥불 비박을 했다. 덜덜 떨면서 밤을 지새우고 이튿날에는 물 한 모금 못 마신 채 낙동정맥을 종주해 백암산정에 올라섰다. 숲속에서 2리터 생수통 다섯 병을 꺼냈을 때의 반가움과 허탈감이란. 그때 일을 생각하노라니 골 입구에 들어서면서 웃음이 났다.
- ▲ 닭벼슬바위 아래 쉼터. 주차장에서 예까지 비포장찻길이 닦여 있지만 차량 통행은 불가하다.
- 누구라도 눌러 살고플 만큼 아름답고 편안한 풍광
엊저녁 늦게까지 비가 내리고 아침나절 안개 자욱했던 백암산은 오전 11시를 넘어서자 거짓말처럼 구름안개가 벗겨지고 맑은 햇살에 반짝였다. 신선골도 덩달아 빛난다. 굴 입구에 조성된 주차장에서 널찍한 산림도로 따라 물가로 내려서는 사이 계류는 물고기가 튀듯 반짝이고, 물소리는 골이 깨져나갈 듯 크게 울렸다.
“그렇게 큰 배낭을 메고 어디들 가는 거예요?”
널찍한 임도가 끝나는 ‘닭벼슬바위’ 쉼터에는 60대 중후반의 부부 여행객들이 초여름의 계곡 풍광을 즐기다가 갑자기 나타난 우리들에게 “계단 내려서다가 뱀에 물리지 않게 조심하라”며 일러 주었다. 한 이틀 동안 비가 부슬부슬 내렸으니 바위나 땅 속에 머물던 뱀들이 축축한 몸을 말리기 위해 밖으로 나와 있나보다.
- ▲ 신선골의 위험구간은 대부분 데크 길이 조성돼 있다.
- 쉼터를 지나자 산길은 온통 데크로 덮여 있어 사뭇 지루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웅장하면서도 빼어난 골짜기 풍광은 마음을 흡족케 했다. 선시골이란 옛이름도 지닌 신선골은 웅장한 만큼 지계곡 또한 많았다. 닭벼슬골, 가마실골, 용지곡, 뱀골, 연어곡 등 수많은 가닥의 실계곡이 모인 골짜기였다.
“에이, 데크 길이 뭐예요. 골짜기로 내려가요. 그게 훨씬 좋지 않겠어요?”
너무도 편안하고 단조로운 데크 길로는 만족하지 못한 김석우(봔트클럽)씨는 “기왕 걷는 거 물줄기 따라 걷자”며 일행을 계곡 아래로 끌고 내려섰다. 신선이 목욕하고 놀았다는 신선탕, 다락소(多樂沼) 일원은 널찍한 암반이 펼쳐져 신선 아니라 누구라도 눌러 살고플 만큼 아름답고 편안한 풍광을 자아냈다.
“고객님, 당황하셨나요?”
물줄기 가로 산길이 적당히 이어지려니 했던 기대는 얼마 가지 않아 깨져 버렸다. 수시로 물줄기를 가로질러야 하는가 하면, 짙푸른 소를 낀 바위벼랑을 올라야 했다. 김석우, 김수영(어센트산악회)씨는 결국 얼마 가지 않아 당황하고 괜히 계곡으로 내려섰다는 표정을 짓다가 곧 두툼한 등산화를 신은 채 물속에 발을 담갔다. 반면 정정현 기자와 배병달씨 고참 두 사람은 “우리는 위험한 건 안 해”하며 슬그머니 데크 길로 올라섰다.
“나는 몬가, 형이 먼저 가보세요.”
- ▲ 호박소 아래 흔들다리를 건너는 취재팀.
- 계곡을 거슬러 오른 지 30분이나 지났을까, 물줄기 양쪽으로 벼랑을 이룬 구간 앞에서 김석우씨는 두리번거리더니 앞자리를 슬쩍 넘긴다. 벼랑을 가로지르며 10m쯤 나아가자 딱 한 스텝이 아슬아슬한 지점에 닿았다. 벼랑 아래는 시퍼런 물이 출렁대는 소. 미끄러지는 날이면 물 속 깊이 빠져 들어갈 판. 그렇다고 뒤돌아서자니 계곡으로 내려섰던 데크 입구까지 가야 한다.
“로프!”
김석우씨가 건네준 로프를 몸에 묶고 앞장서 아슬아슬하게 바위벼랑을 가로지르고 바위 턱을 올라 널찍한 바위에 올라섰다. 그리곤 배낭 세 개와 스틱을 로프에 매달아 안전지대까지 옮기고 뒤이어 김석우, 김수영씨가 벼랑을 가로질러 안전지대로 올라섰다. 그 사이 데크 길 따른 정정현 기자와 배병달씨는 기다리다가 못해 걱정스런 마음에 골짜기를 따라 내려서고 있었다.
“뱀 못 만났어? 계곡물로 확 집어던졌는데.”
닭벼슬바위 쉼터에서 만난 탐승객이 주의를 주었듯이 산길 곳곳에서 뱀이 있었다. 특히 정정현 기자는 계곡으로 내려서다가 만난 독사를 스틱으로 걸어 던졌는데 다시 다가오는 바람에 놀라면서 물로 집어던졌다고 해 일행을 당황하게 했다. 좀 전에 가로지른 벼랑 아래 소에 빠졌더라면 분명 뱀과 뒤엉켰으리라는 생각이 들자 섬뜩해졌다.
“와~, 대단하네요. 저기는 도저히 올라갈 수 없겠네요.”
다시 다섯 명으로 늘어난 일행은 얼마 가지 못해 ‘두문동’ 같은 용소(龍沼) 앞에서 계곡 산행을 포기하고 데크 길로 수정했다. 용소는 그야말로 용이 몸부림치면서 깎이고 파인 바위 협곡이었다. 조각가가 다듬어놓은 듯 매끈한데다가 시퍼런 물줄기는 소와 담에 잠겼다 솟구치고 흘러내리면서 신비감을 자아냈다. 짙푸른 물빛은 산의 정기가 담겨 있고, 용소는 그 맑고 기운찬 정기를 골 밖으로 뿜어내고 있는 곳이다 싶었다.
- ▲ 산꾼 두 사람이 물줄기를 거슬러 깊디깊은 골짜기 안으로 파고들고 있다. 호박소 아래 신선골.
- 전망용 현수교까지 설치된 용소를 지나자 숲은 한층 더 우거지고 골은 더욱 깊어졌다. 골 따라 흐르는 물은 포말을 일으키고 고기비늘처럼 반짝이며 일렁이다가 다시 잠잠해졌다. 솔바람이 불어대자 영혼까지 맑아지는 기분이다. 용소는 바람뿐 아니라 영혼, 삼라만상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신선골은 데크를 깔기 전엔 엄청 험했나 봐요. 참새가 눈물 흘릴 정도로 파고들기 힘들었다는 걸 보면. 참새눈물나기라는 이름도 재밌죠?”
용소에 이어 참새눈물나기를 지나면서 골짜기는 한결 유순해지고 수더분해진다. 산등성이의 소나무는 일부러 간격 맞춰 심어놓은 듯 가지런하다. 신선골은 화려하되 차분하다. 멋들어지되 유난스럽지 않았다. 그러서 신선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들어섰는지 모를 일이다.
- ▲ 다락소 위쪽 신선골. 이제 막 골짜기 안으로 들어섰는데 심산유곡의 풍광이 펼쳐진다.
- 용소에서 신비감 넘치는 풍광에 넋을 잃고 소박소를 지나서는 골짜기의 잔잔한 풍광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러다 골을 울리는 물소리에 정신을 차려보지만 옥빛에 투명함까지 갖춘 물줄기를 보노라면 또다시 넋을 빼앗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지만 지금 이곳은 모든 것이 하나다. 산이 물도 되고 물 또한 산이 되는 이 신선골이 아닌가 싶어졌다.
합수곡을 3km 남겨놓고 다리를 건넌 일행은 된비알 계단길을 거슬러 올랐다가 다시 완만한 허리길 따라 또다시 다리를 건너선다. 이후 산길은 데크 길을 버리고 부드러운 흙길 따라 지능선을 거슬러 오르다가 다시 소나무 우거진 숲속 허릿길로 이어지는 등, 다양한 산길로 변신을 거듭해 산객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었다.
“안 돼! 스톱!”
“아니! 뭣들 하시는 거예요. 너무 하시는 거 아니에요?”
산길은 합수곡을 1.5km쯤 앞두고 숲에서 빠져나와 널찍한 암반으로 내려섰다. 이미 도착한 배병달씨와 김석우씨는 너른 소에 풍덩 뛰어들어 ‘알탕’을 즐기다가 김수영씨가 모습을 드러내자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 소리치고, 당황한 김수영씨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 어서 옷 입으라 아우성이다. - 오후 5시, 아직 해가 지려면 멀었지만 널찍한 암반에 바위골 위아래로 알탕하기 알맞은 소까지 갖추고 있으니 더 이상 좋은 비박지가 있으랴 싶어 “오늘 일과 끝!”을 외친다.
물소리가 골을 울리지만 지금은 음악소리다. 저녁을 먹는 사이 계곡 건너 숲 위로 떠오른 반달이 숲 뒤로 꼴딱 넘어가자 순식간에 어둠이 몰려오고 반달은 나뭇가지 사이로 황금빛으로 빛난다. 더불어 밤하늘에 별들이 하나 둘 밝아오고, 그 사이 산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꼭꼭 숨어 버렸다. 우리는 이제 한밤의 야생, 산짐승이 되어 버렸다.
- ▲ 백암산을 대표하는 백암폭포.
- 물소리는 밤새 다양한 색깔로 귀청을 울려 대며 수시로 잠을 깨웠다가 다시 자장가를 불러대며 산객을 잠재운다. 이 생각 저 생각에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노라니 어느 순간 어둠이 산 밖으로 빠져나가고 산 안에는 다시 새날의 밝은 빛이 스며들었다.
낙동정맥이 한눈에 들어오는 백암산정
“어머! 저게 뭐예요? 청솔모?”
밤새 우리가 산짐승으로 변해 버렸다 싶었는지 수달 한 마리가 물속에서 암반 위로 올라와 아는 척하려다 ‘이게 뭐야’ 놀란 표정으로 다시 물속으로 쪼르륵 미끄러져 들어간다.
이튿날 아침, 비박지를 지나자마자 길가에 깡통 더미가 눈에 들어온다. 수백 개 아니 1,000개도 훨씬 넘겠다 싶을 만큼 많은 깡통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게 뭘까 싶어 깡통을 들추는 사이 독사 한 마리가 삼각형 머리를 빼꼼 치켜든다.
깡통 더미를 지난 이후 물줄기에서 벗어나 산등성이를 치고 올라 사면을 가로지르던 길은 합수곡을 1km쯤 앞두고 멋진 조망대 앞에 선다. 신선골은 이제 온통 숲에 묻혀 버린 형국이다.
- ▲ 신라 때 축성되었다는 백암산성.
- 조망대를 지나 다시 숲속을 파고들던 산길은 주계곡과 지계곡 물줄기가 합쳐지는 합수곡에 닿아서야 조망이 터졌다. 백암온천지구에서 원탕인 태백온천장을 운영하는 황춘백 백암온천협회 회장은 어제 아침 합수곡 주변에 ‘독실’이란 화전마을이 있었다고 일러 주었다.
독실마을 화전민들은 장작과 나물 등을 지게에 지고 신선계곡을 내려와 산 입구 선구리마을에서 쌀, 해산물, 등잔석유와 바꿔갔는데,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소개령이 내려지면서 철거됐지만 7, 8년 전까지만 해도 세 가구 주민들이 거주하면서 약초를 캐곤 했다고 한다.
“아니, 여기서 내려가란 말이야? 정말 말도 안 돼.”
골 입구에서도 못 봤던 입산금지 안내판이 합수곡 안내판 옆에 세워져 있어 일행을 당황하게 했다. 등산객과 산림을 보호하기 위해 합수곡에서 백암산 동릉 갈림목까지 산행을 통제한다는 내용이었다. 예까지 올라온 산객들을 그냥 내려가라니.
- ▲ 용소 아래 신선골. 배병달씨가 물수제비를 날리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종족이야. 신발 신는 방식도 다르잖아.”
어제 오후 내내 계곡 산행하느라 등산화가 푹 젖은 김수영씨는 양말을 비닐봉지로 싼 다음 등산화를 신고 다녔다. 그러니 툭하면 양말이 벗겨져 수시로 비닐봉지를 다시 싸서 등산화를 신어야 했다. 신선골은 이렇든 저렇듯 골을 벗어난다는 게 무척 아쉬웠다. 설악으로 옮겨다 놓아도 결코 뒤지지 않을 풍광에 때 묻지 않은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니 이곳이야말로 신선들이 머무는 골짜기가 아닌가 싶었다.
“한 시간이나 기다렸어요. 어휴 졸려.”
신선골에서 가파른 지능선을 거슬러 오르다 한 번 쉬고, 또 주능선 갈림목에 또 한 번 쉬고. 그리고 5분쯤 걸었을까 합수곡 이후 모습을 감추었던 김석우씨가 매트리스에 드러누운 채 일행을 맞아 주었다. 40대와 50~60대의 차이인 걸 어찌 하랴.
빗돌이 반겨준 백암산 정상에 올라서자 남쪽에서 서쪽을 거쳐 북쪽으로 낙동정맥과 정맥에서 가지 친 능선 상에 고봉준령들이 고개를 치켜들고 있다.
- ▲ (위)신선골은 데크 길을 벗어나면 험난한 계곡을 거슬러 올라야 한다. 용소 구간은 통행이 거의 불가능하다./ 신선골 야영. 거센 물소리는 밤새 수만 가지 음악 소리로 착각케 했다.
- “저기쯤 되지?”
배병달씨가 가리키는 곳은 이태 전 늦가을 취재팀이 텐트와 침낭에 먹을거리, 식수를 데포해 놓았던 숲이었다. 오전 내내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백암산정에 올라설 때는 2리터 생수 한 통을 다 마실 것처럼 갈증이 났다. 하지만 4명이서 한 통도 못 마셨고, 그 바람에 네 통이 그냥 남았다. 결국 1,004m 높이의 정상 마른 땅에 부어버렸다. 용감하게, 과감하게.
“혹시 알아요. 신선 돼서
신선골 지키게 될지”
“막걸리 한 잔 하고 가세요.”
“감사합니다!”
백암폭포 가는 길에 벌써 숲속에 자리 펴고 부부 네 쌍이 점심을 먹고 있다. 분명 인사치레로 한 잔 하라 했을 터인데 정정현 기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가 한 잔 받아 마시고, 그 덕분에 다른 네 사람도 백암산정 아래에서 막걸리로 갈증을 달래는 호사를 누린다.
- 백암산을 상징하는 흰바위를 내려서고 신라 때 축조되어 고려 공민왕도 난을 피해 잠시 머물렀다는 백암산성을 거쳐 새터바위에 올라서자 백암산은 또 다른 풍광으로 마음을 휘어잡았다. 산은 온통 소나무로 빼곡히 우거지고 산아래 골짜기는 그제 내린 비로 우렁찬 물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소리에 이끌려 잰걸음으로 아름드리 소나무 우거진 숲길 따라 골짜기로 들어서자 거대한 폭포에서 물줄기가 비단자락 펼쳐진 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늘 마른 폭포였던 백암폭포는 엊그제 내린 비로 폭포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었다.
“저 폭포수 거슬러 올라볼까? 혹시 알아요. 신선 돼서 신선골 지키게 될지.”
김석우씨는 어제 오후 내내 물줄기를 따르고 밤을 보낸 다음 오늘 아침 빠져나왔는데 벌써 신선골이 그리운지 신선골 산신령 타령을 해댔다. 그러자 정정현 기자는 “너나 하세요. 나는 뜨거운 온천수에 푹 담글 테니까” 하며 온천단지로 향했다. -
산행길잡이
계곡~능선~계곡 잇는 당일 산행 코스
합수곡~동릉 구간은 원칙적으론 통제구간
신선골은 내선미천으로 스며든 뒤 평해읍 앞바다로 흘려드는 남대천의 최상류 물줄기 중 하나로 전하는 얘기도 많은 골짜기다.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 1539~1609)가 평해로 유배 왔을 때 협곡 안에 들어선 뒤 그 감흥을 <아예유고>의 ‘서촌기’에 묘사한 바 있고, 구한말 항일의병장 신돌석(1878~1908) 장군이 왜병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뒤 군사를 이끌고 들어와 전열을 가다듬었던 곳이기도 하다.
- ▲ 백암산 정상. 낙동정맥을 비롯해 울진·영덕·영양 일원의 산봉과 산줄기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곳이다.
- 신선골은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소개령이 내려지면서 철거됐지만 7, 8년 전까지만 해도 몇몇 사람이 너와집을 지어놓고 약초를 캐곤 했다고 한다.
아연광산이 있던 신선골 초입부는 오래 전부터 여름이면 물놀이객들이 꽉 들어찰 만큼 인기 있는 피서지였지만 워낙 험해 산행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2012년 합수곡에 이르기까지 6km 구간 중 험난한 약 3km 구간에 데크와 다리를 설치해 산행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데크 중간 중간 계곡으로 내려설 수 있게 길을 만들어놔 계곡 풍광을 즐기는 데에는 아무 문제없다.
원칙적으로 야영이 금지돼 있고, 주차장에서 약 6km 지점인 합수곡 이후 백암산 정상 주능선을 잇는 지능선이 입산통제구간이지만 길이 잘 나 있어 헤맬 일은 없다.
선시골이란 옛 이름을 지닌 신선골은 백암온천단지에서 88번 지방도를 따라 더딘재를 넘어 선미리 방향(구시령·영양 방향)으로 가야 한다. 온천단지에서 약 4m 가면 도로 왼쪽에 신선골 입구 빗돌이 보인다. 차량은 도로에서 약 300m 지점에 조성해 놓은 주차장에 대놓으면 된다.
주차장 이후 닭벼슬바위 아래 쉼터를 거쳐 약 3.5km 지점까지는 데크가 잘 깔려 있고 이후에도 산길이 뚜렷해 길 잃을 염려는 거의 없다. 합수곡에서 물줄기를 건너면 산길은 잠시 지계곡을 따르다가 지능선으로 올라붙는다. 이후 1시간 반쯤 오르면 주능선에 닿고, 주능선 갈림목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정상에 올라선다.
- ▲ (위)백암온천협회 황춘백 회장은 “백암산은 숲과 온천수가 좋을 뿐만 아니라 가까이 싱싱한 해산물 산지인 후포항을 끼고 있는 천혜의 휴양지”라 자랑한다. / 후포 수산시장.
- 백암산 정상에서 백암폭포로 가려면 정상 헬기장을 가로질러 ‘흰바위’ 방향으로 가야 한다. 숲을 빠져나가면 백암산 지명의 탄생 배경인 흰바위를 가로지르면서 왼쪽 능선으로 접어든다.
안부로 내려서면 첫 번째 갈림목에 닿는다. 왼쪽 길은 계곡으로 내려서다가 백암폭포 위에서 물줄기를 가로지른 다음 천량묘 코스와 만난 다음 능선 길을 따라 온천단지로 이어진다. 갈림목에서 계속 능선을 따르면 백암산성~새터바위~백암폭포를 거쳐 사면을 약 1km 가로지르다가 능선 길 따라 역시 온천단지로 내려선다. 신선골~합수곡~지능선~정상~백암산성~백암폭포~온천단지 산행은 약 11km 거리에 7시간 정도 걸린다. 식수를 합수곡에서 준비해야 한다.
교통 평해에서 백암온천단지행은 1일 15회(06:40, 07:15, 08:00, 09:30, 10:20, 11:25, 12:00, 12:40, 13:10, 14:40, 15:50, 16:40, 17:10, 17:40, 18:30) 운행한다. 약 15분, 일반 1,000원, 좌석 1,500원. 평해까지는 강릉(www.gangneungterminal.co.kr, 033-643-6092)·삼척(031-531-3400, donghae.dongbubus.com) 방면이나 포항(1666-2313, www.포항터미날.kr) 방면에서 노선버스로 접근한다. 문의 평해버스터미널 1666-5703, 울진시외버스터미널 054-782-2971, 060-600-2786.
서울→백암온천 동서울터미널에서 영주, 봉화, 울진을 경유하는 백암온천행 직행버스가 07:30, 08:50, 11:10, 13:30, 15:40, 17:00 출발. 약 5시간 5분, 3만2,100원. 문의 www.ti21.co.kr, 1688-5979.
백암온천에서 선미리 신선골 입구까지는 13:25, 17:55 노선버스가 다닌다. 문의 백암버스터미널 054-787-3920.
자가용은 동해안에서는 7번국도 상의 평해에서 접근(약 12km). 중부권은 중앙고속도로 풍기나들목에서 영주→36번국도 태백·울진 방향→법전1교 갈림목→31번국도→영양터널→문암삼거리→88번지방도→구주령→백암온천 방향, 남안동나들목에서는 34번국도→진보→31번국도→영양읍→
문암삼거리→88번지방도→구주령→백암온천 방향으로 접근.
맛집(지역번호 054) 백암온천은 물 좋기로 소문난 곳이다. 황춘백 백암온천협회 회장은 “백암온천은 최근 온천수 효능검사에서 퇴행성관절염, 당뇨, 고혈압, 아토피피부병, 건선에 효과가 좋다는 사실이 쥐 실험을 통해 입증됐다”며 “숙소도 깨끗해 며칠 머물기에도 좋다”고 말한다.
백암온천단지 내에서 원탕을 자랑하는 태백온천모텔(787-3881~2) 외에 백암관광호텔(787-3500), 백암한화콘도(787-7001), 성류파크관광호텔(787-3711) 등은 대부분 자체 온천공에서 솟아나는 온천수를 이용하며, 식당도 운영한다.
백암온천단지 내에는 다양한 메뉴의 식당이 여럿 있다. 성류민속촌식당(787-3325)의 청국장·산채정식과 흰바위가든(787-3400)의 해물탕(대 4만5,000원, 공기밥)은 버섯전골(3만5,000원), 불낙(3만5,000원)은 인기메뉴다. 평해로 이어지는 도로 주변에는 토종닭 전문식당이 많이 있으나 대개 시즌이나 휴일에 문을 연다.
백암온천에서 약 17km 떨어진 후포항에는 싱싱한 생선회와 대개나 홍게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는 식당이 여럿 있다. 수산시장에서 활어를 직접 골라 회를 뜬 다음 부근의 식당에 가져가면 1인당 5,000원의 실비에 회와 곁들일 수 있는 야채와 양념은 물론 매운탕에 밥까지 제공해 준다.